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책_ 여름 1 ]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언어라는 것을 익히고 습득해 살아나간다. 사람에게 언어가 없다면 생존능력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글이라는 것은 그 언어를 활자로 옮겨놓은 거에 불과하지만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인 듯 하지만 앞과 뒤의 모습이 전혀 다르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전을 가지고 있지만 동전의 앞뒷면을 다르게 그리고 깊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말을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걸까
글을 쓰는 사람은 내면의 힘이 있다. 단단하고 견고한 생각통을 가지고 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떠오르는 것들을 생각통 안에 담아두었다가 그것들을 누르고 다지고 잘 섞어 글이라는 형체로 내어 놓는 힘이 있다. 그것들이 생각통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견디는 힘, 용서하는 힘, 이해하는 힘, 사랑하는 힘, 도전하는 힘, 일어서는 힘이 길러지고 이전과 다른 내가 만들어진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나'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말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나오는 순간 사라져 버리지만 글은 그것의 고유한 형체를 가지고 있어 언제든 열어볼 수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이 세상 사이의 물음표들, 내 머릿속의 생각과 감정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얽히고설킨 내 삶의 흔적들을 글로써 잡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순간도 존재와 동시에 과거가 되며 사라진다. 내가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다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기억을 통해 이것들을 잠시 잡아둘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은 글로 남겨 두는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억의 한계를 글로 채울 수 있다.
지구가 생긴 이래 같은 날씨는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태어나 지금껏 사는 동안
같은 날씨는, 같은 하루는 한 번도 없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_ 김신지
취직 시험에 합격해 가슴 벅차게 웃고 울었던 날, 슬로모션처럼 성큼성큼 다가왔던 남편과의 설렜던 첫 만남, 큰애를 처음 품에 안아봤던 그날 14시 23분의 찰나, 시계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해 주었던 첫 캠핑, 혼자 떠난 제주 여행에서 마주한 기가 막혔던 자연과 경험들, 잠들기 전 속삭이고 웃어주는 아이들의 얼굴,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큰애의 앙큼 발랄 어록들...
글을 쓰는 사람은 내 소중한 순간들을 잡아두는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것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소중한 순간들은 성능이 완전치 않은 기억이란 곳에서 적당히 머물러 있다 주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서서히 흩어져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과 희열이 느껴졌던 그 순간을 글로 묘사하면 어느새 나는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있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나의 지난날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검은 활자들로 나타나면서 다시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그때가 참 예뻤다' '아이가 크는 게 아깝다. 안 컸으면 좋겠다' ' 지금이 제일 귀여울 때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의 모습,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인 아이들과의 애틋한 시간, 그 추억을 잡아둘 수 있는 것도 글이다. 8살 큰애는 애늙은이처럼 감칠맛 나게 말을 참 잘한다. 엄마를 당황시키기도, 부끄럽게도, 감동시키기도, 박장대소하게도 만드는 큰애의 주옥같은 어록들이 날아가버릴 까 봐 메모장에 조금씩 기록하고 있다.
'힘 빼기의 기술'에서 김하나 작가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책으로 꼽는 것이 있다. 바로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가 김하나 작가를 키우면서 적은 일기장 '빅토리 노트'다. 그 일기는 김하나 작가가 처음 걷고, 기저귀를 떼고, 말을 배우며 성장한 5년간의 육아 일상이 담겨 있다. 특히 다른 방에서 자다가 엄마 아빠 방으로 건너오는 김하나 작가 모습을 "온다 온다"라고 생생하게 묘사한 장면은 아이의 귀여움과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글 속에서 터져 나온다. 그 장면을 읽는 내내 빅토리 노트를 갖고 있는 김하나 작가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가 써 내려간 육아일기만큼 좋은 선물이 있을까
글쓰기는 치유와 성장의 시간을 선물해준다
조금은 불편하기도 한 나 자신과 오롯이 마주하면서 나를 바닥으로까지 끌어당겼던 고통스러운 감정들과 마주하게 하고 그게 어디에서 온 것인지 거슬러 올라가 그곳에 있는 또 다른 나와 만나게 해 준다.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감정 바닥의 근원은 무엇인지, 꽉 막힌 세상에서 내가 두드릴 곳은 어디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팽팽하게 조여진 삶이 조금은 느슨해진다. 숨 고르기의 시간을 맞이한다.
처음으로 마주한 결혼과 육아는 나를 심하게 흔들었다. 도망칠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허둥대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넘어지면서 온 몸에 상처가 나고 있었다. 요즘 엄마가 생각하는 상식과 정의가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멱살 잡혀 사는 기분이었다.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유롭게 살다 만난 남자와 여자인데 어딘지 모르게 여자가 불리해 보였다. 결혼 전엔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이 결혼이라는 틀 안에 나를 넣어두고 보니 불편하고 불합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불편하고 불합리한 것들을 내 생각 통 안에 넣고 보고 또 들여다봤다.
생각통 안에 있는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나고 눈물도 났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살아나기도 하고,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도 한다. 구차했던 내가 쿨해지기도 하고 구질구질했던 나를 연민의 마음으로 태연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글로 소통하는 사람들 중에는 내 편이 많았다.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불행한 70-80 세대 엄마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응원해주고 함께 힘을 얻어갔다. 말보다 글은 더 강력했다. 내가 전하고자가 하는 메시지는 글이라는 수단으로 잘 포장되어 클릭 한 번으로 물리적 경계를 넘어 순식간에 여기저기로 퍼져나갔다. 내 글이 사람들 가슴에 파동을 일으키는 순간이 숨통이었고, 내 상처의 틈이 메워지는 순간이었다.
발밑이 흔들릴 때 본능적으로 두 팔을 벌려 수평을 유지하듯
이 불안의 엄습이 몸을 구부려 쓰게 했다. 글쓰기는 내가 지은 긴급 대피소.
그곳에 잠시 몸을 들이고 힘을 모으고 일어난다
쓰기의 말들 _ 은유
이 모든 것이 '나'이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삶'이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누구나 좋은 글감을 가지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나를 기록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단 하나기 때문에 특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내 삶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기록한단 말인가.
쓰지 않는 보통의 삶은 아주 시시한 의미밖에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보통의 내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그것, 나에게 글쓰기는 이런 것이다. 쓰는 순간 나는 특별해지고, 내 삶도 특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