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의 민낯, 우리는 더이상 김여사가 아니다

글, 책 _ 여름 10 마음 청소

by 꿈꾸는세젤이맘




그날은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감이 몰려오고 나른해지는 몸 상태로 컨디션이 난조를 겪고 있었다. 뭔가 즉흥적인 기분전환 포인트가 필요했다. 회사 메신저로 무작정 그분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시죠? 혹시 오늘 점심 약속 있으세요?'


차로 30분 거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이럴 때 생각나는 사람은 딱 한 분뿐이었다. 만나면 마음 편하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삶의 지혜를 알게 해 주시는 분, 갑작스러운 번개 제의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경치 좋은 한식집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컨디션 모드 전환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그곳은 경부고속도로 동수원 IC와 이마트를 끼고 있는 왕복 8차선 큰 사거리 근처였다.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왕복 4차선 도로로 진입했다. 진행방향 오른쪽 갓길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마을버스 한 대가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1차로는 좌회전 차선이었고 직진을 해야 했던 나는 2차로에 자리를 잡았다. 20미터쯤 앞에 있는 교차로 신호가 정지신호로 바뀌고 있어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고 정차했다. 2차로에 들어서는 갓길 끝에 정차 중이던 버스가 좌측 깜빡이를 켜고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나는 내가 진입한 2차로에서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하며 주행했고 정차한 앞차 뒤에 차례로 정차했다. 그 순간, 갓길에 정차해 있던 버스 기사가 내 차 옆에 바짝 붙더니 창문을 내렸다.


순간,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설마....


버스기사 쪽 창문이 열렸다. 팔 한쪽은 창문에 걸쳐놓고 몸을 반이상은 창 밖으로 뺀 채 나에게 소리쳤다.


" 운전 X 같이 하네 XX 년이!! "


순간 얼음이었다.

온몸이 굳어졌고 손끝 말초신경까지 찌릿했다.





그 버스기사는 오른쪽 갓길에서 1차로 좌회전 차선으로 진입하려 했지만 내가 2차로에 진입하는 바람에 1차로로 진입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버스정류장과 좌회전 삼거리까지는 대각선 방향 직선으로 20~30미터 거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른쪽 갓길차선에서 좌회전 차로로 바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직진을 했다가 유턴을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버스기사는 나에게, 버스가 좀 더 빠르고 편하게 좌회전을 할 수 있도록 버스가 통과할 만큼의 공간을 두고 앞차와의 간격을 유지한 채 미리 정차해주길 기대했다. 버스가 편도 3차로 모든 차선을 대부분 차지하며 도로를 가로질러 좌회전 차선에 진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길 바랬다.



운전 x같이 하네 xx 년이!!




소름 끼칠 정도의 여운이 계속 맴돌았고 좀처럼 몸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내 차에는 블랙박스가 없었다. 몇 달 전 폐차 직전인 차를 중고차로 바꿨는데 블랙박스를 미쳐 설치하지 못했었다. 떨리는 손으로 거치대에서 핸드폰을 빼냈다. 평소 핸드폰을 달고 살았던 난데 왜 이렇게 핸드폰 조작이 맘처럼 되지 않는지, 작동 중인던 내비게이션부터 중지시켰다.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을 증거로 남겨야 했다. 신호가 바뀌어 출발은 해야 하고, 버스는 곧 사라질 것 같았다. 가까스로 버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곧이어 버스는 신호 대기 중인 차들을 뒤로하고 삼거리 교차로를 가로질러 순식간에 왼쪽으로 사라졌다.


버스정류장에 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어렴풋이 들렸다. "저봐 핸드폰으로 찍는다, 요즘은 저렇게 신고 다 하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도로 한복판에서 무차별 폭격을 당한 내편을 들어주는 말들이었다.


맨 마지막에 '년'이라는 말이 붙었다.

'운전 X 같이 하네 XX' 이라고만 했다면 마치 혼잣말인 듯 보일 수도 있다. 굳이 '년'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특정 대상을 지목했다. 대놓고 날 모욕한 것이었다.


똥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여성폭력인가?

아니다. 이건 단순히 폭력이란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부족해 보였고 꺼림칙했다. 그 순간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등장했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혐오.. 여성 혐오..



여성 혐오?!
여성폭력?!



버스기사는 내가 여자인걸 확인하고 본인보다 약자인 나를 향해 정제되지 않은 막말을, 하고 싶은 대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대로 쏟아부었다. 그 순간 나는 그 버스기사에게 막 대해도 되는 존재가 돼버렸고, 버스기사는 나의 운전실력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욕설을 섞어 무지막지하게 내뱉었다. 명백한 폭력이었다.


한 남성은 한 여성을 자신의 폭력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이것은 여성을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있는 또는 함부로 하고 싶은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이미 여성 혐오였고, 그 결과는 폭력이었던 것이다.


'김여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운전실력이 미숙한 여성운전자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다른 차들에 비해 속도가 느리거나 차선 변경이 서툰 경우 등 의도치 않게 남성 운전자들을 불편하게 만든 경우 주로 등장한다.


" 저 차 분명 아줌마다"

" 거봐 아줌마네, 아니 김여사는 집에나 있지 왜 차를 끌고 나온 거야 " 라며 상대 여성의 나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김여사로 싸잡아서 무시하는 남성 운전자들은 여전히 꽤 많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운전이 상대적으로 미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발력이나 공간적 거리감 등 타고난 감각이 남성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운전자가 많은 요즘, 도로교통의 정상적 흐름을 방해할 정도의 미숙한 여성운전자는 많지 않고, 운전하는데 카레이서나 숙련된 운전자들 수준의 스피드, 고난도의 드리프트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운전 약자인 여성들에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기대하기는커녕 운전대를 잡는 순간 상대적으로 미숙한 여성들의 권력자로 군림해 약자의 존엄을 무지막지하게 짓밟는 남성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물며 나의 경우는 운전미숙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내가 조금 부족했던 것은 단지 그 버스기사를 배려하지 못해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여성 혐오란
첫째,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inferior being)라는 것
둘째, 여성은 위험한 존재(dangerous being), 즉 남성을 유혹하여 타락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



여성 혐오, 여성폭력이라는 실체가 내 앞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내면화된 여성 혐오가 폭력으로 나오게 된다.

몇 년 전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강남역 여대생 살인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 시선과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한국사회의 가부장 문화는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권력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학습시켰고, 우리 어머니들과 딸들도 역시 사회 곳곳에 내재된 폭력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학습해 버렸다. 이렇게 여성 혐오는 은밀한 방식으로 또는 노골적인 방식으로 우리 생활에 침투했고 내면화된 여성 혐오는 현실세계에서 누군가의 존엄을 파괴했다.


강남역 살해사건이 발생했을 때 많은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중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일부 남성들은 여성들이 과민 반응하는 것이라며 일베 사이트를 도배했고, 어떤 남성은 "네가 허용하는 만큼만 무력한 거야"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첫 여성 대통령이 나왔고 공무원이나 기업 채용시험에 여성할당제가 도입되는 등 표면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많이 향상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반응과 그날의 나의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여성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직접 피해자는 아니었지만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와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은 적이 있다. 진로를 방해하는 상대 운전자를 두고 버스기사가 큰소리로 욕을 하는 경우, 상대편 운전자와 다툼이 생겨 운전대를 놓아버린 채 도로 한복판에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경우 등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런 사례는 한두 번쯤 겪었을 것이다.


분노에 휩싸인 버스기사의 욕설과 폭언은 뒤에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들은 승객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당사자가 아니니 아무렇지 않았을까?


그날 동수원 IC 부근 삼거리 교차로에는 오고 가는 차들도 많았고 보행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버스 안에는 승객들도 있었을 것이다. 버스기사의 극악무도한 막말은 나에게 쏟은 것이었지만 그 똥물은 나 말고도 그 말은 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튀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차를 운전해 회사로 돌아왔다. 온몸에 똥물을 뒤집어쓴 채로 말이다. 내가 찍은 사진은 그 시간 그 장소에 버스가 있었다는 증거일 뿐, 버스기사가 나에게 했던 모욕적인 행동에 대한 직접증거는 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버스회사에 전화를 해 상황설명을 했고 관계자는 사과를 했다. 고민 끝에 국민신문고에 버스회사와 운전기사에 대한 민원제기만 하고 더 이상의 절차는 진행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남편에게 울분을 토해내며 조금씩 그날의 오물을 벗겨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날의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기억의 조각들이 사라져 가는 것과 비례해 몸에 묻어 있던 오물 한 방울 한 방울의 잔재도 거의 떨어져 나간 듯했다.


가정폭력, 성폭력, 묻지 마 폭력...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여성폭력, 여성 혐오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그날의 오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온다.


나름 평탄하게 큰일 한번 겪지 않고 복잡한 일에 얽히지도 않은 채 무난하게 살아왔다. 만약 내가 그 현장에서 차에서 내려 버스기사에게 맞섰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여성 혐오의 민낯을 직접 겪어보니 피해 여성은 생각보다 더 힘이 없었고, 그 무자비한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털어내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버스기사는 그날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람들에게 무용담 이야기하듯 운전 못하는 센스 없는 김여사가 진로를 방해했고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인 본인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순간 욱했던 감정을 누르지 못해 실수한 것이라고 생각할까?


7월이 무르익은 지금, 장마가 시작되면서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의 한 복판이다. 찬물에 더위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것과 다르게 그날의 잔상들은 이상하게도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망각의 기술을 선물했건만 폭력의 흔적은 기억보다 진했고 꽤 질겼다.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써 내려감으로써 내 몸에 남아있던 오물 한 방울을 털어내는 중이다. 그날에 대한 버스기사의 기억이 후자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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