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쯤 나는 이 여름 한복판에서 더 절박하다

글, 책 _ 여름 11 여름 예찬

by 꿈꾸는세젤이맘



여름이 제일 싫다.

사계절 중 여름은 나를 가장 배려하지 않는 계절이다.


키 160에 몸무게는 40대 중반, 아주 마른 체형을 가졌다. 보통 비슷한 수치를 갖고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말라 보이는 체형이다. 20대 때는 젊음과 탄력이 받쳐주니 말랐어도 봐줄 만했다. 그러나 결혼 후 아이 둘을 낳고 40대를 넘기고 나니 나의 몸은 젊음과 탄력이 힘을 잃었다. 피부는 노화되고 얼굴엔 기미가 생겼다. 집, 회사만 오가고 집안일이라는 최소한의 움직임만 몇 년째 소화하고 있는 이 몸에 근육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다. 3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마른 몸에 근육이 붙어 있었다. 근육이라고 해봤자 미세했지만 그나마 살을 잡아주니 탄력이 유지됐었다.


40대, 두 아이의 엄마고, 직장에서는 계장으로 중간관리자의 위치에 있다. 지금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누군가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마른 몸은 이런 나의 역할을 지탱하기에는 실제로도, 보기에도 역부족이어서 사회생활하는데 애로사항이 참 많다. 유관기관 공식회의 자리에서는 대놓고 소개하지 않는 이상 겉모습만 보고 나를 계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민망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옷을 더 차려입고 먼저 나서서 인사를 한다.


반팔, 반바지를 잘 입지 않는다. 한 여름에도 얇은 재킷을 즐겨 입고 어깨가 드러나는 옷은 이너 말고는 사지도 않는다. 깡마른 내 몸을 옷 속에 숨기기 바쁘다. 경찰 여름 근무복은 설상가상으로 상의를 하의에 넣어 입어야 한다. 특히나 허리와 허벅지가 심하게 부실한 나에게 여름은 젓가락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잔혹한 계절이다.


검색창에 ' 살찌는 법' '살찌는 음식' '살찌는 운동'을 수시로 검색한다. 링크를 타고 가다 마른 사람들을 위한 네이버 카페를 찾았다. 다이어트하는 법, 살 빼는 운동, 살 안 찌는 음식 등 살 빼는 정보들은 차고도 넘치지만 나 같은 마른 사람들을 위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었다. 그 와중에 네이버 카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커뮤니티였다. 카페 이름은 '스미골들의 동굴'. 카페 이름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반지의 제왕 '스미골'에서 따온 이름일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가도 스미골의 모습을 떠올리니 괴로웠다. 카페에는 살찌는 운동법, 살찌는 음식 등 평소 궁금했던 정보가 많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 고민을 들으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조건 먹으란다. 밥 먹고 먹고, 자기 전에도 먹고 계속 먹으란다. 그러면 살이 안 찔 수가 없다고. 나는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소화기관이 약해 소화를 잘 못 시키고 양도 많지 않다. 음식들로 안되니 운동하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단백질 보충제를 먹어보기도 했다. 주변에는 살이 쪄서 고민인 사람이 대부분이라 자칫 잘못하면 배부른 투정으로 보일 수가 있다. 누군가는 행복한 고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당사자의 고통을 가늠할 수는 없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바로 입고 싶은 옷을 예쁘게 입는 것일 것이다. 출산 후 불어난 몸에 예전 옷들이 맞지 않아 악착같이 다이어트를 하고, 해변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멋들어지게 소화하기 위해 살을 뺀다. 그러나 나 같은 스미골들도 원하는 옷을 못 입기는 마찬가지다. 맞춤복이 아닌 이상 s, m, l 사이즈로 구분되어 나온 기성복들은 다 크다. 어쩌다 맞는 옷을 찾아도 옷이 맵시가 나지 않는다. 비키니? 삐쩍 마른 몸에 비키니는 수영복이 아닌 그냥 속옷을 걸쳐 놓은 느낌이다.


이래저래 스미골들의 비애도 애달프긴 마찬가지다.






마른 체형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마른 사람들은 몸에 지방이 거의 없어서 대체로 쉽게 지치고 힘을 못쓴다. 체력은 곧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라서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마녀 체력의 이영미 작가님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고 했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시다.

욕심은 앞서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일도 해야 하고 집에 가면 아이들도 돌봐야 한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마음이 복잡하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글도 써야 한다. 배드민턴, 탁구, 수영, 골프 등 하고 싶은 운동도 많다. 절대적 시간 빈곤자인 워킹맘이지만 틈틈이 나를 위한 시간도 갖고 싶다. 그러나 어렵게 시간을 만들었어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근래 들어 새벽 기상도 실패하는 날이 많았고, 힘겹게 책상에 앉았지만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일도 많아졌다.


여름은 나의 체력이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는 계절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지쳐 나가떨어진다. 헉헉대며 하루 일과도 힘겹게 소화한다.


여름은 이렇게 나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내 한계를 직시하게 하는 혹독한 계절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구본형 작가님은, 한 사람의 인생을 12개월로 나눠봤을 때 마흔이라는 나이는 아마 8월 말쯤이나 9월 초쯤의 들판과 같다고 한다. 여름처럼 푸르고 뜨거울 수는 없으나 아직도 푸르고 뜨거운 때. 마흔 언저리의 나와 참 많이 닮은 계절이다. 마흔쯤의 나는 한여름의 생생한 기운처럼 젊고 푸르르진 않지만 아직은 젊고 푸르다. 2-30대의 탱탱하고 탄력 있는 몸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는 탱탱하고 탄력이 남아있다.


여름 없이는 가을도 없다. 좋은 여름만이 좋은 가을을 만들듯이 나의 마흔은 좋은 오십 대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마흔쯤의 나는 이 여름 한복판에서 더 절박해진다




여름은 오만하다. 오만하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푸르고 뜨거울 수 있겠는가. 살면서 한 가지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오만을 떨 수 있는 며칠이 남아 있다. 겸손한 가을이 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있다. 참으로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는 열매 속에 엄청난 에너지를 채워 넣을 수 있는 찬란한 여름이 며칠이 남아 있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_ 구본형


8월 말쯤의 나는 여름의 오만을 떨 수 있는 며칠이 아직 남아 있는 시기다. 절박한 만큼 나에게 남아 있는 이 며칠을 잡고 싶어지는 마음도 절실해지는 시기다. 마른 몸, 저질체력, 이대로 50대를 맞이한다면 노화와 함께 더욱 힘겨운 시기가 될 것이 뻔하다.


마지막 오만을 제대로 부려볼 수 있는 나이, 그리고 다음 시기에 대한 절박함을 실감하게 하는 여름.






연예인 이효리를 볼 때마다 여유 적적 한 제주살이도 부러웠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탱탱하고 탄력 있는 몸이 너무 부러웠다. 늘씬한 몸,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들, 이효리의 몸을 볼 때마다 저거다 싶었다.


살을 찌우는 것도, 체력을 기르는 것도 운동이 제일 우선이다. 저질체력이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되기 시작하면서 마녀 체력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마녀 체력'의 저자 이영미 작가님은 160도 안 되는 작은 키, 몸무게도 나와 비슷하다. 평생 운동 한번 안 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책상에서만 일하다가 마흔 넘어 운동을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수영을 시작했다. 마라톤으로 체력을 길렀고 지금은 철인 3종 경기도 거뜬히 소화하신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체력부터 기르라는 말은 뼛속 깊이 와닿았고, 마녀 체력이 생기고 난 후 삶이 180도 바뀌었다는 내용은 종이장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에게 '마녀 체력 갖기'를 버킷리스트 목록에 올려놓게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우와~ 우와~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책을 덮자마자 아웃렛에 가 운동복을 사고 달리기를 시작했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라 유모차를 밀면서 달리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올해 초, 2021년 새해 계획을 야심 차게 세우며 마녀 체력을 목표 중 하나로 세웠다. 매일 바이크를 타고 체력 기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스쾃을 하루에 100개씩 한다. 마라톤 10킬로 코스를 완주하겠다는 중기목표도 세웠다. 1년의 반을 넘어선 지금, 바이크는 몇 달째 거실 회전 책장 옆에서 빨래걸이로 사용되고 있고, 스쾃은 작은 방에서 베란다로 옮겨졌다. 매년 열리던 독산성 마라톤 대회는 코로나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인간은 작심삼일의 동물이고 변덕쟁이며 쉽게 결심한 만큼 쉽게 포기하는 나약한 동물이다. 나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름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애써 위안받고 말기를 반복한다.


또다시 여름이다.

마른 몸을 드러내지 않으려 옷을 차려입고 더 이상의 체력 저하를 막기 위해 영양제 몇 개를 챙겨 먹으며 땜질식 처방만 반복 중이다.


올여름, 다시 욕 심한 번 내 볼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항상 다음 샷이며 다음 샷에서 성공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여름의 한 복판에서 이효리 같은 몸을 가질 수 있다는 오만을 제대로 다시 한번 떨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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