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쉬르우아즈 그리고 갈래길

by 쏘다니기

오베르쉬르우아즈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고흐는 그의 편지에서 “여기 오베르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풍경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 나는 매일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

“건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이 나를 지탱하게 해 주고 있어.”라고 적고 있다.

고흐는 이곳으로 오기 전 생 마리에 있는 정신병원에 머물렀었다.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위해 도착한 곳이 여기 오베르였으니 당연히 기대하는 바도 있고 한적한 마을이 맘에 들었을 것이다. 오베르의 풍경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나 역시 한국에 작은 시골마을처럼 복잡하지 않고 평온해 보여서 좋았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시청 앞 광장도 있고 멀지 않은 곳에 밀밭의 탁 트인 시야가 마음 한 구석에 답답함을 달래주듯이 시원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IMG_1247.JPG 사진 / 오베르쉬르우아즈 시청사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고흐는 생 레미에 병원을 떠나면서 동생이 있는 파리에 머물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갓 태어난 아들과 새로운 가정을 꾸려야 하는 테오에게 고흐까지 곁에서 돌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테오는 화가들을 잘 이해하고 치료도 해 줄 수 있는 가셰박사가 있고 파리에서도 가깝기 때문에 고흐에게 오베르로 가기를 권했다. 고흐도 테오가 있는 파리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베르는 이제 고흐를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고흐의 마을이 되었다. 시청에서부터 마을 곳곳에서 고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마을에는 고흐의 그림과 안내판들이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다.


IMG_1254.JPG 사진 / 오베르의 시청 작품을 안내하는 표지판


마을 한가운데에는 시청사가 있다. 청사 옆 안내판에 있는 고흐의 작품을 보노라면 놀랍게도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때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흐가 묵었던 라부여관에서 동족으로 가면 작은 가톨릭 교회인 성당이 있다.


13세기 초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 앞에는 고흐가 그린 그림의 배경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실제 건물의 모습을 보고 바로 앞에서 고흐의 작품을 볼 수 있게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꿈틀 거리는 성당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고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고 적혀 있는데


IMG_1256.JPG 사진 / 오베르의 성당
IMG_1258.JPG 사진 / 작품 속에 오베르의 성당을 안내하는 표지판


‘위대한 예술가가 자신의 걸작에서 말하는 마지막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거기에는 신이 있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아마도 동생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 속에 글을 모티브로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봤다.

안내판에 새겨진 문구처럼 성당과 작품을 보면서 과연 신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실제 고흐의 편지 글 중에는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길 위에 있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붓이 존재한다.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글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이 성당 앞에 두 갈래 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갈래의 길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리고 어렵게 선택한 한 길로 걸어가지만 누군가는 가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남기도 하고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 때문에 후회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고 그래서 우리 인간의 존재는 완벽하지 않은 것 아닐까.


나 역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셀 수 없는 후회를 하며 살아왔다. 헤아릴 수 없는 그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결국은 후회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던가. 밤새워 고민했던 숱한 날들과 가슴 아픈 후회로 남은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래성처럼 덧없음을 발견하고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때로는 그때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후회하고 때로는 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었는지 후회한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무조건 고집스럽게 주장하면 설득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집부린 것에 후회하고 그 모습에 미련이 남고 그 미련이 쌓여 가슴에 멍으로 남은 것이 우리 모습인 것 같다.


작품 속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그 너머에 있는 교회는 꿈틀거리고 왜곡된 모습으로 불안하게 서 있다. 왠지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모습으로 불안하게 그려져 있다. 꾸물꾸물 꿈틀거리는 성당의 모습은 불안하고 복잡한 고흐의 마음처럼 보인다. 성당 앞에 길은 환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어둡게 묘사되어 있다. 성당 앞길은 고흐의 작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짧은 붓터치로 역동적이고 거칠다. 마치 조금 긴 점을 찍어 놓은 듯하다.

만약에 누군가가 교회 앞에 그 두 갈래 길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작품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고통과 불안, 우울, 미안함, 후회 등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감정들이 그곳에 있는 것 같다. 고흐는 그것들과 맞서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붙잡기도 하다가 권총에 이끌렸을지 모른다.


성당 옆에는 노란 물결이 한없이 펼쳐진 밀밭이 있었다. 고흐는 밝고 희망을 주는 듯한 그런 노랑을 좋아했다고 한다. 노랑은 꿈과 희망이 용솟음치는 듯한 강렬한 빛깔이다. 그런데 그 광활하게 펼쳐진 밀밭 너머에는 불안한 까마귀가 셀 수 없이 날고 있다. 하늘은 금방 폭우가 쏟아질 듯이 어둡고 무섭고 깜깜하다. 환하게 밝은 노란 물결을 놓치고 고개를 들면 어둡고 무섭고 불안한 하늘이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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