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맥주

글. 책, 여름 _ 나의 소울푸드

by 꿈꾸는세젤이맘



나는 술 잘 못 먹는 애주가다.


애주가인데 술을 잘 못 먹다니, 진짜 술 잘 먹는 애주가들이 들으면 손사래를 칠 수도 있겠지만 술을 좋아하는 것과 잘 마시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 않은가,


처음부터 술을 못 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 여자의 몸 상태를 출산 전후로 비교하는지 애 둘을 낳고 마흔 줄을 넘어선 지금 뼈저리게 체감하는 중이다.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마흔 언저리에 애까지 낳았다. 둘째 출산 후 내 몸의 근육과 장기들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현저히 그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흔이라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아 가속도가 붙은 노화까지 더해져 내 몸은 알코올을 해독하고 분해하는데 예전보다 더 안감힘을 써야만 했다. 맥주 2캔에도 숙취가 생기는 불상사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인생의 찐 재미 중 하나가 술 마시는 재미 아닌가, 진탕 찐하게 마시면서 영혼을 주고받는 대화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그래도 맥주 그리고 나의 최애 안주들과 함께하는 환상적인 술 타임은 캔맥주 1-2캔으로도 가능하니, 나의 애주가 생활은 아직 유효하다.


고3 백일주로 첫 경험을...


첫 술을 경험한 건 고3 백일주였다. 지금도 수능 보기 100일 전 마시는 100일 주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 100 일주는 은밀하게 그리고 공공연하게 미성년자가 첫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모범생이었나 보다. 20살 바로 직전에서야 술을 먹어보다니. 먼저 대학생이 된 교회 언니 오빠들이 대학교 잔디 교정에서 나를 위한 백일주 자리를 마련해줬다. 종이컵에 따라진 노란색 액체, 안주는 과자 몇 가지뿐. 도대체 이것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대학교, 잔디밭, 대학생 언니 오빠들과 함께 마시는 기분과 분위기에 취해 종이컵 몇 잔을 들이켜고 그대로 쓰러졌다. 맥주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어설펐다.




소주 vs 맥주.... 그리고 막걸리


보통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술은 맥주와 소주다. 이 중 하나를 더하자면 굳이 막걸리를 꼽겠다. 와인, 과일주, 샴페인, 양주 등 다른 많은 술이 있겠지만 이외 것들은 거의 마셔본 기억이 없다.




소주 vs 맥주



맥주냐 소주냐

술을 먹기 전 오늘의 메인 알코올을 결정해야 한다.


맥주는 시원하고 통쾌하다. 톡 쏜다. 젊고 뜨겁다.

맥주 광고에는 어김없이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캬~~~ 하는 감탄사와 함께 '맥주 너를 정말 사랑한다'는 표정의 모델이 등장한다. 하얀색 거품과 함께 투명 유리잔에 서서히 채워지다 넘쳐흐르는 맥주. 땀 흘리며 운동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은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가며 뺨 위로 흐르는 땀도 저절로 씻겨준다. 순식간에 많은 양이 넘어가 목이 살짝 아파오는 순간, 눈을 찡끗하며 기분 좋은 찌릿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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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맥주를 먹기 시작한 건 20살, 대학교 입학 후다. 여중, 여고만 다니다 남녀공학 생활이 시작됐고 맘 맞는 친구들끼리 금세 패거리를 만들어 제대로 먹고 놀자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무조건 1인당 피처(1700CC) 2개. 무슨 호기였는지 3명이 모이면 피처 6개, 5명이 모이면 피처 10개를 마셔야 자리를 끝낼 수 있었다. 20살의 나는 몸도 마음도 대학생활을 열정적으로 즐길 준비가 돼있었고 이제 막 알코올을 접하기 시작한 내 간은 가장 최상의 상태였다.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다 다음날 7시에 아무렇지 않게 MT를 갈 수 있을 정도였으니 조금은 무모했고 대책 없었던 그 시절, 맥주는 20살 대학생들과 너무 잘 어울렸다.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과 특성상 선후배 간의 위계서열이 상당했고, 필수과목에 유도가 있었다. 매주 1회 다 같이 모여 달리기도 했다. 유도는 끔찍하게 싫었다. 유도는 기술의 운동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힘쓰는 운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대방과 살을 부딪히며 힘겨루기를 하는 것도 나랑 맞지 않았다. 도복은 또 왜 이렇게 큰지 큼지막한 포대자루를 입혀놓은 것 같고 발이 예쁘지 않은데 맨발로 운동하는 것도 싫었다. 전공 필수과목이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나마 유도 수업 후 동기들과 치킨집에서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 그 맛에 수업을 견뎠다.


다 같이 몸 부대끼며 운동을 하고 땀을 흘렸다. 마땅히 씻을 곳이 없어 땀 냄새나는 옷 그대로 입은 채 대학로로 갔다. 가장 유명한 치킨집에 가서 350cc 잔에 생맥주를 가득 따른다. ( 그 당시 자주 갔던 다사랑 치킨은 대학로에서 가장 유명했던 치킨집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전국에 수십 개의 분점을 갖춘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마주한 채 건배를 외치고 시원하게 맥주를 마신다. 치킨으로 허기를 채우고 맥주로 땀을 식혔다. 젊음이 흐르는 시간, 시원한 맥주는 너무 잘 어울렸다.







소주는 애잔하고, 구슬프다. 쓰고, 맑다. 포장마차의 낭만이 떠오른다. 고된 노동 후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고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으로 그날의 피로를 덜어내는 노동자의 모습도 떠오른다. 세상 근심과 걱정을 소주잔에 넣고 물끄러미 바라보다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 한 방울, 손예진 정우성 주연의 '내 머릿속의 지우개' 명장면도 떠오른다. 소주와 사연, 어쩐지 어울린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조그만 슈퍼를 했다. 슈퍼, 마트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뭔가 부족했고, 구멍가게라고 하면 딱인 그 정도 규모였다. 석재 농공단지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서 손님들은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래서 였는지 슈퍼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은 술과 담배였다. 아침 7시부터 손님이 찾아왔는데 주로 담배를 사 가셨다. 그 시간에 술을 사 가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일하는 중간에 동료들과 시원하게 한잔씩 하신다고 했다. 기분전환용, 목가심용으로 먹는 술이니 나는 당연히 맥주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소주를 사 가시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아침 7시 출근 직전 가게에 들러 꼭 소주 한 병을 사시는 분이 있었다. 1200원, 소주 한 병 가격을 치르고 가게 소파에 앉아 소주를 소주잔이 아닌 글라스 잔에 가득 따른다. 250cc 글라스 잔에 가득 담긴 소주를 2-3모금에 나누어 단숨에 들이켠다. 안주는 500원짜리 마른 멸치, 아니면 과자 한 봉지다. 그리고 바로 남은 소주를 글라스 잔에 마저 따른다. 같은 방법으로 단숨에 들이켜고 출근을 하신다. 처음에 그분을 보고 걱정부터 앞섰다. 아침 7시에 술을 먹는 것도 문제였지만 거기다 소주를 그것도 한 병을 원샷을 하다니.. 분명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몸은 이미 망가졌을 것 같았고 저런 속도라면 생명에도 위협이 될 것 같았다. 알코올 중독일까? 아침에 저렇게 술을 마시는 분이 저녁에 맘먹고 술을 드신다면 도대체 얼마나 드실지 짐작이 됐다.


"엄마, 그분 저렇게 술을 먹고도 괜찮으실까?"

" 암 씨랑도 않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의외로 엄마는 태연했다.


아침에 먹는 소주 한 병, 그분에게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중독성 습관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의식 같았다. 그분은 소주 한 병을 마셔야 하루 종일 고된 노농을 견딜 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소주 한 병을 마시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그분의 힐링타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분에게 이른 아침 소주 한 병은 살아가는 힘, 하루를 견녀내는 힘을 길러내는 의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소주는 이랬다. 슬펐고 썼다.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20대, 그래서였는지 처음부터 당기지 않았다. 일단 너무 맛이 없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를 때 소주가 당길 리가 없었다. 아직 나는 인생을 덜 살아서 그런 걸까? 소주로 달래줄 인생의 쓴 맛을 아직 보지 못한 탓일까?


그때부터 나의 술은 무조건 맥주였다.


막걸리는 평생 딱 한번 맛보고 지금까지 입에도 안 대고 있다. 내 흑역사의 한 획을 긋게 한 막걸리, 사람이 동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고, 냄새도 맡기 싫은 음식 중 하나가 됐다. 9999 비둘기 학번들이 입학한 그해, 그날은 과 체육대회였다. 과 특성상 남자 선배들보다 여자 선배들이 더 세다. 우리 과 여학생들의 모임은 여우회였는데 여우회 회장과 총무 선배와 한 테이블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 붇기 시작했다. 체육대회 후 나는 몸도 마음도 선배들과 함께하는 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 마음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여자 선배들 눈 밖에 나지 않아야 했고, 권하는 술잔을 거절하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날의 술은 대학교 낭만 감성의 절정, 파전, 두부김치 안주에 막걸리였다.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지 울퉁불퉁한 양은냄비는 원샷하기 딱 좋은 양을 받아냈다. 부어라~ 마셔라~ 나중에 듣고 보니 내가 막걸리를 먹으며 " 야 이거 요구르트네~~ 요구르트~~ " 벌컥벌컥 잘도 받아먹다 조용히 나갔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기억이 없다.


이제 막 동기가 된 우리들은 서로의 집까지 알 정도로 친분을 쌓은 사람이 없었고 우리 집을 못 찾아 중간에 택시를 몇 번을 세웠다고 했다. 나는 택시에 그날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여과 없이 지독한 냄새와 함께 제대로 보여줬고 그날 동기들은 나를 집에 집에 데려다주는 미션을 완수하며 돈과 시간과 옷을 버렸다. 다행히 부모님이 안 계셨고 고등학생이던 남동생은 몸도 못 가누는 누나를 받아 들고 부모님이 아실까 봐 혼자 뒤처리를 다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막걸리를 보면 역한 그날의 냄새가 올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로 후유증이 심해, 막걸리는 그날 지독하게 만났다 영원히 헤어졌다.







술이 먼저인가, 안주가 먼저인가


술 하면 안주를 빼놓을 수가 없다. 보통 술의 종류에 따라 어울리는 안주가 각각 다르다. 맥주는 마른안주나 땅콩, 치킨이 대표적이다. 소주는 탕, 찌개, 회, 삼겹살, 곱창 등과 어울린다. 아니 어울린다고 한다.


맥주와 어울리는 가장 최상의 안주는 당연 마른안주다.

오징어, 쥐포, 한치, 육포 종류는 뭐든 좋다. 가격도 저렴하다. 당시 대학로 마른안주 가격은 4-5천 원대, 가끔 생일이나 특별한 날 먹을 수 있는 7-8천 원대의 과일 샐러드나 치킨, 골뱅이무침 등에 비하면 거의 반 가격이니 대학생들의 최애 안주였다. 마른안주들은 약한 불에 천천히 그리고 골고루 구워 마요네즈와 간장, 청량고추가 섞인 양념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오징어는 고추장도 좋다.


마른안주를 질근질근 씹으며 입안으로 퍼지는 짭짜름한 맛은 입가심용으로 맥주 한 모금을 바로 불러들인다. 술 한 모금, 안주 한입, 서로 공생하는 것처럼 그 둘은 번갈아가며 서로를 애타게 찾는다. 마른안주는 술을 알기 전부터 최애 주전부리 중 하나였는데 맥주와 찰떡궁합이라니, 내가 맥주를 더 찾을 수밖에 없는 중요한 이유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맥주 안주는 회다. 회에 맥주?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회에 맥주를 먹는 사람은 흔치 않다. 회뿐만 아니라 해산물 요리는 맥주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물론 개(인의)취(향)다. 상추를 곱게 펴고 회 한 점을 집어 고추냉이를 묻힌다. 회 한 점을 더 집어 이번엔 초장을 묻힌다. 적당한 크기의 생마늘도 얹는다. 감칠맛을 더해 줄 쌈장을 살짝 찍어 묻힌다. 딱 한입 크기로 야무지게 싼다. 야채의 상쾌함, 회의 싱그러움, 초장과 쌈장의 짜고 달달함, 마늘의 알싸함, 고추냉이의 톡 쏘는 맛까지 입속에서 무지갯빛 폭죽이 터지는 것 같다. 입속에 남아있는 짭짜름 과 알 싸름함을 시원한 맥주로 씻겨준다. 말끔히 씻어낸 입속은 다시 상쾌하다. 그리고 다시 회 한쌈, 그리고 맥주 한 모금이 이어진다. 술과 안주, 기분 좋은 릴레이가 계속된다. 이것이 최고의 궁합이 아니고 무엇일까


지난가을, 나는 처음으로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엄마 혼자 떠난 제주에서 나는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혼(자)이여(행)을 하겠다는 다짐으로 3박 4일 보냈다. 혼여의 찐 추억을 많이 만들었지만 그중 손에 꼽히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고등어회'를 맛 본 순간이었다.





하루 동안의 혼여 일정을 소화하고 고등어회 한 접시를 떠서 숙소에 들어왔다. 맥주 2캔과 함께.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닌 몸은 더 노곤노곤 해졌다. 저녁때가 훨씬 지난 시간이라 내 뱃속은 이미 아무것도 담아두지 않은 채 고등어회만 기다리고 있었다. 고등어회는 육지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회다. 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고등어회를 놓칠 수가 없었고, 그중 서귀포 하나로마트에서 떠주는 고등어회가 최고라는 알짜정보를 입수해 그렇게 고등어회를 준비했다. 상추에 고등어회 두 점을 얹고 고추냉이, 초장, 마늘도 얹는다. 노곤하고 개운한 몸, 허기진 배, 맥주 한 모금과 함께 내입에 들어온 고등어회 한쌈을 맛본 순간, 나는 울뻔했다.


나는 이 비슷한 감동을 카페 서연의 집에서 느꼈었다. 건축학개론 촬영지를 그대로 카페로 개조해 더 유명해진 서연의 집은 카페 앞쪽은 초록이들이 무성한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카페 내부는 건축학개론 영화 포스터와 소품들로 가득했다. 서연의 집은 카페 정면으로 통창이 나 있는데 통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꼭 액자에 담긴 듯 한 장면이 연출이 돼서 이 액자 포토존이 유명했다. 카페 입구부터 차오르던 감동은 카페 안으로 들어서서 액자에 담긴 바다를 보는 순간 최고조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이상의 감동은 눈물까지 끄집어냈었다. 고등어회가 비슷했다. 카페 서연의 집에서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느낀 그 감동을 고작 미각 하나로 나에게 똑같은 감동을 선물해줬다.


카페 서연의 집과 고등어회의 비교라니, 뭔가 처음부터 카테고리가 잘못 잡힌 게 아닌가 싶지만 회는 나에게 최고의 맥주 안주임이 틀림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삼겹살, 곱창, 두부김치, 골뱅이무침까지 나에게는 그 어떤 안주도 맥주와 어울리지 않는 것은 없다. 술을 먹기 위해 안주를 찾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안주들의 맛을 2배로 살리기 위해 맥주를 곁들이기도 한다.


술이 먼저인지, 안주가 먼저인지 가끔 헷갈려도 좋다 둘의 릴레이만 계속된다면.



혼술에도 역시 맥주


육퇴란 말이 있다. 가정에서 엄마의 육아와 살림 노동이 조명을 받으며 육아와 관련된 여러 신조어들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하나로, 육아 퇴근의 준말이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육퇴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갖는 육퇴 시간에 맛보는 혼술은 그야말로 꿀맛. 고된 노동 후에 받는 보상의 시간이다.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몸을 달군 채 준비된 캔맥주를 꺼내고 마른안주를 곁들인다. 이 시간을 위해 아껴뒀던 드라마 '동백꽃필 무렵'을 보면서 그날의 피로를 맥주 한 모금과 함께 날려버린다.





얼마 전에는 첫 바깥 혼술을 경험했다. 여자가 더구나 엄마가 늦은 시간에 혼자 밖에서 술을 먹는 일은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마침 집 앞에 늦게까지 하는 브런치카페가 생겼고 책 한 권을 들고 여유 적적 맥주를 즐겼다.


20살 이후 맥주는 내가 살아온 많은 추억과 감성을 공유했다. 20살 대학시절 새파란 젊음을 만끽했던 시간들, 신림동 고시촌에서 가슴 깊은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도, 경찰학교에서 동기들과 가장 뜨겁게 빛났던 나를 응원했을 때, 결혼 후 육아현실이라는 깊은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때, 맥주는 내 마음을 녹여주고 달래주는 진짜 친구였다.


이 글을 쓰는 순간마다 맥주 생각에 입에 침이 고였다.

이쯤 글을 마무리하고 혼술 타임을 즐겨야겠다.

마요네즈 묻은 마른안주의 짬 짜름함과 톡 쏘는 맥주가 벌써 입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아무튼 맥주, 오늘도 한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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