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 지금 어디에 있나요?

[글, 책 _ 여름 5] 안젤리나졸리를 꿈꿨던 경찰관 이야기

by 꿈꾸는세젤이맘


책장 맨 위칸에 있는 물건들은 대체로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추억과 관련된 소중한 것들이어서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꼭 챙기게 되고 다시 그대로 책장 맨 위칸에 꽂아두게 된다.


결혼 앨범, 웨딩촬영 앨범, 아이들 성장앨범, 아파트 계약서도 보인다. 건강검진 결과표도 끼어 있네?

그리고 눈에 들어온 2010년 경찰교육원 졸업앨범...


졸업 후 11년이다.

세상에, 그동안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니...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자 경찰 제복을 입은 앳된 소녀가 웃고 있다. 가장 순수했고 뜨거웠던 그날, 앨범 속 나를 보는 순간, 그때의 열정과 설렘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았다.


2009년 봄, 경찰공무원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5년간의 지독하고 처절했던 신림동 고시촌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그해 4월, 1년간의 합숙 교육훈련을 받기 위해 경찰 종합학교에 입교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경찰 종합학교.

그때는 인천 부평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었다.


입교 첫날, 밝고 푸르렀던 그날, 햇살은 유난히 눈부셨고 부평역 지하철역에서 경찰 종합학교 정문까지 이어지는 길의 모든 풍경들은 전부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빨간색 트렁크를 끌고 종합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나의 꿈이 저 앞에 있었다.






이곳을 거쳐 가는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학교 정문을 들어섰다.

나의 꿈, 새로운 시작, 꿈에 그리던 제복, 사명감을 주는 문구까지 가슴 터질 것 같은 떨림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임이 틀림없었다.

교육기간은 1년이지만 첫 4주 동안은 기초 제식과 체력훈련만 받고, 외출과 외박이 금지된다. 우리 동기들은 여자 5명, 남자 45명 총 50명이었는데 남녀 구분 없이 귀밑 5센티 이하 두발제한 규정이 있었다. 눈빛을 들키지 않으려는 건지 모자를 푹 눌러써 입술만 보이는 조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기동화에 네이비색 각 잡힌 훈련복, 기상부터 취침까지 정해진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생활하는 이곳은, 딱 군대였다.


4주간의 체력훈련이 시작됐다.

아침 6시 기상 점호를 시작으로 오전, 오후 꽉 짜인 일정이 18시까지 이어졌다. 아침마다 400미터 트랙 운동장을 10바퀴씩 뛰고, 차렷, 열중 쉬어, 앞으로가, 뒤로 돌아가 같은 기초 제식훈련이 반복됐다. 무거운 기동화를 신고 등산을 한다. 악중에 악산이라는 서울 도봉산은 이게 길인지 돌덩이들이 그냥 뿌려진 건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내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지만 무작정 빨리 오르란다.


땀으로 범벅, 온몸이 흙으로 덕지덕지, 기동화를 벗으면 꼴랑 발 냄새가 진동한다. 훈련은 남녀 구분 없이 똑같이 받았고, 여동기 중 한 명은 발톱이 빠졌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여동기 5명은 공동 샤워실에서 다 같이 샤워를 하며 그날의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교관이 너무 재수 없다, 남자 동기 누구는 왜 이렇게 운동을 못하냐, 팔 벌려 높이뛰기 300개 고지 앞에서 쓰러질 뻔했다는 등등.. 같이 땀 흘리고 고생하고 볼 거 못 볼 거 다 보며 지낸 우리들은 밤이 되면 5명이 한 침대에 모여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4주 동안의 기초 체력훈련이 끝나고 첫 외박이 허락된 주말, 우리들은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곱창집에서 찐하게 한잔 하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5시,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세 그칠 비가 아니었다. 우산을 써도 신발과 바지가 다 젖을 정도였고 바람도 불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한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 같았지만 얼마나 기다려온 외박인가~ 얼마나 기다려온 곱창이란 말인가






비에 옷이 젖건 말건 우리는 인천 부평역에서 2호선 홍대입구역까지 지하철을 탔고 오후 7시가 다 돼서야 홍대입구역에 도착했다. 홍대입구역은 꽤 유명한 곱창 맛집 골목이었다.


어느 곱창집이든 만석이었다. 테이블 하나가 비어있는 곱창집에 들어갔다. 가게 이름은 교수 곱창. 대학교 앞이라 그런가? 이름부터 평범하지 않다. 반쯤 젖은 머리, 상기된 표정의 우리들은 돌판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곱창과 양파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먹어도 돼요'라는 사장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맥주잔을 부딪히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소리로 외쳤다. '건배~!!' '이히~~~!! 곱창이닷!" 드디어 곱창을 맛볼 차례다. 곱창 한 조각을 집어 양념장을 찍는다. 꽉 찬 곱은 흘러내릴 듯 말 듯 하다. 뜨거울 것 같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곱창이 입에 들어온 순간, 아... 입안에 꽃이 피었다. 곱창이 씹자마자 그냥 녹아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곱창이 있을 수가 있을까? 곱창이라는 소의 부속물이 날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 언니, 여기 교수 곱창인데 교수는 없네?"

"하하하 아이고 배야~~~ 교수가 없대~~ ㅋㅋㅋ "


시답지 않은 농담에도 박장대소하며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찐하게 첫 외박을 즐겼다.


여름에는 한 달간 해양경찰특공대에서 특별훈련이 있었다. 지금의 훈련도 충분히 평범하지 않은데 앞에 특별히 붙었다. 그것도 특공대에서 특공대원들에게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한숨부터 나왔다. 체력훈련은 더 힘들었다. 경찰 종합학교에서 받았던 체력훈련은 어찌어찌 버텼는데 여기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뭐든지 2배의 기록을 요구했다. 기동화는 천근만근, 내 팔에 커다란 추가 매달려 있는 듯 팔도 들어 올리기 어렵다. 헉헉... 정신까지 놓으면 안 된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데 여동기 중 한 명이 자꾸 실수를 했다. 결국 불려 나갔다.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자!!" 복창을 하며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 여동기 중 가장 어렸던 그 친구는 교관님이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벌칙을 수행했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아... 웃으면 안 된다....

근데 너무 웃긴데 어떡하지?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번엔 레펠 훈련이었다. 레펠?!! 레펠이라고?!!

그 영화에서나 봤던 줄잡고 벽 타고 내려오는 그거? 진짜 미치겠다. 이게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우리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높이는 11미터라고 했다. 11미터? 그래도 생각보다 높지 않네?

오만방자한 생각이었다.


위아래, 모자, 신발까지 검은색으로 빼입은 교관이 시범을 보였다. 와~~ 다리를 모은 채 밧줄을 타고 미끄러지듯 쭉 내려와 살포시 착지한다. 아니 저건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 아닌가? 순간 나도 앤젤리나 졸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망상을 품었다. 그래 해보지 뭐~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올라 출발지점에 섰다. 몸에 밧줄을 감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휘청~ 체감 100미터 높이, 어질어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끼는 높이가 11미터라고 한다. 내가 온전한 정신이라고 생각했는지 까만색 선글라스 교관은 안전수칙과 밧줄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하강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 해보자~!! 원래 겁이 없는 편이었다. 운동도 꽤 잘하는 편이었고 체력도 나쁘지 않다. 놀이기구 타는 걸 즐길 만큼 짜릿한 스릴도 좋아한다. 뛰었다! 붕~~ 잠깐만.. 그다음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롱대롱~ 나는 11미터 높이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내려가야 는데.. 밧줄을 어떻게 하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 어떻게 하지?


앤젤리나 졸리는 매달린 몸에 반동을 일으켜 벽을 탔었다. 벽을 타야 하나? 근데 벽이 어디 있지? 벽은 내 뒤에 아주 멀리 있었다. 머릿속이 깜 했다. 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저절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아주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와 매트 위에 내 몸은 널브러졌다. 보다 못한 교관님이 밧줄을 조절해 나를 착륙시킨 것. 앤젤리나 졸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널브러진 몸을 그대로 일으켜 동기들과 눈이 마주칠세라 그대로 맨 뒷줄로 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아.. 정말 창피하다






우리 여자 동기들은 총 5명이었는데 30살이었던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아서 동생들은 나를 '큰 성' 혹은 '넘버원'이라고 불렀고, 노래방에 가면 어김없이 보아의 넘버원을 열창해줬다.


30살은 동기들 중 평균 정도 되는 나이였지만 군대를 가지 않은 여자치고는 조금 늦게 합격한 나이였다. 이상하게 이 나라에서는 나이가 놀림감이 되는 일이 많다. 30대였던 나는 동기들 사이 나이가 약점이 되어 큰누님으로 불리며 농담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날은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하고 있었다. 방탄조끼를 입고 노란빛의 보호안경을 쓰고 실탄을 장전한 채 총을 쏜다. 긴장감속에서도 어쩐지 멋있는 것 같은 내 모습에 취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동기들끼리 사격 점수 내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최대한 집중해 사격을 마치고 나온 후였다.


사격 교관님이 나에게 물었다.


" 이소희 후보생은 몇 살인가? "

(당시 우리는 경찰간부후보생으로 이름 뒤에 후보생이 붙어 호명되고 있었다)


" 네!! 저는 올해 서른 살입니다!! "


똑 부러지게 복창했다.

내 나이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듯이.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


동기들이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한 나에게 동기 중 가장 어렸고 나이 많다고 자주 놀려댔던 당시 25살 남자 동기가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 누나 사격 몇 사로에서 쐈냐고 물으시는 거잖아요'


허걱... 몇 살 = 몇 사로....


사로는 사격장에서 사수가 총을 쏘는 방향, FIRE LANE을 일컫는 말이다. 내 사격 실력이 궁금해 물으셨던 건데 그걸 또 나는 내 무의식 속 단어, 듣고 싶은 단어로 들어버렸다. 맙소사.. 두고두고 놀림감 하나가 더 생겼다.







2009년 그해,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꿈을 키웠던 우리가 가장 빛났던 그해, 나는 정말 행복했다. 앨범을 한 장씩 넘기니 1년 동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체력훈련 시작 첫날, 발목을 접질려 첫날부터 열외 하며 안절부절못했던 일, 입교 후 체력훈련 중 처음으로 제공된 치킨을 보고 흥분해 미친 듯이 먹다 체해 응급실에 실려갔던 여동기의 뒷모습, 특공대 수영훈련 중 서해바다 한복판에서 짠물을 마시며 물장구치고 놀았던 일....


그리고 이 앨범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고시촌에서 고군분투했던 지독했던 수험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 지금 나의 일상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추리닝을 입고 독서실에 처박혀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 꿈이었던가, 경찰 종합학교에서 뛰고 구르고 땀 흘리던 그때, 어깨 위의 계급장이 더 찬란하게 빛날 그날을 꿈꾸며 얼마나 가슴이 뛰었었던가



지금 나의 일상은
과거의 내가 그토록 꿈꾸고 바라던 로망이었다



어느새 11년 차 경찰공무원이다.

11년이란 시간을 살아보내며 내가 간절히 바랬던 로망은 일상이 되었고 그 일상이 이제는 하루하루 해내야만 하는 그런 일이 되어 버렸다.


앨범 속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을까. 하루하루 나에게 없는 것들만 보면서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온 내가 앨범 속의 나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힌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오니 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 책은 도끼다 박웅현 -


지금 나의 일상은 과거의 내가 그토록 꿈꾸고 바라던 로망이었구나... 나는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이었구나..

앨범 속 일기장을 들여다본 후 나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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