영화관으로 향하던 마음에 대하여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비용이 예전보다 부담스러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지갑이 얇아진 탓인지, 아니면 집에서도 충분히 집중해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예전처럼 쉽게 영화관으로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게 영화관에서의 관람은 영화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극장으로 향하는 길의 설렘, 극장 안의 공기, 그날의 온도와 습도 같은 감각들까지 모두 포함된 경험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감각들이 예전만큼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과거를 미화한 기억 속에 내가 갇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예전의 극장가가 영화를 감상하기에 더 좋은 분위기였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영화관으로 향하는 마음이 예전만큼 설레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액션이나 압도적인 영상미가 없는 영화라면 괜히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내 영화 취향은 일상에 가까운 결의 드라마, 잔잔하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 이야기 쪽에 가깝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난 뒤 “돈이 아깝지 않았다”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과연 얼마나 훌륭한 시나리오여야 하는 걸까. 아름다운 장면과 음악, 화려한 액션과 영상미도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남는 것은 이야기의 힘이다. 비록 그것이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의 전면에 서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얼마 전 화양연화와 이터널 선샤인의 재개봉 소식은 내 기준으로 극장으로 달려가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는 영화들이었다. 두 작품 모두 이미 본 영화였지만,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고, 집에서의 감상과는 분명히 다른 깊이를 남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 기대는 꽤나 완벽하고도 타당해 보였다.
물론 두 영화 모두 이야기의 힘 외에도 음악과 영상미가 훌륭하기에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겠지만.
결국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지 못했고, 두 영화 모두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오늘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집에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보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살았고, 생각도 많이 달라져 있어서인지 전혀 다른 작품으로 다가왔다.
내 생각의 명작이란 아마도 이런 영화가 아닐까. 10년에 한 번쯤 다시 보았을 때, 전혀 다른 이해와 감상을 남기는 영화. 관객이 시간이 흘러 변한 만큼, 영화도 전혀 다른 얼굴로 말을 걸어오는 작품 말이다.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던 두 영화를 끝내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내게는 한 편 더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다.
이 영화도 아쉽게도 집에서 보았는데 화면을 채우던 파도의 움직임, 서래의 마지막 숨소리, 그리고 장면 사이를 감싸던 음악까지. 집에서 본 감상은 충분했지만, 어딘가 끝내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 남았다.
나는 줄곧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해 왔다. 잘 쓰인 시나리오와 인물의 감정선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오래 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 앞에서는 그 믿음이 조금 흔들린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분명 강력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영화. 이미지와 소리, 리듬과 호흡이 함께 얽혀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감정이 존재하는 영화.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영화가 있고, 감각이 먼저 몸에 각인되는 영화가 있다면, 헤어질 결심은 나에겐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결국 내가 극장을 찾는 이유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떤 영화 앞에서는 그 이유만으로는 한없이 부족해진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여전히 극장을 완전히 놓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영화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