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물가 지수, 국민총생산, 30평 아파트 가격 등 한나라의 경제상태나 수준을 말하는 지표들, 쉽게 말하면 그 나라의 국민이 먹고살만한 때인가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중산층'이다.
뉴스나 신문에서 얘기하는 내용을 보면 중산층 정도 되면 하루 세끼 빠트리지 않고 챙겨 먹을 수 있는 정도이고,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직업이 있다는 말이며,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내 집 정도는 있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어릴 적 나는 과연 우리 집은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너무 궁금했었다.
우리 집 사정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부모님 뿐이라 부모님께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중산층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없던 좌절감이 생길까 봐 자문자답으로 끝낸 기억이 있다.
그 무렵 우리 집은 밥을 굶은 적은 없지만 엄마가 김밥 싸줄 때 단무지만 넣어서 싸줬던 기억이 있고, 10가구 중 8가구 정도는 유선 전화기가 놓여 있던 때 우리 집은 아직 전화기가 없어서 옆집으로 전화를 했었다. 먹고, 자고, 입는 의식주는 해결됐지만 삼겹살 한번 외식하기 빠듯했었던 사정을 가늠해 볼 때, 그래도 누가 물어보면 '우리 집도 중산층이에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중산층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자문자답 끝에 우리 부모님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도 중산층이 되기 어려운데 나중에 어른이 되고 중산층에만 들어가면 어느 정도는 성공한 인생이겠구나 생각했었다.
네이버에서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검색해보면 'OECD는 중위소득 50-150퍼센트인 가구'를 말한다고 하고, 각종 뉴스나 블로거들의 글에서는 월 500-600 이상, 연봉 얼마 등 어디에서나 소득 또는 재산을 기준으로 중산층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삶을 살아가며 영위하는 분야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학, 인문, 예술, 종교, 철학 등 이렇게나 많은데 왜 경제적인 척도만 가지고 중산층을 나누는 것일까
그러다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나라별 중산층의 기준'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영국(옥스퍼드대에서 제시한 기준)
페어플레이를 할 것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나만의 독선을 지니지 말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프랑스(퐁피두 대통령이 제시)
외국어를 하나 정도 구사하여 폭넓게 세계 경험을 갖출 것
한 가지 이상의 스포츠를 즐기거나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룰 것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별미 하나 정도는 만들어 손님을 대접할 것
사회봉사단체에 참가해 활동할 것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을 것
대한민국(직장인 대상 설문)
부채 없는 아파트 평수 30평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급 중형차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해외여행은 1년에 몇 번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은 영국과 프랑스의 기준과 비교할 때 꽤 간단해 보였고, 각 기준마다 30, 500, 2000, 1억 등 숫자가 등장했다. 누가 중산층인지 그 자리에서 몇 가지만 따져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많고 적음, 충분과 부족의 기준을 숫자로 나타낸다면 합격과 불합격 대상을 결정할 때도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인 수준을 나타낼 때도 참 편하다. 등급과 서열을 나누는데 익숙한 사회에서, 숫자는 전 생애에 걸쳐 다방면으로 등장했다. 수능 00점, 토익 00점, 내신 0등급, 키 00센티, 몸무게 00킬로, 자산 00원, 부채 00원 등 지금까지 나를 표현하기 위해 숫자가 동원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숫자로 채워지는 이력서 앞에서 우리는 부족한 숫자를 채우고, 더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또 한 번의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줄 세워지는 학교, 직장, 사회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긴장하고,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안도한다.
그러나 과연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숫자로만 채울 수 있을까?
나의 아버지는 소규모로 건설업을 하셨는데 언젠가 큰딸인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빠는 꿈이 있어"
꿈? 큰 딸이 다 자라서 성인이 되었고 아빠는 50세를 넘어가고 있었으며 2-3번의 직업을 바꿔가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아빠에게서 '꿈'이라는 단어가 나오니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아빠한테도 꿈이 있었나?
아빠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어디 시골에 땅 사서 집을 몇 채 지을 거야
그리고 그 집에 오갈 데 없는 어르신들 살게 하는 게 꿈이야
우리는 보통 장래희망을 물을 때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 질문을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질문은 의사, 선생님, 약사, 판사, 경찰, 소방관 등 흔히 말하는 성공한 직업군을 미리 정해 놓고 아이들의 꿈을 그 직업군에 끼워 맞춰 넣는 식이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기준에 따른다면 위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으로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우리 아버지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아버지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고 교육으로 성공하던 시절에 태어나 좋은 학교를 나오지도 않으셨다. 어릴 때 보고 배운 집 짓는 기술로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이 튼튼한 건물을 지었고, 정해진 직업 없이 매일 일자리를 찾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웃들을 인부로 고용해 공사대금을 받으면 가장 먼저 인건비를 챙겨주셨다.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집을 잃게 되었을 때 몇몇 분들이 뜻을 모아 집을 지어주셨으며 먹고 자는 것조차 순탄치 못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던 시절에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셨다.
우리나라의 기준에 따를 때 아버지는 중산층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나눔의 의미를 몸소 실천하셨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으며, 가끔씩은 까맣게 그을린 손으로 피아노를 치셨다.
내가 누구이고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한치의 틈도 허락되지 않는 사회에서 자란 중산층들이, 진정한 페어플레이가 무엇인지,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는지, 자유, 평등, 신뢰, 공정, 나눔 등의 삶의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아파트 평수가 그 가정의 행복 크기와 비례하지 않고 연봉 액수가 그 사람의 자존감을 대변하지 않으며 해외여행의 횟수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견문의 깊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획일화된 틀을 벗어나거나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무능력자가 되고, 그 틀과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은 별난 사람이라 수근대며, 직장에서 자기만의 주관과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조직 부적응자가 되기 쉬운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30평 아파트를 갖고 있고, 중형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1년에 한번쯤은 해외여행을 다니는 당신은 중산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