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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Dec 30. 2021

쪽집게 타로마스타를 만났습니다




"얘들아 우리 내년에 삼 재래, 나 사주 보러 간다~!!"

단톡방에 한 친구가 톡을 올렸다.


12월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지금쯤 사람들은 내년 운세를 궁금해한다. 가족들은 건강한지, 사업에는 큰 문제가 없을지, 입시를 앞둔 자녀가 있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 더구나 80년생 원숭이띠들이 22년에는 삼재라고 한다. 내일의 일은 알 수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최소한 불행은 피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사람들은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나선다.


2년 전, 이 지역 맘 카페에 '타로 마스타'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사주와 타로를 같이 보는데 족집게라고 했다. 너도 나도 정보를 달라며 게시글 댓글이 백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당시 휴직 중이던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큰애 어린이집 친구 엄마 '례'와 '타로 마스타'의 소식을 듣고 귀가 번쩍였다.


(례) " 언니! 우리 가보자 가족 전부 봐주는데 5만 이원 이래!"

(세젤이 맘) " 아 그래? 오~~ 흥미로운데? 그렇게 용하대?"

(례) "언니, 장난 아니래, 다 맞춘대, 정말 신기하다는데?"

(세젤이 맘) " 나 태어난 시를 잘 모르는데... 엄마한테 얘기하면 아마 엄청 뭐라 할 건데 "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에게 자식들 태어난 시를 확인해야 하는데, 타로점을 보러 간다고 하면 아마도 불호령이 떨어질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좋은 재미를 놓칠 수가 없었다.


마스터는 그 달은 이미 예약이 다 차있었다.

다음 달로 어렵게 예약을 하고 례와 함께 옆 도시 수원까지 달려갔다.


" 안녕하세요?"


긴장감 속에 살짝 들떠있는 아줌마들과는 달리 마스터는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가만히 내 얼굴과 례 얼굴을 번갈아 응시하기 시작했다. 조금 민망할 정도로 오랫동안 봤다.


(뭐지? 역시 용하다더니, 다르네? 관상도 보는 건가?)


(례) "언니, 신기 있다. 이 사람 신기도 있는 것 같아 "

마스터가 차를 준비하는 사이 례는 나에게 속삭였다.


(마스터) "무엇이 궁금해서 오셨을까?"

(세젤이 맘) " 아.. 그냥요. 저희 가족 건강한지, 크게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이사를 계획하고 있거든요, 이사를 지금 해도 될는지 이것저것이요 "


(마스터) " 그쪽은 건강을 좀 신경 써야겠는데? 당뇨 조심해 "


헉! 헉!

례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임신 중 임신성 당뇨로 진단받아 관리를 해왔었다. 임신성 당뇨는 출산과 동시에 대부분 없어지지만 췌장 기능이 한번 손상된 터라 출산 후에도 꾸준하게 관리를 해줘야 한다.


(마스터) "내가 특히 건강 쪽을 잘 봐, 얼마 전에 뇌졸중도 맞혔잖아. 그리고 언니는 좀 즐겨, 그냥 순수하게 좀 즐겨봐, 결과물이 없더라도 성과를 바라지 말고, 취미를 갖도록 해 욕심을 내려놓고 "


오 마이 갓! 어려서부터 욕심이 많았다.

철저히 성과지향주의적인 내 성향을 꿰뚫어 봤다.


당시 6살이던 큰애에 대해서는 '언어 쪽이 참 발달했으니 그쪽으로 키워봐라' 부동산, 사회복지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던 남편에 대해서는 '지금 고3 머리를 가지고 있다. 공부하는 거 다 미뤄줘라, 나중에 다 쓸모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나와 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큰애는 유난히도 또래에 비해 말을 잘했고, 가끔은 6살 아이의 말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단어와 문장들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많았다. 남편은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었고 그 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마스터) " 언니는 왜 왔어? 여기 올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왜 왔어? "


례를 향한 마스터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례는 걱정과 근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고 있지만 남편이 돈만 많이 벌면 그냥 놀고 싶다며 82년생 김지영을 이해하지 못했고, 손재주가 좋아 요리도 수준급이어서 집으로 사람들을 자주 초대했다. 항상 즐겁고 긍정적인 례였다.


그리고 나는 누나를 따라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던 남동생 사주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가장 큰 이유였다.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수험기간이 벌써 4년이 넘어서고 있었다. 동생은 3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고 아직 결혼도 안 했다. 엄마도, 나도, 동생도.. 모두 지쳐가고 있었다.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갈림길에 놓여 있던 참이었다.


(마스터) " 어렵겠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해, 합격하지 못할 거야 "


아..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네가 할 의지만 있다면 해라, 누나는 네가 원하는데 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기회비용이 너무 많았고 나이가 차서 취직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동생이 자신감을 잃고 무너질까 봐 그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마스터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동생에게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자' 고 했다. 마스터를 만나고 온 나는 동생에게 어려운 말을 너무 쉽게 해 버렸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 동생은 누나인 나를 많이 의지했다. 경찰공무원인 누나가 자랑스럽다며 밖에 나가면 누나 자랑을 많이 한다고 했다. 고민이 있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끝까지 밀어주겠다던 누나가 다른 일을 찾아보자고 하니 동생은 아무 말 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점집 시장 규모는 연 4조 원에 이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나의 미래다.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의 미래를 알려준다고 한다. 이미 지난 과거를 집어내며 자신이 용함을 증명하고 뒤이어 건강, 취직, 결혼, 이사, 사업 등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 길일지 흉 일지 예측해 준다. 불안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 마스터는 한 시간 동안 나와 내 가족 이야기를 들어줬고 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에 답해줬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를 얘기해줬다.


이사를 가도 된다는 마스터의 말대로 그해 나는 큰 탈 없이 이사를 했다.


마스터의 점괘는 여러 가지로 꽤 정확했다.

나와 례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뒤 동생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 " 누나~ 나 해양경찰 도전해 보려고. 시험 과목이 거의 같아. 한 과목만 다시 공부하면 되고 경쟁률도 일반 경찰보다 많이 낮더라고. 한번 해보고 싶어 "


해양경찰?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해양경찰. 시험과목이 거의 같다. 다만 선발인원이 일반 경찰보다 적었고 경쟁률도 낮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생이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그동안 얼마나 맘고생이 심했을까 싶어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세젤이 맘) " 와 좋다! 왜 그 생각을 진즉 못했지 우리? 동생 한번 더 해보자! 느낌이 좋은데?"


과연, 미래는 정해져 있는 걸까?

타로 마스터는 이미 동생의 미래를 내다봤었다. 마스터의 점괘가 있었지만 동생이 해양경찰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 나는 마스터보다 동생의 선택을 믿기로 했다.


시험은 2달 남짓 남았었다. 한 과목을 새로 공부해야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과목도 아니었다. 동생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쏟아부었다. 다만 해양경찰은 수영이 필수였다. 필기시험 합격 후 2차 체력검정에서 50미터를 120초 안에 들어와야 하는 수영 필수코스가 있었다. 동생은 수영을 못했다. 해양대학교를 나와 선장을 하고 있는 동생 친구가, 그 정도는 보통 남자라면 조금만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하니 걱정 말고 시험 준비를 하라고 했다고 했다.


12월이었던 시험이 코로나로 다음 해 2월로 연기되었다. 새로운 과목과 수영이라는 부담 때문에 시간이 조금 부족했던 동생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사주는 사람을 하나의 집으로 비유하고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그 집의 네 기둥이라고 보아 붙여진 명칭이다. 사주팔자를 풀어보면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을 알 수 있다고 해서 이에 근거해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이 바로 명리학이다. 사람의 사주는 정해져 있으니 그 사람의 길흉화복도 어느 정도 예견돼 있다는 것이다.


동생은 이번 기회가 본인에게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고 그해 동생은 해양경찰공무원에 최종 합격했다


심리학에서 바넘 효과라는 말이 있다.


1949년 포럼이라는 교수가 대학생들을 상대로 모두에게 똑같은 성격검사결과지를 나눠주고 자신의 성격과 얼마나 맞는지 판단해보라고 했는데, 80% 이상의 학생들이 모두 자기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했다고 한다. 모두 똑같은 검사 결과지를 받았는데도 말이다.


사람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기 마련이다. 같은 노래를 듣거나 책을 읽어도 자기의 경험과 상황에 맞추어 주관적으로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타로 마스터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마스터의 이야기는 왜 내 상황에 딱 맞았던 것일까


이 세상을 살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제도, 정치도, 사업도, 사람들과의 관계, 직업, 건강, 죽음 그 무엇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딱 하나, 나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로지 내 마음뿐이다.


남동생이 해양경찰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 타로 마스터가 정해준 운명에 순응해 시험을 보지 말라고 했다면 동생과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생의 끈을 다른 사람이 끌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지금쯤 나와 동생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만약 내 의지로 선택한 미래마저 정해진 것이라고 한다면 내 인생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이미 정해져 버린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면 내 인생의 통제권을 나의 자유의지가 아닌 외부적인 어떤 것에 맡겨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


나의 미래가 궁금한가?

미래는, 이미 정해졌다고 알려진 사주나 점집에 있지 않다. 정해진 것은 없다.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곳에 나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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