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재출간 을 도우며.
[에필로그] 빛은 자신 안에 이미 있었다.
_작가 쏘스윗
얼마 전,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합창공연이 있는데, 찬조 출연을 부탁한다는 지휘자님을 따라 20년 만에 무대를 서게 되었다. 어느 10월의 가을날, 토닥토닥 내리던 가을비 속에서 시인님을 처음 뵈었다. 하얀 셔츠에 푸른 스카프를 하신 블레싱 하모니카 단 사이 푸른 셔츠와 흰 바지에 선글라스를 멋스럽게 끼고 무대 중앙에 서 계셨다. 하모니카 팀과 합창팀의 연합 곡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뭉게구름’의 전주를 하모니카 선생님이신 그 멋진 분이 불어주실 거라고 했다. 20년 만의 무대에 나는 감격을 감출 수 없었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무대를 잘 마치고 내려왔다. 들뜬 마음과 더불어 시각장애를 가지신 새빛 합창단원 분들과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동선을 고려하고 대기실을 조정하며 단원분들이 편안하고 수월하게 무대를 마치실 수 있도록 애썼다. 무사히 공연이 마무리되고, 나와 함께 간 합창단원 언니의 마음을 예쁘게 봐주신 분들이 칭찬과 격려를 보내오셨다. 함께 사진을 찍는데, 파트너 단원이셨던 한 선생님과 찍는 중에 주변에서 ‘예쁘다‘는 말씀들을 계속해주셨다. 그러고는, 선생님께 나의 모습에 대해 설명을 이어주셨다. 그러자 선생님은 “이미 아름다운 분인 것을 알고 있다"라며, 환히 웃어주셨다. 내가 본 웃음 중 가장 진실되고 맑은 웃음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시각장애인 합창단인 ’새빛합창단‘에 마음이 갔고 이후, 정식 단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찾은 점자도서관에서 함께 노래했던, 손을 잡았던 단원분들과 재회했다. 그 속에 하모니카 선생님이시라는 이종형 연주가님도 계셨다. ‘흰 지팡이의 날‘에 정신이 없었지만 연주가님의 손을 순간 본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공연 준비에 집중해야 해서 스쳐갔지만,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정의해 보고자 한참을 고민했다. 놀람도 아니었고 어설픈 동정도 아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부러움‘이었다. 아니, ’존경‘, ’응원‘이었다. 단순히 장애가 있는 분이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서가 아니다. 내가 비장애인이어서가 아니다. 나에게는 내 어린 시절부터 교통사고로 팔을 절단하고 다리가 굽혀지지 않는 지체장애인이신 아버지가 계시다. 성격이 나와 비슷한 분이셔서, 그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는 내내 늘 행복을 찾아 웃으며 살아오신 분이셨다. 그러나 최근에 암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삶의 의욕을 많이 잃어가시던 아빠의 모습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나에게, 연주가님의 모습은 아빠의 빛나던 모습 같았다. 그래서 몸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는 얼마나 더 많은 것들에 노력이 필요한 것이 인지도. (감히 온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그 힘겨웠을 시간이 나의 마음에서 조금은 그려졌다. 나도 모르게 “제 아버지가 생각나서 응원하게 된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점자도서관의 새빛 합창단 단톡에 영상 링크가 하나 올라왔다. 점자 기념일의 날 기념 다큐멘터리에 이종형 시인님이 나온다는 말과 함께. ‘엇? 시인이라니?’ 눈이 보이지 않고 두 손목으로 하모니카를 연주하시는 것, 가르치시는 것으로도 깊은 감동을 받고 있던 나는 그 다큐 프로그램을 눈을 뜨자마자 누운 그 자리에서 보았다. 엉엉 울면서. 시인님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떠올렸다면 다큐 프로그램에서는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시인님의 시들이 어머니에게 쓰는 시들이 많았고, 하모니카 연주 공연 장면의 노래는 어린 시절 내가 가장 행복하게 엄마와 부르곤 했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시인님의 시집을 찾아 헌책방을 헤매며 읊으시는 영상 봉사자님의 마음의 소리가, 다큐 영상에 짤막하게 계속 등장하는 시인님의 문장들이, 어느새 나도 이 고귀한 시집을 세상에 다시 널리 알려야 한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작가라는 칭호를 내 이름 앞에 붙이기에는 아직 부끄럽지만, 나는 15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이제는 ‘나의 글‘을 쓰고자 작가의 세계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나의 글‘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제대로 글을 써보고자 마음먹은 것은 약 1여 년 정도. 운이 좋게도 독서토론을 하고자 들어간 곳이, 무료로 전자책을 출간할 수 있는 전자책 출판사 ‘작가와’의 오픈 채팅방이었고, 그곳에서 많은 작가님들과 서로 좋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글을 쓰고, 출판, 출간에 대한 정보들을 배워가고, 표지 디자인을 위해 그림과 캘리그래피 등을 시작해 보고 있었다. 아직 부족한 솜씨라서 나의 책은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지만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공동 집필을 한 책의 삽화를 그리며 출간을 준비 중에 있었다.
선뜻 시인님의 시집을 전자책을 출간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다. 다행히 원고는 점자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이 문서화해주고 계셔서 메일로 보내주기로 하셨다. 나는 먼저 시집을 받아 들고 각 페이지에 작은 삽화를 넣고자 했지만, 각 페이지마다 삽화를 넣게 되면 출판 시 그림파일로 올려야 하기에 ‘듣기’기능이 잘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각장애인 분들이 더 편히 전자책을 읽으실 수 있게 나의 욕심은 덜기로 했다. 점자도서관 측에 더 예쁜 목소리로 낭독해 주 시 낭송 봉사자님의 음성도서가 있지만 그것은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분들만 들을 수 있으실 테니, 전자책의 기능으로나마 들을 실 수 있도록 하였다. 감명 깊은 몇 가지 시만 작가님의 동의하에 낭송을 허락받고 링크를 남긴다.
< 어머니! 하늘빛이 어떻습니까? > , < 시인 > , < 아름다운 이에게 > , < 슬픈 날을 위하여 >, < 꽃 그림자 >, < 첫눈 >
시인님의 문장은 점자 기념일 다큐멘터리에서 처음 접했을 때부터 아주 짧게 일부만 읽어도, 크고 깊게 가슴을 울렸었지만,
교정, 교열과 편집하며 읽은 모든 시들은, 내게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잡을 수 없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므로 더욱더 아름다울 수 있는 듯했다.
찰나의 소중함과 끝없는 그리움, 그리고 마음으로 그리는 상상의 세계는,
내가 보고 느낀 그 어떤 장면보다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이토록 선명할 수 없었다.
내 이름에는 ‘하얀 햇빛’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한 겨울에 태어나 온 세상이 춥고 어두울 때, 밝고 맑은 빛으로 세상을 따스히 밝히라는 의미로 어머니가 지어주셨다.
시인님의 시 <어머니! 하늘빛이 어떻습니까?>의 구절이 떠오른다.
“어머니! 나는 오늘에야 내게도 빛이 비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나보다도 더 간절하게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더불어 호흡하며 나누며 아파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
이 글에 나의 문장을 더해본다.
“어쩌면 빛은 나를 향해 비추었던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빛이 세상을 향해 번져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사람들도 암흑 속의 삶을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상에 빛나는 빛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안에 빛나는 무한한 상상력과 그리운 기억으로 언제까지나 소중히 빛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에게서 자신의 빛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일깨워 주는 것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고귀한 존재들을 찾아 세상을 밝히는 길이 아닐는지요. “
이 인연에 더불어 나는 하모니카 팀의 ‘아름다운 것들’ 연주에 독창을 제안받았다. 이토록 신비롭게 이어지는 인연은 또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부터 유일한 꿈이자 나를 늘 살려온 내 안의 노래가, 엄마와 함께 부르던 그저 행복만을 담은 목소리로, 내 안의 빛을 찾아가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 빛이 나를 다시 살려내고, 내 곁의 누군가를 잠시나마 따스히 밝혀준다면 더없이 귀한 순간으로 남을 것 같다.
또한 이종형 시인님의 이 처절하고도 슬프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온 세상에 알림으로써 어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깊은 통찰의 시간을 주고, 혹은 그저 머릿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는 맑은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을 믿고 원고를 맡겨주신 이종형 시인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인님의 문장을 보며 시선을 보며 가슴이 저릿함과 맑아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마침 교정교열을 마무리하던 날이 ‘한강‘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시상식‘ 강연이 나오더군요, 언젠가 시인님도, 또 더욱 먼 훗날 저도,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리 시인님의 문장들을 배울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덧붙여, 책 출간이 처음이라 서툴러 질문이 많았음에도 늘 정성 어린 안내와 조언, 도움을 주신 ‘작가와’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함을 전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라는 작가와의 가치관에 맞게 이 소중하고 고귀한 인생을 세상에 널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자신의 빛을 찾아내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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