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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세젤이맘 Jan 22. 2021

엄마 사람, 이기적인 엄마도 자연스럽다

이기적인 엄마가 행복해지는 법



나의 닉네임 세젤이 맘에 대하여






나의 블로그 닉네임은 세젤이 맘이다.

세젤이 맘은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엄마'의 약자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닉네임을 친구들에게 공개하니 참 잘 어울리고, 잘 지었단다


'이기적이다'라는 말을 처음 나에게 던진 사람은 바로 우리 남편이다. 우리 남편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와 같이 살면서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본인의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엄마, 아내와는 참 다른 사람이니, 그럴 법도 하다.


결혼 후 여자에게 우선적으로, 당연하게 주어지는 집안일과 육아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맞벌이로 돈을 벌어 오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도, 친정과 시댁을 대하는 모든 것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 주장했고, 당당하게 나만의 자유시간을 가져왔다. 내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서 신랑과 부딪힐 때마다 신랑은 나에게 그랬다



당신 참 이기적이다
모성애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신여성이다



아무리 전통, 관습이라고 해도 비합리적인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겠고, 공동육아자인 당신과 내가 똑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마다 나는 이기적인 여자, 모성애가 없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비단 우리 신랑뿐이 아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우리 친정엄마는 도대체 누구 편인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나를 다그치신다.


나는 아이 둘을 제왕절개로 출산했고, 첫째는 분유로, 둘째는 모유로 키웠다. 자연분만을 고집하지도 않았지만 의사가 내 몸상태와 아기 크기를 고려해 수술을 권해 큰 고민 없이 제왕절개로 출산을 했다. 그런데 제왕절개는 남자들의 군대로 치자면 현역이 아닌 공익과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연분만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아서 섣불리 얘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제왕절개도 그 후폭풍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첫째 출산 후 첫날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추가로 진통주사를 맞았고, 수술 이틀째, 2미터 앞에 있는 화장실을 가는데 30분이 걸렸다. 허리를 피고 걷기까지는 10흘이상 걸렸다(유독 회복이 느렸다)


예전 한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에서 첫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한 며느리에게 둘째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할 것을 고집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똑같이 아이를 낳았는데도 자연분만 출산과 제왕절개 출산 후 엄마를 다르게 바라보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시선은 도대체 뭘까?


둘째를 출산하고는 입원실에 요청하지도 않은 모유수유 도우미가 방문했다. 내가 당연히 모유수유를 할 것이라 생각한 듯했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신생아 돌봄 이모님들과 많은 산모들이 모유수유를 위해 그리고 완모(보통 아이 첫돌까지 모유로 키운 경우를 말한다)를 위해, 온갖 노력과 정성을 쏟고 있었다. 2시간마다 수유 호출벨이 울렸고, 수유 도우미는 나의 가슴 상태를 보고 충분히 완모 할 수 있겠다며 조금만 더 노력해보라고 한다. 당황스러웠지만 모유수유를 계획하지 않은 내가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 돼가는 것 같아 소심하게 분유 수유 계획을 밝히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허약체질인지라 내 몸 자체가 완모가 가능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복직도 해야 하고, 모유수유로 아이와 묶여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생활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사람은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인가? 여건이 됐음에도 분유로 아기를 키운 엄마들은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인가?


제왕절개를 했어도, 모유수유를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똑같은 엄마다. 40도를 넘나들며 고열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에 뛰어가고, 어린이집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찍히면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며 나쁜 소식이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행여 아이가 다쳤다는 소식이 들리면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그런 엄마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모성애는 다 있다.

각자 그 모습과 표현방법이 다를 뿐이다.


이 세상에 100명의 엄마가 있다면 100개의 다른 모성애가 있는 것,
몸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모성애의 모습도 다른 것이다.
엄마의 모습을 통일시키지 말자

- 김미경 강사 -



아빠의 가사참여, 육아휴직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고,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전통 관습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돼 있지만, 자연분만 출산을 시도하지 않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모유보다 분유를 선호했으며, 집안일과 육아에서 공동육아자와 공평한 분담을 주장한 나는, 아직은 이 사회에서 이기적인 엄마였다.







엄마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자






결혼 후 아이를 낳은 우리는 내 이름 석자 말고 또 하나의 이름이 생겼다. 00 엄마. 바로 내 아이의 이름이 붙는다. 30년 가까이 내 이름으로 불리며 나는 000인 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00 엄마가 되어 있었다.


처음 엄마가 되면 갑자기 들이닥친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럽고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아 당황스럽고 불안하기도 하다.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이 요즘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내 이름 석자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 때의 허탈함과 우울감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듯하다. 또한 관련 뉴스나 사건, SNS 게시글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이 사회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이슈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이어지는 엄마의 인생을 살면서 엄마들이 겪었던 허탈감, 우울감 같은 마음의 병은 예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찾아 이름 붙여주지 않았을 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엄마가 된 후 직장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가정주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경력단절 엄마들의 애환과 고충을 다룬 영화로 많은 관객을 불러들였다. 또한 언론뿐 아니라 맘 카페 등 SNS를 통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일부 남성들은 '역차별'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등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봤다. 그러나 영화를 본 또래 엄마들의 반응은 의외로 조금씩 다 달랐다. 평소 눈물이 많아 손수건까지 준비해서 들어갔겠만 의외로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왜 저렇게 아플 때까지 참고 견디기만 하는지 여주인공의 선택과 삶이 안타까웠을뿐 아니라 아쉬운 마음도 컸다.  


반면, 내 친구는 많이 울었다. 꺼억꺼억.... 소리까지 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여성 관객들이 많았다.


내 친구는 전업주부다.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뒀고, 아이 둘을 낳고 10년 넘게 가정주부로 살아왔다. 친구는 우리 중 요리도 제일 잘하고 육아와 살림에 관한 거라면 모르는 게 없는 친구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엄마,  친구들 사이 육아달인, 생활의 달인으로 통하며 항상 자신보다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행동이 몸에 베버린 그런 엄마다.


무엇이 내 친구를 이토록 슬프게 만들었을까


다른 친구의 반응은 또 달랐다.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조금 달랐다. " 왜 일을 하려고 하지? 남편이 능력 있어서 집에서 살림만 하라면 하면 완전 땡큐지!!! 공유 같은 남편만 오라고 해봐"


항상 유쾌 상쾌한 그녀는 일을 하고 있지만 취미가 요리다. 남편이 능력만 된다면 집에서 가정주부로 살면서 알콩 달콩 예쁘게 살림만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전업주부였던 내 친구는 얼마 전 초등학교 돌봄 교사로 재취직을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원래 계획한 대로 일자리를 찾은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꼭 필요한 시기에 맘껏 엄마를 주고 싶었던 친구였고, 그렇게 충분히 본인의 몫을 다하고 이제는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선 것이다. 내 친구는 본인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 평생을 바쳐 얻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지금 이 자리를, 아이가 생겼다고 포기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협의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었고, 육아휴직과 어린이집, 육아도우미 등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나와 내 친구가 엄마로 살아가는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의 방식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직장을 포기하고 전업주부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 친구가 직장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일찍부터 기관에 보내며 워킹맘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를 조금 놓치더라도 직장을 유지한 채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이, 내 친구는 직장을 포기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이 엄마 자리를 꽉 채워주고 싶었던 것이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우리는 결국 각자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엄마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타고난 성품도 다르다. 당연히 살아가는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을 찾아 조금 더 나은 방식을 찾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엄마들이 선택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엄마 자신들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이길 바란다. 나 자신을 놓치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끼워 맞추며, 억지로 살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기적인 엄마도 자연스럽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행복 그릇을 가지고 있다. 

각자의 행복 그릇은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를 것이고 그 그릇에 채워지는 행복의 종류도 다 다를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욕심도 많고 성취욕도 많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운동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쇼핑을 좋아하고 예쁜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 아이들에 대한 욕심도 많다.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는 것도 고맙지만 기왕이면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성장을 꿈꾸며 가슴 설레는 순간을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참 욕심 많은 워킹맘이다.


이런 내가, 직장을 포기하고 가정주부로만 살아간다면 나의 행복 그릇은 얼마나 찰 수 있을까? 일정 시간 나만의 자유시간을 확보해 책도 읽고, 쇼핑도 하고, 글쓰기도 한다. 신랑과 시간을 맞춰 직장 회식도 참석하고 지인들과 모임도 갖는다. 공동육아자 아빠만 있다면, 나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아빠의 자유시간도 보장해 준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나의 행복 그릇을 채우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간다.


엄마들의 행복 그릇도 다 다르다.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신랑의 경제적 능력이 받쳐준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들만 키우며 살고 싶다는 그 친구는 요리를 참 좋아한다. 그 친구 집에 가면 레스토랑이 따로 없을 정도로 맛도 일품, 플레이팅은 예술이다. 그래서 그녀의 집은 '례cafe'로 불린다. 스트레스를 요리로 푼다니 말 다했다.


집도 참 깨끗하다. 아이들 키우는 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석구석 먼지 하나가 없고 정리정돈도 잘 돼있다. 아기자기 예쁜 소품으로 아늑하고 따뜻하다. 수시로 가구 배치도 바꾼다. 남편 도움 없이 꽤 무거운 가구들을 혼자 다 옮긴단다. 나와 같이 82년생 김지영에 공감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행복 그릇을 채워가고 있다.


가정주부로 아이를 키우다 얼마 전 재취업한 육달(육아의 달인) 친구는 아이들과 신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매일매일 직접 한 요리로 아이들과 신랑의 건강을 챙긴다. 알뜰살뜰 꼼꼼한 정보를 바탕으로 약간의 낭비도 없이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나간다. 그런 그녀가 돈을 아끼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녀는 꽤 자주 가족여행을 간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여행도 간다. 쇼핑이나 개인 여가 생활 대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며 직접 보고, 느끼고, 함께 경험하는 추억들을 아낌없이 만든다. 그녀는 이렇게 본인의 행복 그릇을 채워간다.


완벽한 결혼생활이라는 게 있을까?

완벽한 육아라는 게 있을까?


살림과 육아를 통해, 나의 가족 안에서만 나의 행복 그릇을 완벽히 채우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엄마가 전업주부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반찬가게에서 사 온 음식이 아닌 매 끼니 직접 만든 요리로 식사를 준비하면서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오늘도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며 옷을 받아 들어주는 아내로만 살아간다면, 나의 행복 그릇은 반도 안찰 지도 모른다.


어떤 엄마든, 이렇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행복 그릇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가면 살아간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다.

가장 최악의 엄마는 우울한 엄마다.


아직은 이 사회가 이기적인 엄마라고 얘기할지라도 자신의 행복 그릇 반도 차지 않는 엄마, 우울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자신의 행복 그릇을 가득 채워가는 엄마가 훨씬 낫다.


나의 행복 그릇을 들여다보자.

충분히 차 있는가?

충분히 차 있지 않다면 어떤 행복을 더 넣을지 생각해보자.


이기적인 엄마일지라도 그녀의 행복 그릇이 가득 차있다면 충분히 좋은 엄마고, 평생 이뤄가야 하는 가정 안에서 충분히 자연스러운 엄마인 것이다. 가장 자연스럽고 나다운 엄마로 살아가자.

이기적인 엄마도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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