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게 왜 지금의 이야기인가
브런치를 정리하다가 프로필 소개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기자로 일했습니다. 디지털 구독플랫폼을 운영했습니다..."
제가 쓴 게 맞긴 한데... 새삼 낯설었네요. 기자로 시작해서 어쩌다 저렇게 됐지 싶은 거죠. 지금은 더합니다. 오랜 세월 같은 일을 했던 선배들이 안식년에 들어가는 걸 보면 삼십여 년 기자로 일한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아니게 됐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겁니다.
흔하면서도 좀 거창하게 말하면 '미디어의 변화', 솔직하게 말하면 그때그때의 작은 선택 혹은 떠밀린 것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그냥 기자
방송기자로 시작했습니다. 취재하고, 같이 촬영하고, 카메라 앞에 서고, 방송 나가고. 어찌보면 단순하고 분명한 일상이었습니다. TV는 미디어의 중심이었고 저는 그 안에 있었습니다. 간간이 "TV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했지만 먼 미래의 일 같았습니다. 딱히 '미디어의 미래'같은 걸 생각할 이유도 없었고요.
그러다 데이터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약간의 좌절은 있었으나 데이터저널리즘팀으로 발령받게 됐습니다.
"데이터로 기사를 쓴다"는 게 처음엔 그냥 새로운 취재 기술 같았습니다. 그런데 해보니 달랐습니다. 기사의 질도 달랐지만 그보다도 '독자의 행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독자가 기사를 어떻게 읽는지, 어디서 이탈하는지, 어떤 형식이 더 잘 읽히는지... 좋은 기사를 잘 쓰는 것과 독자에게 잘 읽히는 것이 꽤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구독'이라는 낯선 말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미국 연수를 다녀와서 구독모델 TF에 합류했을 때는 좀 막막했습니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기 위해 회원 가입을 하고 로그인을 하게 만든다는 것, 그냥 독자를 '회원'으로 '전환'시킨다는 것. 그냥 기자 시절에 쓰던 언어는 아니었죠.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일의 핵심은 '독자와 직접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리자고 말로는 오래 전부터 해왔는데 정작 독자를 몰랐던 미디어가, 이제는 독자를 직접 설득해야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 저는 그 전환점 한가운데에 있었던 셈입니다.(성공했다는 말은 못 합니다.)
*'통합마케팅'이라는 또다른 낯선 말
통합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IMC팀을 맡게 됐을 때 '브랜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됐습니다. '브랜드'니 '캠페인'이니 또 다른 언어들이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자로 보내온 오랜 시간과 더불어, 구독모델 TF에서 좌충우돌했던 경험이 마케팅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서 제일 쓸모 있었습니다. 다른 것 같았던 일들이 사실 다 연결돼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 지식콘텐츠와 IP
지금 맡고 있는 일은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콘텐츠를 지식으로, 지식을 IP로, IP를 다시 콘텐츠로 연결하는 일. 올드미디어 방송사가 지식과 이야기를 유통하는 미디어 플랫폼이 될 수 있고 그렇게 가겠다는 믿음으로 하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돌아보면 커리어가 꽤 지저분합니다.(좋게 말하면 다양하고요.) 기자에서 데이터, 디지털, 구독, 마케팅, IP까지. 직선은 절대 아니고 여기 거쳤다 저기 거쳤다 돌고 돌아 흘러온 것 같습니다. 꾸역꾸역 오기는 했습니다.
이게 사실 미디어 산업이 지난 10여 년간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광고에서 구독으로, 송출에서 관계로, 콘텐츠 생산에서 IP 경영으로. 제가 거쳐온 부서들은 그 변화의 지층들이었고, 저는 그 위를 걸어다닌 셈입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는 그 지층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 합니다. 미디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어떤 판단이 필요한지. 현장에서 생각하고 겪은 것들을요.
*클로드로 만든 이미지.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보여줬으면 했는데 심란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