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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Apr 30. 2024

오뉴월 서리

2024년 4월 30일

엊그제 밭이랑에 비닐을 씌우고 어제는 모종을 심었다.  도시 농부의 시간 개념으로는 언제 거름을 주고, 언제 모종을 심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저 산과 들을 오가다 거름냄새가 나면, 밭이랑에 모종이 심어져 있으면 때를 안다.  수주일 전에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이랑을 만들었는데......  모종을 심기까지 기다림의 시간이 안달이 좀 났다.  친구 농부에게 묻는다!  "명철아, 언제 모종 심어야 돼."  친구 농부가 답한다.  "기다려 봐!"  그러기를 3주가 흐른 것 같다.  겨우내 휑하던 밭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았는데, 마냥 기다리려니 왠지 아깝다!   무엇을 어디에 심을까?  작년에 고추가 잘 되었는데......  검은 비닐로 씌워진 밭이랑을 보며 마음은 벌써 채소며 과일을 수확하고 있다.  드디어 농부 친구가 허가를 내린다.  "이제 심어봐!  힘드니까 흐린 날 심고, 다음날 비 오면 딱이야!"  모종을 사러 시내로 차를 몬다.  부푼 꿈에 이것저것 열심히 모종을 고른다.


친구 농부는 무엇을 기준으로 모종을 심으라고 했을까?  "혹시 서리라도 내리면 냉해를 입게 되니까 밤 기온을 잘 보고 있어야 해."  친구 농부가 말한다.  "오뉴월이 다 되었는데 무슨 서리가......"  아, 맞다!  내가 잊고 있었다.  강원도 산중에는 아직도 새벽이면 서늘하다.  농작물 잎이 늦은 밤 몰아쉬는 가쁜 숨은 쉽게 서리로 변한다.  도시에서 맞는 이른 봄 서리는 꽃무늬를 그리며 아름답지만 산골에서 만나는 서리는 자연을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조차도 신비로운 광경이지만 맨 몸으로 이겨내야 하는 식물들에게는 커다란 고통일 것이다.  하물며 보살핌 속에서 한때 고이 피고 지는 농작물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  모종을 심고 나니 와이프가 쑥을 뜯어 버무리를 했다.  작년에 수확한 옥수수를 볶아 만든 시원한 옥수수 물과 함께 하니 넉넉하다.  특별한 양념이나 레시피 없이 만들어 밋밋하지만 신선하다.


'오뉴월 개팔자'라는 말처럼 오뉴월은 게으름피기 좋은 계절이다.  날씨는 따뜻하고 산과 들은 꽃이 지천이다.  학창 시절 오뉴월이 되면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게으름 피울 수 없는 환경이 원망스러웠다.  찬란한 햇살이 비추는데 어두컴컴한 도서실에 있으려니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끼니를 채우러 도서실 밖으로 나올 때면 다 지나가 버린 그 아름다운 봄날 하루가 아쉬웠다.  대학생이 되고는 잔디밭에서 막걸리를 마시거나 책을 읽다 잠이 드는 오뉴월이 너무 좋았다.  오뉴월에는 소위 데모도 많았다.  날아드는 체류가스는 그야말로 오뉴월 서릿발 같았다.  그 좋은 봄날도 엄혹한 현실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오뉴월은 경조사도 많고 가족행사도 많은 생산성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주말이면 남들처럼 가족들과 야외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나만의 여유로운 봄날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운칠기삼의 인생에서 때가 올 것을 알아차리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흔히 전략이나 운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때를 알아맞히고 때를 잘 탄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 안 하고 때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당연히 평상시 기초 체력을 기르고 노젓기 연습을 한 사람이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오뉴월에 내리는 서리도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 두 사람이 아닌 세 사람이 한마음으로 노를 저으면 이겨낼 수 있다.   이 산중에서는 4월 말, 5월 초 전후해서 모종을 심어야 오뉴월이 지나면 수확을 시작한다.   심을 때를 알아야 하고, 수확할 때를 알아야 한다.  울타리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에 호박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린다.  게으름 피기 좋은 오뉴월에 때를 알고 분주히 뛰어다니는 호박벌의 '윙윙' 발자국 소리가 애처롭다.  오뉴월 서리는 없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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