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질이 없다는 건, 다른 문이 열린다는 뜻

재능의 벽 앞에서, 문장으로 길을 내는 법

by 쏘야 SSOJA

드럼 레슨을 마치고 선생님이 툭 던진 말이 집에 오는 길 내내 맴돌았다.

“저는 음악적 소질이 없었어요. 그래서… 편법을 많이 만들었죠.”

그리고 한 문장이 더 붙었다.

“근데 가르칠 땐 그게 다 도움이 돼요. 같은 벽에서 막히는 사람에게는, 제가 만든 우회로가 정확히 맞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소질 없음’이 곧 한계라는 생각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보게 됐다. 못해서 더 오래 걸린 사람, 그래서 어디서 힘이 빠지고 어디서 손목이 굳는지 몸으로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가진 건 ‘타고난 감각’ 대신 ‘설명 가능한 언어’다. 공감의 기억, 단계의 순서, 실패의 디테일. 누군가를 끌어올릴 때 필요한 건, 의외로 그런 것들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느 한 방면에 뾰족한 사람은 아니다. 한 꼭짓점만 솟은 스파이크형이 아니라, 여기저기 두루두루 튀어나온 육각형에 가깝다. 그게 무엇이든 다 잘한다는 강점으로 포장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 어디를 가도 늘 ‘재능의 벽’에 먼저 부딪힌다는 뜻이기도 했다. 노래방에서는 음역대의 벽, 운동에서는 유연성의 벽, 드럼에서는 속도의 벽. 예전엔 그걸 자격 미달의 증거처럼 여겼다. 그런데 아마 그 벽들이 있어서 내가 자주 방향을 틀었고, 다른 길을 발굴했고, 시행착오를 꾸준히 샀던 건지도 모른다. 자주 헤맨 덕분에 나만의 지도는 천천히 넓어졌다.


선생님 말씀대로 소질이 없으면 ‘잘하려는 편법’이 늘어난다. 힘을 덜 쓰는 법을 찾고, 자세를 미세하게 바꾸고, 박자를 쪼개고 다시 붙이고, 내 몸에 맞는 길을 하나씩 만든다. 타고난 사람에겐 직감이지만, 내겐 문장이다. 그래서 배울 때도, 가르칠 때도 말이 생긴다. “여기서 손가락을 조금 더 열어줘요.” “지금은 힘을 주지 말고 가볍게 치기만 해요.” “이 구간은 못하는 게 아니라, 과하게 잘하려다 보니 지치는 거예요.” 공감은 이렇게 벽에 써진 문장처럼 온다. 그도 나처럼 그 벽 앞에 오래 서 있었던 사람이라.


이건 음악만의 얘기는 아닐 거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공부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다. 잘하는 사람은 멋지다. 그런데 늘 잘하는 사람 옆에서 배우는 일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왜’가 빠진 “그냥 이렇게”가 쌓이면, 따라 해도 체화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못 해본 사람이 알려주는 요령은 뼈에 박힌다. 못했을 때의 감각을 아직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분리해서 듣는다. 영감은 천재에게서, 기술은 생존자에게서. 둘 다 필요하다.


소질이 없음은 핑계가 아니다. 다만 다른 방식의 성장 계획표에 가깝다. 더 느리고, 더 많이 실패하지만, 대신 더 많이 기록하고 더 많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못하던 동작’‘내가 설명해줄 수 있는 동작’으로 바뀐다. 그때 비로소 공감은 근거를 얻고, 가르침은 힘을 가진다.


내 얘기로 돌아오자면, 나는 아마 앞으로도 육각형으로 남을 것이다. 한쪽만 날카롭게 뻗기보다는, 여러 면을 조금씩 키우는 쪽. 예전엔 그게 약점처럼 보였는데, 요즘은 장점이 될 수 있겠다고 믿어본다. 길을 많이 헤맸으니, 안내할 말이 많을 테다. 재능의 벽 앞에서 멈추지 않는 법, 딱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는 법, 우회로로 가도 결국 도착하는 법. 이건 타고나는 대신, 시간을 건너 배울 수 있는 기술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소질이 없어도 괜찮아.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방식이 있어.”


마지막으로, 오늘 내게 남긴 체크리스트 하나. 다음 번에도 벽을 만난다면 포기부터 고민하지 말 것. 먼저 우회로를 그려볼 것. 막막함을 문장으로 바꿔볼 것. 그 문장이 쌓이면, 언젠가 누군가의 길잡이가 된다. 소질의 빈칸은 결핍이 아니라 여백이다. 여백이 넓을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적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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