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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Jul 31. 2022

엄마란 무엇일까

10개월이 되자 아기가 잠을 안 자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놀다가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하고 나를 찾으며 안아달라고 징징대서 졸린가 보다 하고 침대로 데리고  같이 누우면. 갑자기 좀비처럼 살아나서 뒤집고 되짚고. 범퍼를 잡고 서겠다고 아우성. 발차기는 기본이고 내가 자는 척을 하면  얼굴을  보다가 머리카락이고 얼굴이고 잡아 뜯어서 일어나게 만든다.


누가 애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그게 신기해서 잠을 더 안 잔다고 하던데. 생각해보니 우리 아기가 요즘 막 기어 다니기를 시작하긴 했다. 뒤집기, 배밀이 다 너무 늦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도 요즘엔 꼬물꼬물 배를 밀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자기한테는 너무 큰 능력이라 그런 건지 기분이 너무 좋나 보다. 계속 누워만 있다가 이제 홱 돌아서 기어 다니다 자기 손으로 여러 가지를 만질 수 있으니 너무 신나겠지. 잠을 잊을 정도로!! ㅠㅠ


하지만 엄마인 나는 너무 괴롭다. 밥도 쫓아다니며 먹여야 하고, 하도 손으로 만져대고 꺼내는 통에 집안은 난장판이다. 역시 육아는 점점 더 산이다. 이게 해결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오는 무한 굴레.


오후에는 큰 마음을 먹고 촉감놀이를 준비했다. 촉감놀이라 봤자 별 건 없고 점심 간식을 자기 주도식으로 주는 건데. 마침 달고 맛있는 파인애플을 사서 먹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두 세입 먹더니 돌연 눈을 비비고(으악 제발 비비지 마!) 하품을 쩍 하더니 끈적한 손을 뻗어서 안아달라 성화였다.


아니 잠깐만 손 닦아야지! 


아기는 내가 그러든 말든 손을 자꾸 뻗어댄다. 끈적한 과일 물이 온 머리카락과 티에 묻는다.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얼굴과 팔과 다리에 묻은 과일 물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쪽쪽이를 물리고 눕히는 찰나. 홱. 다시 좀비처럼 살아났다. 오 마이 갓.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혼자 이리저리 뒤집고, 범퍼를 긁고, 깔아놓은 요를 헤집는다. 빨리 재우고 머리 좀 닦고 티도 좀 갈아입고 싶은데. 매트에 흘린 끈적한 파인애플 물도 좀 닦고 장난감 사이사이 낀 과일 조각도 씻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진다. 아오 성질나.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스트레스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갑자기 굴러다니던 아기가 자는 척하는 내 눈을 찔렀다. 아아악! 너무 아팠다.


엄마 아프다니까!!


서럽고 아프다. 자꾸 엄마 얼굴 할퀴지 마!! 그러다 이내 아기 앞에서 엉엉 소리를 내고 울고 말았다. 그런데 이노무 자식. 그런 나를 보고 깔깔 웃는다. 하.... 됐다 됐어. 허탈해져서 눈물이 쏙 들어간다. 그래 너가 즐거웠다면 됐다 됐어.


육퇴를 하고 고단한 하루의 끝을 예능과 맥주로 마무리하던 때. 갑자기 에에엥 아기가 서럽게 운다. 들어가 보니 오줌이 샜다. 하도 움직여대서 기저귀를 제대로 못 채웠나 보다. 아기를 남편한테 맡기고 젖은 이불을 급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아기가 자질 못하고 자지러지게 울기만 한다.


이리 줘봐. 


내가 안으니 이내 곧 잠잠해진다.


못살아 정말.


잠자는 아기의 모습이 평화롭다. 눕혀놓으니 또 엄마가 갈까 봐 눈을 감고 작은 손으로 더듬더듬 나를 찾는다. 너 보기 싫다고 성질이나 내는 엄마가 뭐가 좋다고. 엄마 없으면 잠도 못 자. 마음이 스르르 풀어진다. 더듬거리는 작은 손을 꼭꼭 만져주고 예쁜 얼굴도 살살 쓰다듬어 준다.


생각해보니 나도 밤에 자다가 엄마가 없으면 엄마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면 엄마가 달려와서 이리저리 나를 만져주다 갔다. 난 그 손길이 정말 좋았다. 포근한 엄마 냄새, 부드러운 손길과 목소리. 우리 엄마는 낮엔 바빠서 볼 수 없었지만, 밤에는 늘 자는 나한테 와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손이랑 발도 만져주고 하셨다. 엄마의 사랑이 전해졌던 걸까.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아서, 사실은 안 자는데 눈을 감고 있던 적도 있고. 엄마가 나가지 못하게 손을 꼭 쥘 때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5살 때까지 포도를 잘 못 먹었다. 삼키다 걸린 적이 있어서 먹고는 싶은데 무서워서 먹지를 못했다. 그러면 엄마가 포도알을 다 빼고 포도껍질에 있는 즙을 막 모아서 주곤 했다. 양이 꽤 적었는데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포도만 보면 엄마 빼줘! 하기도 하고. 지나고 보니 엄마가 나를 위해서 해줬던 하나하나가 나의 뇌리에 박혀서 그걸 떠올리면 즐겁고 행복하다. 그런데 엄마에게도 그게 행복한 기억일까.


어느 날 아기랑 씨름하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가 왔다. 대부분의 대화는 나에 대한 우려와 잔소리였는데 안 그래도 피곤한데 엄마의 그 소리가 너무 듣기가 싫었다.


엄마. 나 애 보는 것도 힘든데 이런 소리 꼭 들어야 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잔소리 좀 그만해. 


엄마는 이내 풀 죽은 목소리로, 아니 나는 그냥 그게 너한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랬지. 오늘 힘들구나. 엄마가 괜히 전화했다. 알겠어. 하고 끊는다.


이노무 기집애 진짜.


남들한텐 안 그러면서 엄마한텐 잘도 뾰족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냥 좋게 좋게 이야기하면 될걸. 예전엔 내가 짜증을 내도 하나도 꿈쩍 안 하던 엄마가 요즘엔 내 눈치를 보고 위축되는 걸 보면 속상하면서, 대체 왜 이러냐 내자신.


엄마가 되니 엄마의 마음을 알아서 엄마를 보면 고맙고 애틋한데, 힘들면 그건 그거고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짜증을 낸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엄마도 아직 자식 키우는 게 어렵다 할까.


엄마란 무엇일까.


옛날이었으면 피곤하고 힘들면 얼른 도망가버릴 생각만 했던 내가, 지독하게 나만 알았던 내가,

아기가 나를 필요로 하면 짜증 나고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아기부터 챙기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도 매번 신경질과 짜증을 달고 사는 이 못난 딸이 미우면서도 엄마~내가 미안해~하면 너 미워!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받아주는 것일까.


이렇게 엄마가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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