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흔들리고, 원가는 남는다

원가경쟁력, 전략구매에서 시작하라

by 조병묵

차별화는 왜 믿을 수 없는가


기업이 시장에서 이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차별화하거나, 더 싸게 만들거나. 전략론에서도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이 두 가지를 꼽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둘의 지속성이 다르다. 차별화는 흔들린다. 혁신이라는 멀고 모호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소비자 기호는 빠르게 변하며, 모방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한때 시장을 흔들었던 제품이 몇 달 만에 유사 제품에 밀리는 사례는 흔하다. 한 중소 브랜드가 차별화된 기능으로 히트상품을 만들었지만, 3개월 뒤 유사 제품이 절반 가격으로 출시되며 매출이 급감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차별화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반면 원가는 다르다. 같은 가격에 팔더라도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기업은 항상 이익을 남긴다. 특정 공정에서 불필요한 작업을 줄이고 자재 손실을 낮춘 기업은, 동일한 제품을 10% 이상 낮은 원가로 생산하며 수년간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한다. 그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진다.


차별화는 결과를 만든다. 원가는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구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원가경쟁력은 운영 탁월성에서 나온다. 생산, 구매, 품질, 물류, 판매 등 모든 과정에서의 작은 개선이 반복되며 조직의 체질로 굳어진다. 예컨대, 생산라인에서 작업 동선을 5초 줄이는 개선이 하루 수천 번 반복되면, 그 차이는 결국 경쟁사와의 구조적 원가 격차로 이어진다.


원가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결국 세 가지 방향으로 귀결된다. 원부자재를 조달하는 단가를 낮추거나, 생산성과 품질이라는 두 바퀴를 통해 제품 단위당 가공비를 낮추거나, 판매관리비 등 간접비를 절감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조금씩 효율화되기 시작하면, 작은 개선이 쌓여 조직의 문화가 되고, 원가경쟁력의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 원가경쟁력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생산혁신, 자동화, 비용절감, 조직문화… 모두 중요하지만 시간이 걸린다. 원가를 낮추는 가장 빠른 시작점은 전략구매다. 같은 제품을 더 싸게 만드는 첫 번째 레버는 공장이 아니라, 구매 테이블 위에 있다.


원가가 곧 승부처다


대량거래가 이루어지는 B2B·B2G 시장을 보면 구매의 중요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거래 과정도 자격심사(PQ, Pre-Qualification), 기술평가(TBE, Technical Bid Evaluation), 경제성 평가(CBE, Commercial Bid Evaluation)의 세 단계로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구매자는 자격심사 단계에서 판매자의 실행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실적이나 인증, 기업 신용도 등의 자료를 요청한다. 일반적으로 실적이 가장 높은 허들이지만, 이 관문을 통과해야 본 경기 입장권을 얻을 수 있다. 다음은 기술평가다. 과한 사양은 제외하고 부족한 사양은 채워, 모든 입찰자가 동일 조건에서 가격을 제출하도록 하는 균등화(Equalization) 과정이다.


기술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는 순간, 수백 페이지의 제안서는 단 한 줄의 숫자로 수렴된다. 자격심사가 입장권이고, 기술평가가 예선전이라면, 결승전은 가격입찰이다. 이제 승부는 오직 가격과 원가에서 결정된다.


전략구매의 네 가지 기술


원가를 낮추기 위한 구매 협상의 기술은 건설·플랜트 업종에서 가장 발달해 있다. EPC(설계/조달/시공, Engineering/Procurement/Construction) 기업이라 불리는 건설업에서 1군 기업의 구매팀에는 수백 명의 구성원들이 입찰과 협상을 반복하며 원가를 낮추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이 구사하는 구매의 기술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후보업체를 끊임없이 발굴한다. 경쟁자가 둘일 때보다 셋, 넷일 때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가격은 내려간다. 국내 한 대형 식품기업의 구매팀은 포장재 단가를 낮추기 위해 베트남 신규 공급사를 직접 발굴하여 기존 양사에서 3사 경쟁 체제로 늘렸다. 결과는 8% 단가 인하였다. 경쟁자 수가 곧 협상력이다.


둘째, 구매 품목의 번들링(Bundling)과 언번들링(Unbundling)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묶어서 사면 볼륨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고, 분리해서 사면 품목별 전문업체를 통해 더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흩어져 있는 품목을 묶어 턴키로 납품할 수 있는 업체를 발굴하면 단가를 낮추는 동시에 납품관리 효율도 높일 수 있다. 어느 방향이 실질적으로 더 이득인지는 반드시 계산해보아야 한다.


셋째, 공정하고 비밀이 보장되는 입찰 과정을 설계한다. 입찰자들이 경쟁사의 가격정보를 모르는 깜깜이 상태에서 투찰해야 진정한 최종가격이 나온다. 비밀이 보장되는 시스템이 미비하면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고, 협상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최근 전자입찰제도가 널리 쓰이는 이유다.


넷째, 구매 목표가를 설정하고 사다리 네고를 활용한다. 최저가 입찰자가 목표로 하는 구매가격에 도달하지 못하면, 2위 입찰자에게 동일한 목표가를 제시하며 입찰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이 반복되는 것을 흔히 사다리 네고라고 부른다. 절차상 불공정한 측면이 있지만 구매 현장에서는 빈번하게 활용된다. 입찰에 참여하는 판매자라면, 투찰 전부터 자신의 마지노선을 내부에서 명확히 설정해 두어야 이 덫을 피할 수 있다.


협상의 세 가지 무기


가격 협상은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모두에게 답답하고 지루한 과정이다. 구매자는 판매자의 원가정보나 해당 프로젝트 수주의 중요성을 알기 어렵고, 판매자는 경쟁사 가격과 구매자의 목표가격을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협상은 서로 패를 숨기고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는 과정이 되기 일쑤다. 그렇다면 고수는 어떻게 이 안개를 뚫는가?


첫 번째 무기는 이성과 감정의 탄력적 활용이다. 필자가 B2B 입찰 과정에서 구매팀, 경쟁업체와 3자 협상을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경쟁사 임원의 노트에는 단 한 줄이 크게 적혀 있었다. 흥분하면 진다. 그 임원은 어떤 이슈에도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했다. 필자는 이를 역으로 활용했다. 감정의 단계를 차분히 높여가며 우리의 정당성과 경쟁사의 불공정한 입찰 과정을 설명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최악의 경우 법적 조치도 있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구매팀은 위기감을 느꼈고, 별도 자리를 통해 우리의 해결 방안을 청취한 끝에 핵심기자재를 고가에 납품하는 중재안을 제안해 왔다. 상대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것이 가장 고단수의 협상 기술이다.


두 번째 무기는 나와 상대방의 BATNA(Best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즉 협상 결렬 시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파악하는 것이다. 구매자에게 우리 말고 대안이 없다면 가격을 내리기보다 버티면 된다. 시간은 우리 편이 되고, 시간이 경과할수록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다. 협상에 임하는 사람은 강한 BATNA를 가질수록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사는 사람이라면 부를 수 있는 다른 후보자가 있어야 하고, 파는 사람이라면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다른 거래처나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이 거래가 깨지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갈 곳이 있는 사람이 강하다.


세 번째 무기는 창의적인 옵션의 개발이다. 가격에만 집중하면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 되어 교착상태에 빠지기 쉽다. 대금 결제 조건, 납기, 운송료, 현장 설치비 등 입찰가격 외의 다른 거래 조건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중에서 상대방에게는 덜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것을 찾아 교환하면, 모두가 이기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가격을 일부 인하하는 대신 대금 결제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이는 방식처럼, 변수를 늘리면 협상의 공간이 넓어진다. 구매팀에게는 가격을 깎았다는 명분이 필요하고, 입찰자는 다른 부대조건을 통해 실리를 극대화할 수 있다. 명분과 실리의 교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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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는 경영자의 전략이다


전략구매는 경영자의 의사결정이 가장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다. 구매는 실무자의 협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 현장에서는 실무자 간 1차 네고 이후, 팀장, 임원, 그리고 필요시 경영자 간 협상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협상 구조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구매자는 가격을 낮추려 하고, 판매자는 납기, 결제 조건, 기술지원 등 부대조건을 조정하며 실리를 확보한다. 협상은 단일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거래 조건의 교환을 설계하는 전략적 게임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경영자가 개입하느냐다. 목표 구매가격은 실무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설정해야 하며, 그 목표는 회사의 원가 구조와 이익 전략을 반영한 숫자여야 한다. 기술과 생산을 직접 챙기는 경영자는 많지만, 구매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경영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원가의 상당 부분이 외부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매는 가장 강력한 경영 레버 중 하나다. 구매는 단순한 입찰 과정이 아니라, 경영자의 신념이 반영된 전략적 협상이다.


원가경쟁력은 전략이 아니라 문화다


원가경쟁력, 즉 싸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운영 탁월성을 통해 조직 내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으로 체화된다. 혁신을 통한 차별화보다 상대적으로 조직에 정착시키기가 쉽고, 한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필자가 9980 강소기업들에게 좋은 제품 개발에 매달리기보다 빨리 시장에 제품을 내고 원가경쟁력 강화를 통해 조직의 운영 탁월성을 높여가기를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이 들어와도, 또는 핵심 멤버가 나가도 원가경쟁력을 창출하는 운영 탁월성이라는 조직문화 속에 자연스럽고 빠르게 흡수되는 것, 그것이 강소기업의 진짜 무기다.


원가경쟁력은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엑셀 시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매팀의 협상 테이블에서, 생산라인의 작은 개선에서, 그리고 조금 더 싸게 만들 수 없을까를 매일 묻는 조직문화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이 과정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한번 조직에 뿌리를 내리면 어떤 경쟁자도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해자(垓字)가 된다. 운영 탁월성은 내부인조차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자 관점의 질문 “이 기업은 원가 구조로 이익을 만들 수 있는가?”


이 기업의 이익은 차별화에서 나오고 있는가, 아니면 원가 구조에서 나오고 있는가? 이 기업의 경쟁우위는 모방 가능한가, 아니면 구조적으로 유지되는가? 매출이 아니라 원가율(매출원가율, 판관비율)은 최근 3년간 어떻게 변해왔는가? 동일 제품 기준으로 경쟁사 대비 원가 경쟁력이 있는가?

원가 절감이 일회성인가, 반복 가능한 구조인가? 생산성 개선과 구매 단가 절감 중 어떤 축이 더 강한가? 원가 개선이 특정 인물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시스템화되어 있는가?

공급업체 구조는 경쟁 상태인가, 아니면 종속 상태인가? 전략구매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순 발주/조달인가? 주요 원재료/부품의 협상력은 회사가 갖고 있는가, 공급자가 갖고 있는가?

이 기업은 입찰 시장에서 “가격으로 이길 수 있는 구조”인가? 기술력은 차별화 요소인가, 아니면 입장권 수준인가?

경영자가 구매에 개입하는가, 아니면 위임하는가? 목표 원가 / 목표 구매가격이 설정되어 있는가?


경영자 관점의 질문 “나는 원가를 통제하고 있는가, 아니면 결과를 보고 있는가?”


우리 회사의 이익은 전략의 결과인가, 아니면 원가 통제의 결과인가? 나는 우리 제품의 단위당 원가 구조를 정확히 알고 있는가? 원가의 70~80%를 차지하는 핵심 항목은 무엇인가?

목표 구매가격을 내가 직접 설정하고 있는가? 주요 공급업체와의 협상에 내가 개입하고 있는가? 공급업체는 경쟁 상태인가, 아니면 독점 상태인가? 특정 공급업체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원가 상승 시 가격 전가가 가능한 구조인가?

구매는 “지원 기능”인가, “전략 기능”인가? 구매팀의 KPI는 단순 납기/발주인가, 아니면 원가 절감인가? 우리 조직은 매일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가? 개선이 반복되고 있는가, 아니면 프로젝트로 끝나는가?


팀장 관점의 질문 “나는 원가를 낮추는 사람인가, 단순히 실행하는 사람인가?”


나는 회사의 원가를 실제로 낮추고 있는가? 현재 공급업체 수는 충분한가, 아니면 제한적인가? 최근 6개월 내 신규 공급업체를 발굴한 적이 있는가? 경쟁구도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있는가?

협상 시 가격 외 조건(납기, 결제, 물류 등)을 활용하고 있는가? 상대방의 BATNA를 파악하고 있는가? 우리 팀의 협상 마지노선은 명확한가?

품목별 단가 변화 추이를 관리하고 있는가? 원가 절감 성과를 수치로 설명할 수 있는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낭비를 줄이고 있는가? 현장에서 발견된 개선 아이디어가 실제 반영되고 있는가?

구매/생산/영업 간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가? 가격 인하와 조건 개선 사이의 균형을 이해하고 있는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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