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는 너를 마중하고 너는 가는 나를 배웅하라.
아이를 출산한 날.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소중한 내 새끼를 품에 안은 그 순간! 나는 벅찬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악몽은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내게서 삶이 축제였다면 이런 삶을 내 아들에게 선물해 준 것이 큰 기쁨이었겠지만
난 축제가 아닌 숙제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하기 싫은 숙제를 꾸역꾸역 해내듯.
이런 재미없는 곳에 소중한 내 아이를 초대하게 되어 깊은 죄책감이 들었다.
출산 후 2주 동안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그곳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루는 분유회사에서 강사님이 오셔서 '베이비 마시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셨다.
방구석에서 우울하게 울고만 있을 수 없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 강사님이 신생아 인형을 앞에 두고 베이비 마시지를 시연하시며 설명하신다.
집에 가서 신생아를 이렇게 살살 마사지 하라며 알려주신다.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님이 시연을 멈추고 듣고 있는 산모들을 향해 비장하게 말했다.
제 아들이 얼마 전 군대를 갔습니다.
제가 자식을 성인으로 키우고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정말 확실히 알겠습니다.
솔직히 베이비 마사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 마사지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무엇보다 언어 마사지에 더 집중해서 자녀를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한다. 넌 정말 소중한 사람이다. 실수해도 괜찮다.
넌 충분히 다시 잘 해낼 수 있다."
이런 언어 마사지를 통해 아이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건강하고 멋지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 일수도 있다.
그러나 멍해 있던 나는 그 강사님의 주옥같은 한마디 한마디가 뼈에 새겨졌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내 주변의 상황 때문이 아닌 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을 듣고 자랐다.
칭찬보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다.
그런 말들은 어느새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자아상이 되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이제는 그 누가 아닌 나 자신이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넌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아빠는 엄하셨다. 나는 그런 아빠가 무서웠고 아빠의 기분을 살폈고 신경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알았다.
내게 엄하고 무서운 존재는 이제 더 이상 아빠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나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했다.
다그치고 나무랐다.
스스로를 늘 평가하고 못난 부분을 혐오하고 부정했다.
나를 비난하고 무시하고 형편없다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주눅 들게 되었다.
실수할까 두려워 행동은 늘 소심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제일 힘들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바뀌지도 않고 읊어대는 레퍼토리.
나에 대한 비난. 비난. 비난.
그 끊임없는 괴담을 들으며 공포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축제가 아닌 숙제 같은 삶.
그 숙제는 이 지구 별이 내준 것이 아니다.
나는 행복해지면 안 된다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내게 평온함을 허락하지 않는 내가 내준 숙제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다름 아닌 누구보다 나를 가장 못마땅해하는 바로 나였다.
나는 정말로 진짜로 내 아들을 이곳에 오게 해 미안하고 안타깝고 죄스러운 마음뿐인 그 순간.
다짐했다.
그래. 언어 마사지!
내가 너에게 이 한 가지는 꼭 약속할게.
수백 번 수천 번 숨을 쉬듯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마.
내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무의식 깊숙이 새겨주리라.
네가 혹여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라도. 기억상실증이 걸려서라도. 자동적으로 강박적으로 떠오를 수 있게. 꿈속에서 잠꼬대로도 튀어나올 수 있게.
나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난 여전히 멋진 사람이라고.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처럼.
한마디 한마디로 너의 자존감을 내가 단단히 세워주겠노라고.
나는 당시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내 아들은 올 해로 16세.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나는 처음 다짐한 대로 아이를 잘 키우고 있을까?
물로 언어마사지는 필수로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 있다.
진심으로.
때론 의무적으로 영혼 없이.
그러나 나는
아주 가끔. 아니 요즘엔 꽤 자주....
아들에게 욕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완벽하지 못하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고 서투른 엄마다.
그러나 나 스스로도 완벽한 인간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난 나의 단점을 고쳐가며 완벽을 위해 달려가기보다 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조차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나는 내 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완벽한 부모로 보이기 위해 실수를 감추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싫다.
그럼 내 아들도 실수는 하면 안 되는 것.
실수는 변명하며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테니까.
나는 내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실수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인정하고 깊이 반성한다.
또 진심으로 사과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내 아들이 실수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기꺼이 잘못을 사과하는 용기 있고 정직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아들이 부족한 구석이 있어도.
가끔 어리석은 행동을 해도.
혹여 다른 사람에게 비난받을 일이 있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가 맘에 들었으면 좋겠다.
문제없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라지 않는다.
많은 문제 속에서도 그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주저하기보다 많이 넘어지고 많이 일어서서 넘어지는 게 별거 아닌 일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이 박사가 되면 좋겠다.
잘 넘어지는 박사님!
잘 일어서는 박사님!
그래서 넘어지는 옆사람도 잘 넘어지게 도와주고
못 일어서는 옆 사람도 잘 일으켜 세워주면 좋겠다.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다.
결국 실패의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그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비범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결국엔 포기하지 않고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
나의 삶은 내가 평생을 미워했던 나와 화해하고 나를 알아가고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한 여정이다.
내 아들의 삶도 그러하다면 그 여정이 숙제가 아닌 축제이길 바라본다.
아들아!
탯줄이 연결된 채 내 가슴에 안겨진 널 처음 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지구에서 첫 숨을 내 쉰 널.
내가 처음으로 품에 안고 맞이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고 아파하며 삶을 살아간다.
또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 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삶을 배운다.
엄마가 삶의 끝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날.
떠나는 나를 기쁘게 배웅해 주렴.
나는 처음 네가 오는 길을 마중 나오고
너는 내가 가는 길을 배웅해 주는
그렇게 우리는 삶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하는 귀한 인연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