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차디찬 겨울 바닷바람 속에서 회사의 합격 전화를 받았다.
요즘도 겨울이 되면 첫 출근했던 그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처음 사무실 문을 열던 그 순간,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평범한 의자도, 매일 만졌던 노트북마저도 낯설었다.
회사 이름이 들어간 메일 주소가 생겼고,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을 받았다. TV 화면 속에서만 보던 사원증을 목에 걸며, 비로소 직장인이 됐다고 느꼈다.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한 나는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그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들의 시선을 느낄 때 마다 사원증을 더 눈에 띄게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반복되는 회의와 보고,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숫자로 평가되는 하루 속에서 처음의 설렘은 무뎌졌다. 내가 회사를 다니는 건지 회사가 나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명함이 나를 증명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지워 버리기도 했다. 회사 이름이 없어지는 순간 나의 진짜 명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24년 동안 참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두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14년째 근속 중이지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회사 내 인간관계, 성과에 대한 압박, 평가와 피드백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과 멀어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남들의 칭찬에 목말라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인정을 받을 때는 경솔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했다. 조직을 위해, 팀을 위해라는 말은 익숙했지만 나를 위해라는 말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쓰다 보니 위축되고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갔다.
몇 일동안 야근을 하며 이뤄낸 프로젝트의 성과는 윗 상사에게 공이 돌아갔고, 회사의 매출은 올랐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했지만, 결국 남는 건 나의 이름이 아니라 회사의 로고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하는 것 보다, 나 답게 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언젠가는 떠나게 될 이 회사 안에서 나는 연습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를 잃지 않고 일하는 법을.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보다 나의 가치를 채우고,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나를 먼저 챙기는 법을.
이 글은 그 연습의 기록이자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를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기를.
회사와 인생 사이에서 흔들렸던 나의 24년을 담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이 말이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고 싶다.
이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 답게 일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