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나만의 정답을 내려놓고 세상을 껴안는 연습

by 쏘담쏘담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게 무언가 미시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예전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겠구나 느꼈던 순간.


그 순간은 그 친구가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순간이었다.


나와 친한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었다.

속세를 떠나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수행인가 싶다고.

진정한 수행은 속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고.

나는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만나는 인간관계 속에서, 사회생활 속에서 진정한 수행이 계속 이루어진다.

물론 삶 속에서 성찰과 자기반성이 없는 사람에게는 예외일 것이다.


어떤 친구가 말했다. 나이를 먹으니 이제 자기를 혼낼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내가 대답했다. 나는 나를 혼내는 사람이 어디에나 있는 걸. 너무나도 많은 걸!


어릴 때 혼났던 것처럼 물리적으로 혹은 나에게 소리를 질러서 혼나는 것만이 혼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혼나기도 하고 같은 동료 선생님, 지나가는 행인, 가족 모두에게 혼날 때가 있다.

내가 잘못했구나 반성하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아야지 하고 나를 다독인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동생에게 말했다.

나는 돈이 100억이 있고 200억이 있어도 내 일을 하고 싶어.

그 일이 지금과 같은 일을 아닐지언정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

왜냐하면 사회생활이라는 건 "내가 틀렸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배워가는 과정이거든."


사회생활에서 맞닿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나는

내가 옳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내가 틀린 순간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어떤 것을 강하게 주장하기 전에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야만 하는 것은 제 안에,
우리 안에 거의 본능처럼 깊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다행히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칠 권리가 있어요.
인간은 본래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 있어. 내가 다 알지는 못해'라는 생각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우리가 확실하게 행복해질 방법은 흔치 않습니다.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직감을 현실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다 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 지 나쁜지를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지요.
우리는 걸핏하면 삶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 대로,
우리가 계획한 방식대로 마땅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박미경 옮김.'


파이어족을 꿈꿨던 내 동생은 자기가 확신을 가졌던 주식에서 손실을 보면서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의사결정을 하면서

나 역시도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배운다.


고여있고

자신의 생각으로 둘러싸여 단단한 성을 만들 때

사람은 가장 위험해진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나의 경험으로 세상을 일반화할 때

누군가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때

귀를 닫고 자신이 생각했던 틀에 다른 사람들을 욱여넣을 때

사람은 폭력적이 된다.


최근 친구에게 고민을 말했을 때

친구가 내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고

본인의 경험이 비추어 '너도 그럴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조언을 쏟아냈다.

아니라는 나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나에게

수많은 조언과 관련된 영상을 보냈을 때

나는 비로소 친구에게 말했다.


" 친구야, 너는 내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고 있구나. 네가 생각한 틀에 나를 가두고 있구나. "


고민을 하고 보낸 메시지에 그 친구가 이틀간 답장하지 않았을 때

나는 어쩌면 친구를 잃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런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소통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고 친구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쏘담아 너의 메시지를 받고 꽤나 오랫동안 생각했던 거 같아. 이제야 답장해.

나는 근래에 너 말대로 내 생각이 맞다고 결론짓고 그 생각을 강요하고 있다는 반성을 했어.

그리고 그런 강요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어서 더 강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

너에게 일어난 일을 잘 들어주고 그 과정을 지나가는데 지지해 주고 응원해줘야 하는데... 미안해.

속상한 마음이 누그러졌길 바래.


이 답장을 받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정말 좋은 친구가 있구나.


내가 서운하고 속상한 면을 말했을 때 최근에 어떤 친구는

' 난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 싫어. 내가 말을 했을 때 기분 나빠하는 것이 예측이 안되서. '라고 했을 때

아, 더는 그 친구에게 내가 속상하거나 서운한 걸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속상한 면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친구는 더 이상 관계가 깊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누구나 예민한 면이 있다.

누구나 마음 안에 불구덩이가 있고 각자만의 역린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도 다 여러 개의 예민한 면을 가지고 있다.

친구라면 그 예민한 면을 수용하고 바라보고 좋은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아이돌 중에 오래도록 팀을 유지하는 아이돌들이 하는 말이 있다.

" 많이 싸워야 해요. "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관계라는 것은 누군가 참아주는 관계가 아니라 싸우면서 자신이 불편한 것을 표현하고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용기있는 고백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z74gyjz74gyjz74g.png


일요일 연재
이전 21화21. 멋있게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고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