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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장구 Nov 24. 2024

이코노믹스프리즘 - 발제문

경제학의 눈으로 세상 보기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은 크게 "도덕규범"과 "경제논리"로 나눌 수가 있다. 전자는 "~해야한다."는 <당위의 명제>로, 후자는 "그래서 무슨 이득이 있을까?"라는 <이해득실의 추론>으로 인식된다. 전자는 "칸트"가  대변하고 후자는 "아담스미스"가 대변한다. 전자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암묵적 약속을 깔고 있으며, 후자는 절대적인 생존과 종족보존의 본능이 뒷받침다. 현대에 들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후자의 논리가 많이, 때로는 과도하게 표면으로 부상되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전자는 위험관리의 차원에서 항상 중요하고, 우선적인 고려사항이다.

사람들은 "도덕규범"과 "경제논리"를 항상 의식하며 자신의 행동원칙을 정하고 외부와 소통한다. 사람들은 외부적 소통을 위하여 "도덕규범"을 더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그것이 더 오래되었고, "~해야한다."는 말이 이해하기에 더 간단명료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후자-"경제논리"는 외부적인 "도덕규범"을 만들어낸 배경적 요구였고 각 개개인의 행동을 유발하는 숨은 동기였다. 사람들은 타인들에게 "도덕규범"을 들이대며 압박하고 자신이 "도덕규범"에 충실하다는 이미지를 어필하고자 노력하지만, 머릿속으로는 항상 "경제논리"에 따른 이해득실점검하는 동시에, 타인의 행동에 숨은 "경제논리"를 간파하려고 노력한다. 항상 "도덕규범"을 전제로 "경제논리"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고, 타인의 선택을 예측하고자 노력한다. "노벨경제학상"은 이러한 진술이 일반적으로 참으로 인정된다는 명확한 증거의 하나이다. 명확히 "거짓"이거나 명확하게 "악"인 행동이나 사고에 해마다 세계적인 상을 수여할리야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경제논리"보다는 "도덕규범"에 더 익숙한 것은 "경제논리"의 파악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경제논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숨어있기마련이며, 때로는 유리한 거래를 위하어 일부러 모호하게 파악을 방해하거나, 심지어는 거꾸로 드러내기도 한다. 게다가, 매번 검토할 상황에 따라 고려할 변수가 변하고 적용할 기본원리도 달라지기 때문에 어려움은 가중된다. 익숙한 상황을 다시 만나더라도, 그때 맞닥뜨리는 경제주체 - 사람, 법인, 사회단체, 국가 등 -도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며 변화한다. 관찰자가 관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양자역학적 환경이 경제학 분석에서는 일반적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경제교육을 전혀받지 않았지만 선천적으로 영리한 실전가의  현실응용력을 압도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경제적 동물"이면서 "경포자(경제학포기자)"로 살아간다.

경제학공부는 필요한가? 사람에 따라서는 경제학공부가 도움이 될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는 익숙한 표현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경제교육이 경제적 추론에 충분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교육이 경제추론을 위하여 필요한지 아닌지 조차 분명하지 않다. 반풍수 집안말아먹고,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어슬픈 경제교육은 안받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에 분야별로 주식전문가, 부동산전문가. 재테크전문가... 경제전문가들이 넘쳐너지만 누구에게 받아야 할지 정해둘 수도 없다. 상황에 닥치면 그때 최선을 다해 스스로 선구안을 키워서 도움을 구할 전문가를 물색할 수밖에 없다.

여기 "이코노믹스프리즘"은 일상의 여러 상황들에서 규범과 행동들에 숨어 있는 "경제논리"를 "경제학프리즘" 통하여 살펴보자는 취지이다.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빨주노초파남보"무지개 색을 드러내듯이, 일상의 규범과 행동들을 "이코노믹스프리즘"으로 비추어 그 속에 내포된 경제적 주체, 경제적 동기, 경제적 이해득실 등의 본색을 드러내 보이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결과 초래될 수 있는 문제점과 장기적인 균형도 내 능력 닿는한 살펴볼 것이다. 최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지만, 내가 전문적인 경제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기적인 개인의 경제적동기가 세상의 원만한 운영에 기여한다는 아담스미스와 국가경제의 원만한 운영을 위하여 단기적인 경제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현대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관점이 전반적으로 반영될 것이다. 현실문제에 대한 경제적 효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접근은 부적인 결론에서는 경제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보다는 불일치되는 부분이 더 많다. 당연히 나의 글도 적인 경졔적 분석도구와 주관적 해석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내가 (과거의 력으로)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어느정도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이 글이 독자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 알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글은 절대로 아닐 것이다. 간혹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 양을 따질 이유는 없다. 이 사이트가 유료도 아니고, 내 노력의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내 개인 문제에 불과하다. 나는 다만 여러 사람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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