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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May 14. 2018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북적북적 137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듣기

 

***북적북적 인스타그램 계정 만들었습니다.  instagram.com/bookjeokbkjk




"싱싱한 콩나물에 좋은 양념들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먹을거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쳤다. 작은 그릇에 예쁘게 담고 깨소금을 좀 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들깻가루를 더 치거나 덜 치면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콩나물 무친 것을 덜어서 삶아낸 물에 다시 넣고 끓이면 콩나물국이 된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합니다. 매일매일, 3년 6개월 동안. 이날은 어떤 음식을 만들었는지 레시피를 적습니다. 요리책인 듯 아닌 듯, 레시피인 듯 아닌 듯한 책,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입니다. 맨 처음 읽은 대목은 '무치는 마음을 닮는 나물'... 콩나물과 시금치나물 무치고 콩나물국 끓인 내용이 담긴 글입니다.  

이 남편은 왜 요리를 하게 됐을까요. 그걸 맛있게 먹는 아내, 그저 남편 아내의 익숙하면서 낡은 역할이 바뀐 것뿐인 건 아니었습니다.


"화를 내면 음식도 화를 낸다. 짜증 난 상태에서 만든 음식은 짜다. 오늘 아침에 부엌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나 보다. 몰입해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물을 무쳤다."


"늘 고맙다. 때가 되면 꼭 선물을 마련해 보내온다. 잊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번 설에는 굴비였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굴비하라는 마음일까. '굴비'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응원해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아내는 대패삼겹살을 겨우 두 점 먹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저렇게 맛나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다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가슴이 저미게 아팠던 게 겨우 이 주쯤 전이다."


"평생 글을 써왔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이렇게 영원히 살려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내는 암 투병 중입니다. 남편은 곁에서 돌봅니다. 무어라도 더 몸에 좋고 건강에 좋은 걸 먹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떡라면 말고는 해본 게 없던 남편이 본격 요리에 나서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요리의 기쁨, 삶의 환희를 느끼고 이를 글로 적어두고 싶었다고 합니다.  


여백이 많은 책입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예상했던 그러나 아니었으면 하는 그 대목이 온전히 기록돼 있지는 않았습니다. 독자가 채워가면 됩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하루에 한두 편씩 천천히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이러라고 그런 거였어'라는 마지막 장 제목이 가슴에 특히 남습니다.


*출판사 루페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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