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80점 받는 시대, 90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AI가 평균을 끌어올린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앞서갈 것인가

by 조병묵

최근 필자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사업 심의위원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60여 개 기업이 발표를 통해 왜 자신들에게 이 지원사업이 필요한지를 설득했다.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중소기업가들의 끈기와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고, 청년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는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흥미로웠던 것이 하나 있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발표자료를 AI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는 점이다.


자료들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논리는 정리되어 있었고, 문장은 짧고 간결했으며, 디자인도 깔끔했다. 예전 같으면 "발표자료가 참 잘 정리됐다"라고 평가받았을 수준의 결과물이 더 이상 드물지 않았다. AI가 보고서와 발표자료의 평균 점수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었다. 대부분이 80점 이상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90점을 만드는가.

예전에는 문서의 형식이 경쟁력이었다. 목차를 잘 짜고, 도표를 보기 좋게 만들고, 문장을 반듯하게 정리하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AI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해 준다. 형식, 요약, 구조, 디자인의 기본기는 이제 누구나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말하자면 평균의 상향 평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형식이 아니라 콘텐츠의 질, 더 정확히는 AI와 대화하는 사람의 맥락과 질문의 질이다. AI는 사람 대신 생각해 주는 도구라기보다, 사람이 생각한 것을 더 빠르고 그럴듯하게 정리해 주는 도구에 가깝다. 그러니 AI를 어떻게 다루느냐보다, 그 앞에 앉은 사람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묻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같은 AI를 써도 어떤 사람의 보고서는 밋밋하고, 어떤 사람의 보고서는 바로 의사결정에 쓸 수 있다. 차이는 결국 질문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다. AI가 평균을 끌어올린 시대일수록, 인간의 경쟁력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AI를 보다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AI에게 먼저 나를 소개하라


AI와 좋은 결과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나를 설명해야 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독자를 상대로 기획서를 쓰는지, 어떤 대화 톤을 선호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AI도 내 맥락을 이해한 상태에서 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고서 써줘"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중소기업 지원사업 심의위원을 대상으로 사업계획을 발표해야 하는 회사의 마케팅 담당 임원이다. 문장은 짧고 명확하게, 사례 중심으로 써 달라"라고 말하는 것은 결과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넓은 운동장 한가운데 공 하나 던져 놓고 알아서 골을 넣으라는 말과 비슷하다. 반면 후자는 경기장, 규칙, 상대 팀, 승부의 기준까지 알려준 셈이다.


쉽게 말해, AI에게 일을 시키기 전에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야 한다. 처음 만난 신입사원에게 회사 설명도 없이 "알아서 잘해봐"라고 말하면 대개 일은 어긋나기 쉽다.


이를 위해서는 생성형 AI의 '개인 맞춤 설정' 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대화의 톤과 형식, 답변에서 중시할 기준, 피해야 할 표현을 미리 알려두면 AI가 내 맥락을 더 잘 이해한다. 여기에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AI를 주로 어디에 활용하는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푸는지까지 더해 두면 결과물의 방향이 훨씬 또렷해진다.


둘째, 자주 하는 일은 전용 AI 파트너를 만들어라


사람마다 AI를 반복적으로 쓰는 영역이 있다. 누군가는 회의록 정리에, 누군가는 사업계획서 작성에, 누군가는 마케팅 문구 개발에 자주 쓴다. 그렇다면 매번 처음부터 설명하지 말고, 아예 특정 역할에 맞는 전용 AI 파트너를 만들어 두는 것이 효율적이다.


ChatGPT에서는 맞춤형 GPT를, 제미나이에서는 Zems를, 다른 생성형 AI 서비스에서도 유사한 방식의 전용 챗봇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다. 자주 반복하는 일을 중심으로 AI 파트너를 미리 설계해 두면 대화의 품질도 높아지고 시간도 크게 줄어든다.


필자의 경우 주니어 컨설턴트 역할을 하는 '어쏘', 회의록 작성을 도와주는 '서기', 사진 촬영 취미를 돕는 '에픽' 등 몇 개의 맞춤형 AI를 활용하고 있다. 각각의 AI에게는 역할과 존재 이유, 대화 시 고려해야 할 기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원칙을 지침으로 주고, 참고할 자료와 파일도 미리 업로드해 둔다. 그러면 매번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회의록용 AI는 "핵심 결정 사항, 미결 과제, 담당자, 일정" 중심으로 정리하게 만들 수 있다. 보고서 작성용 AI는 "문장은 짧게, 비유는 쉽게, 결론은 분명하게"라는 기준을 학습시킬 수 있다. 사진 취미를 돕는 AI라면 장비 비교, 촬영 팁, 후보정 조언에 특화시킬 수도 있다.


자주 보는 거래처 담당자에게 굳이 매번 명함을 다시 건네지 않듯, AI도 자주 같이 일할수록 관계를 설계해 두는 편이 낫다. 처음에는 번거로워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누적 효과가 커지고 관계도 깊어진다.


셋째, 정답을 한 번에 요구하지 말고, 맥락과 기준부터 줘라


AI와 일할 때 가장 흔한 실수는 최종본을 한 번에 요구하는 것이다. "성장전략을 써줘", "좋은 제안서를 만들어줘", "깔끔한 발표자료를 만들어줘"라고 말하면 AI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준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대체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잘 정리된 80점짜리 평균 답안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좋은 결과는 대부분 초안에서 시작된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누구를 위한 결과물인지, 어떤 형식과 수준을 기대하는지 먼저 설명하고 초안을 받은 뒤 함께 다듬어 가는 편이 훨씬 낫다. 사람 간 비즈니스 대화에서도 먼저 주제와 형식, 순서를 맞추듯, AI와 일할 때도 원하는 결과물의 예시와 맥락 자료를 함께 줘야 한다.


"우리 회사 성장전략을 써줘"라고 던지면 흔한 내용이 나온다. 반면 "2026년 하반기 성장전략 초안을 써 달라. 우리는 생활용품 기업이고, 쿠팡 매출 비중이 높으며, 신제품 출시와 채널 다변화가 핵심 과제다. CEO 보고용 2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해 달라"라고 말하고 상반기 매출 실적 자료까지 업로드하면 훨씬 쓸모 있는 초안이 나온다. 여기에 "지금 전략의 가장 약한 부분도 같이 지적해 달라"라고 덧붙이면 수준은 한 단계 더 올라간다.


학생에게 "시험 잘 봐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출제 범위와 채점 기준, 지난해 기출문제를 알려주는 편이 훨씬 낫다. AI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명령보다 구체적인 맥락과 기준 앞에서 훨씬 유능해진다.


넷째, AI가 질문하게 만들어라


많은 사람은 AI를 검색창처럼 쓴다. 내가 묻고, AI가 답하면 끝이다. 하지만 AI를 더 잘 쓰는 사람은 대화를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필자는 종종 이런 문장을 넣어 둔다. "답변 마지막에, 내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질문 2~3개를 제시해 달라."

이 한 줄이 대화를 바꾼다. 처음에는 내가 묻고 AI가 답하지만, 그다음부터는 AI가 묻고 내가 답하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AI가 던지는 질문은 종종 내가 놓친 맹점을 드러낸다. 그것이야말로 AI를 단순한 답변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거울로 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업계획서를 쓰다가 AI가 "이 전략이 실패할 경우의 대비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고객이 정말 이 가치를 원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쟁사가 같은 전략을 더 빨리 실행하면 무엇으로 차별화할 것인가?"라고 묻는 순간, 문서의 수준은 달라진다. 문장이 세련되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좋은 상사는 답을 많이 주는 사람이라기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다섯째, 큰일일수록 쪼개서 단계별로 대화하라


AI는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특히 복잡한 문제를 한 번에 던지면 답도 뭉뚱그려지기 쉽다. 큰일일수록 단계를 나누는 편이 좋다.


예를 들어 "내년 성장전략을 짜 달라"라고 통째로 묻기보다, 먼저 제품별 매출 데이터를 정리하고, 다음에는 경쟁사 동향을 점검하고, 그다음에는 고객 변화와 시장 환경을 검토하게 하는 식이다. 이후 핵심 과제를 도출하고, 우선순위를 나누고, 실행 로드맵을 붙이며 대화를 이어가면 된다. 이렇게 일을 쪼개면 AI도 더 정확해지고, 사람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집을 지을 때도 벽돌부터 쌓지 않는다. 설계도를 보고, 자재를 고르고, 순서를 정한다. AI와의 대화도 공정처럼 나눌수록 결과가 좋아진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크게 한 번에"가 아니라 "작게 순서대로"가 정답에 가깝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용 여부'가 아니라 '사용 수준'이다


AI는 지금 개인의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며칠 걸릴 초안 작업을 몇 시간 안에 끝내게 해 주고, 막막했던 문서 작업의 첫 단추도 훨씬 쉽게 끼우게 해 준다. 앞으로는 에이전트형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한 피지컬 AI가 조직의 생산성까지 바꿔 놓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가 널리 보급될수록, 오히려 사람의 생각하는 힘은 더 중요해진다.


이 변화는 대기업보다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더 크게 체감될 수 있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고,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아야 하며, 채용과 육성이 늘 숙제인 조직일수록 AI를 잘 쓰는 인재의 생산성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같은 인건비를 지급하더라도 누구는 AI를 검색창처럼 쓰고, 누구는 사고 파트너처럼 쓴다.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성과의 차이로 누적된다.


많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가장 큰 고민도 결국 판로 확장과 더불어 인재 육성이다. 사람을 모셔 오기는 어렵고, 어렵게 키운 인재는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경영자의 책상 한편에는 늘 이력서가 쌓여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경력과 자격증만 볼 일이 아니다. 이제는 면접에서도 AI 활용 능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도구를 다룰 줄 아는지를 넘어서, AI와 대화하며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시장조사 업무를 맡겨도 어떤 사람은 자료 몇 개를 복사해 와서 붙여 넣는 데 그치고, 어떤 사람은 AI에게 경쟁사 비교 틀을 짜게 하고, 추가 질문을 받으며, 핵심 시사점을 정리해 의사결정 포인트까지 끌어낸다. 두 사람은 같은 도구를 썼지만 사실 전혀 다른 수준으로 일한 것이다. 그런 사람의 생산성은 특히 시스템이 덜 정교한 중소기업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잘 쓰느냐, 더 나아가 얼마나 주체적으로 대화하느냐다. AI가 묻고 내가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정리되어 있을 때, 비로소 AI는 생산성 도구를 넘어 사고의 파트너가 된다. 모두가 80점을 받는 시대일수록, 90점은 결국 더 깊이 묻고 더 정확히 판단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앞으로 기업은 그런 사람을 뽑아야 하고, 기존 구성원도 그런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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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관점의 질문


이 회사는 AI를 단순한 문서 작성 도구로 쓰고 있는가, 아니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쓰고 있는가? 경영진은 AI를 활용해 시장, 고객, 경쟁 정보를 더 빠르게 해석하고 있는가? AI 활용이 실제로 영업, 마케팅, 운영, 재무 등 핵심 프로세스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이 회사의 경쟁력은 '도구 도입'에 있는가, 아니면 '질문하고 판단하는 조직 역량'에 있는가? AI 활용 능력이 특정 개인에게만 집중돼 있는가, 아니면 조직의 학습 체계로 확산되고 있는가? 이 회사는 AI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채용하고 육성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경영자 관점의 질문


우리 조직은 AI를 쓰고 있는가, 아니면 몇몇 직원만 시험적으로 써 보고 있는가? 우리 회사의 어떤 업무가 AI와 가장 잘 결합될 수 있는가? 직원들은 AI에게 막연히 지시하는가, 아니면 맥락과 기준을 주고 대화하고 있는가? 반복 업무를 줄여 줄 전용 AI 파트너를 직무별로 설계할 수 있는가? 우리 회사의 보고서, 회의, 전략 수립 방식은 AI를 활용해 더 짧고 선명하게 바뀔 수 있는가? 채용과 평가에서 AI 활용 능력, 질문하는 능력, 사고를 확장하는 능력을 보고 있는가? 기존 구성원을 'AI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함께 생각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가?


팀장 관점의 질문


내 팀은 AI를 검색창처럼 쓰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일하는 파트너처럼 쓰고 있는가? 팀원들은 결과물만 요구하는가, 아니면 초안을 만들고 함께 수정하는 방식으로 일하는가? 회의록, 보고서, 시장조사, 제안서 같은 반복 업무를 AI로 표준화할 수 있는가? 우리 팀은 AI가 다시 질문하게 만들어 사고를 넓히고 있는가? 복잡한 과제를 단계별로 나누어 AI와 함께 검토하는 습관이 있는가? 팀원마다 AI 활용 수준의 차이가 크다면,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학습 방식이 있는가? 나는 팀원들에게 답만 주고 있는가, 아니면 AI와 함께 더 좋은 질문을 던지도록 이끌고 있는가?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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