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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Jun 18. 2018

환상의 고기를 넘어...'고기로 태어나서'

북적북적 142 '고기로 태어나서' 듣기

   

"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 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르포입니다. 닭과 돼지와 개... 식용 동물을 키우는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담은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가 오늘의 책입니다.

    

처음에 읽은 건, 닭고기를 위한 닭, 육계 농장에서의 체험을 서술한 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닭을 키우는 농장인데 왜 닭을 죽이는 장면으로 끝냈냐면... 상품 기준에 못 미치는 닭은 계속 솎아내고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남은 닭들은 이른바 '도태', 혹은 '비활성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의 이면을 담은 책입니다. 다 알고 있는 얘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닭장이 있었고 닭이 있었고 똥이 있었고 알이 있었다. 하지만 축사 속에 내가 예상한 대로의 모습을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에서 제공하는 건 통계가 아니라 '클로즈업',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지독한 클로즈업입니다.


"걸러낸 병아리들은 이런저런 불합격자들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옮겨졌다.... 오래 놔두면 깔린 병아리들은 압착기로 모양을 낸 것처럼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졌다. 병아리들이 한 마리 한 마리의 경계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겨 붙어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눌렸던지 바구니의 촘촘한 격자무늬마저 살덩어리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병아리가 있어서 살덩어리 속 어딘가에서 약하게 삐약대는 소리가 울렸다."


"덕분에 나는 돼지를 사랑하는 일이 치즈버거나 탕수육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 종일 먹고 싸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어놨으니 돼지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고장 난 아이스크림 기계마냥 쉴 새 없이 똥을 싸 대는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특히나 날이 저물어갈 때는 울컥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개 농장에선 모든 개들에게 어미젖을 떼고 난 다음부터 짬밥만 먹인다.... 아침에 개밥을 주다 보면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짬밥을 놔두면 건더기는 가라앉고 주황색 액체는 굳기 시작하면서 회색으로 변한다. 그건 누구 말마따나 몸에 이로운 곰팡이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먹어보고 한 말은 아니니 알 수 없는 것이다.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 밥을 부어줬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도 새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둘의 차이는 그것을 그릇에다 부은 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뿐이었다."


"한 가지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출판사 시대의창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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