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야기: 1. 길을 걷다 보면

뭘 몰랐던 10대, 열정 넘쳤던 20대, 빛나는 줄 몰랐던 30대

by 쏘이책장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어디로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끝까지 묵묵히 걷는 것이지요.


글을 쓰다 보면

머리도 마음도 정리되는 느낌을 받아요.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요.


돌고 돌아

긴 시간을 보낸 뒤에야

나에게 맞는 길을 찾은 것 같아요.

이제야.....





어린 시절, 나의 꿈

어린 시절, '꿈이 뭐야?'라고 물으면,

당연한 듯 '화가'라고 답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당시 부모님에게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었고 돈이 많은 드는 직업이었다.

둘째에다 딸인 나를 지원하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그림은 나의 취미

나름 조숙했던 나는

부모님에게 더는 조르지 않았다.

그림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남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아는 이들은

나를 그림 잘 그리던 아이로 기억을 해주었고,

때로는 내가 그림과 관련된 일을 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고등학교 방송부 활동

진로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던 고등학생 때

친구와 함께 교내 방송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글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방송부에서 내가 맡은 것은 음악 소개 멘트를 쓰는 것이었다.

당시 교내 방송부는 소수정예로

선배들의 시험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선배들의 규율이 엄격한 클럽이었다.


방송부를 나왔다

학업에만 집중하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눈을 피해

최대한 몰래 조심스럽게 활동을 했지만,

결국 부모님에게 들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반대에 결국 방송부에서 나오게 되었다.

몰래 활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학교까지 찾아오셔서

만류하신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방송부는 대학교에도 있다며

정하고 싶다면 대학에 가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방송학과가 아닌 경영학과로

전공을 선택해 대학에 지원하는 시기,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컸다.

그때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똑같이 방송일을 하더라도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고 가치가 있다는 말이었다.

결국 신문방송학과가 아닌 경영학과를 지원했다.

나는 내 자신을 경영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대학 밖에서 쌓는 경험

경영학과는 문안하기는 했지만

숫자가 난무하는 경영학과가

나에게 맞았을 리는 만무했다.

전공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대학 밖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에 도전을 하며

사회에서 쌓는 경험을 통해 얻는 것

훨씬 많고 유익하다 여기며 말이다.




첫 직업은 인터넷신문 문화부 기자

대학교 4학년 졸업도 전에 덜컥 취업을 해버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급하게 취업하기보다는

학점 관리나 자격증 준비를 더 해도 좋았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빨리 사회에 나가서 경험을 쌓고 싶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색다른 경험을 하는 문화부 기자 활동은 재미있었다.

글재주가 별로 없었던 내가 무슨 용기로 글을 썼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기가 찰 노릇이기는 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만남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한 뒤

글로 남기는 작업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혼도 많이 나고 부족함도 많이 느꼈지만,

일이 재미있어서 회사가 무너질 때까지 버텼다.

인터넷신문뿐 아니라 코스튬플레이 행사도 주관했던 회사였지만,

자금난으로 회사가 문을 닫고 말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희소했던 여자 이벤트 기획자

작은 회사의 장점은

기본 업무 외에 다른 업무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덕분에 기자 일을 하면서 행사 진행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행사 경험으로

이벤트 회사에 기획자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벤트 기획은 굉장히 포괄적인 일이었고,

다양한 영역에서의 역량이 필요했다.

기획, 발표, 영업, 섭외, 인력, 운영, 진행, 체력 등등...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한 기획 업무

기획자라는 하나의 직업을 통해

경험한 일들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하나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 연결시켜야 했고,

새로운 것을 꾸준히 찾아 기획해야만 했다.

좋았던 것은 기획서를 쓸 때

그림을 좋아하던 나의 감성이 녹아들어 가 돋보일 수 있었다는 것.


내향형이 외향형으로 살던 시절

단점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반대가 되는 일상이었다.

공휴일이나 주말이 더 바빴던 일상이었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부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향적인 성향이 강한 나로서는

이벤트 기획자는 정반대의 성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얻기보다는 소모하게 되었고

방전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일을 정리하고 난 뒤,

몇 날 며칠 밥만 먹고 침대와 혼연일채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꽤 긴 시간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체력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회사의 기획자로

이벤트 기획을 하면서 무수히 많이 썼던 기획서 덕분에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회사에 문안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이라는 분야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어린 시절 못다 이룬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회사에서 기술서 집필

기획부서에서 교육부서로 이동을 하고 난 뒤,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에 관한 기본 교육을 강의하게 되었다.

기업체나 단체, 대학으로 출강을 다니게 되었고,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에 관한 기술서를 집필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할 때

주로 하는 실수를 짚어주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단순한 기술서였지만 설명하는 글이 필요한 책이었다.




방송국의 새로운 채널에서 작가로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대학교 동아리 선배의 추천으로

방송국에서 새로운 채널을 개국하는데

필요한 작가 면접에 응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방송국 아카데미를 이수한 것도 아니었으며,

특출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난 뒤 했던 기자, 기획자, 강사, 집필 등

다양한 경험을 높이 사주셨고,

방송국 작가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작가라는 이름이 낯설었다

방송국에 들어가니 다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작가들은 글 쓰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방송국의 작가가 되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도전을 거쳐 방송국에 자리 잡은 이들이었다.

나에게 불쑥 찾아온 꿈같은 기회가

오히려 나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기존 작가들과는 조금 달랐고

그렇기에 참고할만한 작가 그룹이 없었다.

새로운 채널을 위한 새로운 스타일의 작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마지막 직업이 된 작가

방송국에서 작가로 있는 동안 내내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만 같았고,

내 능력에 비해 너무 큰 일을 맡고 있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나에게 계속 일을 주셨고 맡기셨다.

나는 내 자신을 의심하고 불신하고 질책했지만,

남들은 내 일을 신기해하고 궁금해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내 자신을 좀 더 믿고 응원해 줄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혼 상대와의 만남

일하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던 그때,

담당 PD님의 소개로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둘이 어학연수를 떠난다는 명목하에

결혼하기 몇 달 전, 일을 정리하게 되었다.


사회인의 마무리

그렇게 떠난 일터에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은 알았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가질 터,

아이를 키우면서 작가 생활을 해낼 자신은 없었으니까.

결혼을 결심했을 때 나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가정에 충실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