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은 아무래도 똑떨어져야 한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야심차게 준비한 다이어리에 그보다 더한 야심찬 계획을 잔뜩 채워넣고 '시작하자' 결심한다. 그러나 흐지부지되기 일쑤. 곧 '다시 시작하자', 시작일은? 다음 달 1일! 그러다, 5일... 10일... 15일... 하다못해 5의 배수라도 맞추어야 할 맛이 난다. (나만 그런 것인가? 아닐걸?) 이곳에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 2026년 1월 1일이 훨씬 어울리겠지. 고작 몇 시간만 더 기다리면 되는 걸.
하지만 2025년이 흔적없이 사라지게 둘 수 없었다. 마지막 날의 치맛자락이라도 끈덕지게 붙잡아야 했다. 그래서 시작이 아닌 작별이 어울리는 날짜, 12월 31일에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걷다보면 구상이 떠오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로 길을 나섰다. 어쨌든 프루스트식 작별을 예기하고 떠났던 건 아니란 얘기다.
정처없는 발걸음은 한기 속을 파고든 희미한 락스 냄새 앞에 자동적으로 멈춰졌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불러오는 환영처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국민학생(나의 시절엔 국민학교였으니)이 되어 주책없이 설레기 시작했다. 프루스트는 옳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주었으니.
나의 학교는 담장 안에 수영장씩이나 보유하고 있던 사립학교였기에 수영은 꽤 중요한 특별활동이었다. 게다가 선수반씩이나 되었던 나는, 방과 후엔 매일 수영훈련을 하는 특별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 덕분에 집에 돌아올 때면, 수영장 특유의 락스 냄새가 몸 전체에 맴돌았고, 수영이라는 행위 후 특유의 허기가 위장 전체에 휘몰아쳤다.
그런 나의 발걸음을 재촉하던 것은 버터향 가득한 빵굽는 냄새. 그 냄새 주변으로는 갓구워진 빵보다 더 따스한 엄마의 미소가 분명 거기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우리 엄마는 80년대 가정주부들의 로망이었던 제과점 사장님이셨다.
빵이 귀했던 당시 단 세개 뿐이었던 프랜차이즈형 제과점 브랜드, 신라명과, 고려당, 가나안제과, 그 중 한 브랜드의 지점을 운영하셨더랬다. 본사에 주문한 빵을 그저 진열하고 판매하면 될 것을, 굳이 지점장 회의에 참석해 즉석 페이스트리를 운영하자고 제안까지해서는, 전 지점에 빵 굽는 냄새를 풍기게 만든 주범이, 바로 우리 엄마였다.
그때부터 각인된 후각 마케팅의 여파는 지금까지 살아있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버터향이 풍겨왔다.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그곳을 향했다. 당연스레 빵집 문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물건들, 하지만 그곳엔 익숙한 그 미소는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엄마는, 올해 10월의 마지막 날, 하늘 나라로 떠나가신 걸.
아무래도 엄마가 없는 이 세계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동화같던 그때의 그 세계를 불러오고 싶었다. 버터향 가득한 크루아상을 동아줄처럼 힘껏 쥐었다. 빵 하나를 맨손으로 집어들고 온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고 무감각하게 계산에만 집중해 준 직원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 프로페셔널한 직원이 건네 준 봉투를 들고 문 앞에 서자, 자동문이 열리고 말았다. 차갑고 공허한 바람이 휙 몰아쳤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 번을 열리고 닫히고, 바람 앞에 무력해진 나를 손님 몇몇이 힐끗거렸다. 무력할 수는 있으나 염치 없을 수는 없었다. 엄마는 날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다.
결국 냉기 가득한 공간으로 휑뎅그레 밀려나게 되었다. 바람은 더 거세어져 크루아상의 온기도 냄새도 날려버릴 기세였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빵 냄새도, 완벽했던 그 세계도, 엄마의 마지막 미소가 존재했던 2025년도 이렇게 휘발되어서는 안되는 거였다. 어떻게든 형체로 남겨야만 했다. 기필코 그래야만 했다. 어떻게? 온갖 상념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문득, 엄마 냄새가 바람을 타고 다시 찾아왔다.
찌뿌러진 미간 사이를 비집고 버터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다. 베일듯 차가운 바람 속에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따뜻한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싶어진 순간, 베어 문 크루아상 위로 툭.툭. 눈물이 떨어졌다.
소금기가 더해지자 빵맛이 더 살아났다, 같은 비유나 과장은 않겠다. 눈물 몇 방울 정도로 크루아상은 소금빵이 되지 않는다. 외피는 여전히 바삭했고, 겹겹이 들어찬 버터는 풍부함을 잃지 않았다. 변하지 않고 그저 충실히 자신의 참맛을 드러낼 뿐이었다.
크루아상처럼 살고 싶어졌다.
모진 바람이 불어와도, 눈물이 적셔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이어 나아가야겠다, 결심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걸었다. 분명한 건, 잔뜩 움츠려서는 종종거리던 집을 나설 때의 발걸음과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몸속 어딘가에서 조금씩 뻗어 나오는 온기 때문인지, 다 먹어치워버린 빵이 남겨준 에너지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깨는 반듯하게 펴졌고,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다시 집을 향해 묵묵히 걷다보니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었으니, 이제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을 (빵 한 조각만큼) 얻게 되지 않았을까?
아빠는, 25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12편의 사모(思母) 시를 쓰셨더랬다.
난,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
작별이 어울리는, 25년 12월의 마지막날부터.
SSO.
- 수영장 냄새 @올림픽수영장
- 빵 냄새 & 크루아상 @파리크라상(올림픽공원점)
- 글자수 : 2505자
- 걸음수 : 7310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