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니가 안녕하기를. 손흥민이 안녕하기를.
책임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책임감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
며칠 전 너와 카페에서 나누던 이야기들이 아직 내 머리 한편을 차지하고 있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었지.
친구의 블로그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샤이니를 보기 위해 일본까지 다녀온 친구의 열정에 무척 놀랐다고 말이야.
콘서트는 한 번이 다인 줄 알았던 나에게 친구의 모습은 신세계였지.
티켓을 얻기 위해 대기하고 실패하고 어디선가 언제인가 나타날지 모를 취소 표를 확인하다 마침내 성공하고.
얼마간 진행되는 콘서트에 몇 회를 다녀오고.
한 멤버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걱정하고 그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친구의 애정과 열정을 보면서 사실은 나도 기도하게 되었어.
샤이니의 안녕을 위하여,
샤이니가 부디 건강하게 살아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왜냐고?
친구의 시간과 노력, 이 뜨겁고 따뜻한 마음들이 부서지지 않기를 바라니까.
너에게 자세하게 말하지는 못하였는데
요즘 나의 너튜브는 온통 축구 영상으로 가득해.
나는 축알못인데...
축구 지식은 정말 전무하거든.
그런데 추천 영상의 대다수가 축구인 이유는 오로지
손흥민 때문이야.
언제가 처음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연히 손흥민의 경기를 보았던 것 같고 그때부터 손흥민을 종종 검색하곤 했어.
그러다가 그의 경기 영상, 그의 인터뷰를 접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손흥민을 좋아하게 되었지.
물론 나는 친구의 열정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팬클럽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밤을 새워가면서 그의 경기를 보는 것도 아니니까.
경기가 치러진 다음 날 그의 영상을 찾아보며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살펴보는 정도야.
이런 정도의 노력과 애정을 팬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손흥민을 응원하게 되었어.
손흥민을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야.
손흥민과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데도 말이야.
나는 그를 알지만 그는 나를 모르는데 말이지.
사실 내가 그를 안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너무 쉬운 말일지도 몰라.
내가 그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따져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어.
나는 그의 업적 정도를 아는 것이지.
위인전에 등장하는 우리의 위인들처럼 말이야.
(위인? 위인을 떠올리니 그분들이 떠올라...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신 분들이야. 여전히 그렇고...)
결론을 내리면 나는 손흥민의 업적을 알 뿐이지만
어찌하든 그는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어.
정도의 차이는 매우 매우 크지만
이것은 아마 친구가 샤이니를 좋아하는 마음과 같은 결이 아닐까, 생각해.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를 지지하고 누군가의 안녕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그런데 이런 마음이 가끔은 움츠러들 때가 있어.
우리의 대화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 말이야.
표절 문제, 마약 문제, 편법과 불법의 문제,
그리고 때로는 진실이 무엇인가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이야기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무척 좋아하던 작가가 있었어.
그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들, 문체, 다루는 내용까지 정말 너무 좋아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인가... 표절 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주인공이 되었어.
다른 작가의 꽤 많은 문장 그대로를 가져다가 자신의 작품에 넣었더라.
맙소사였어.
충분히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무엇이 부족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까,
아름답고 예쁜 말들을 이미 가진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그런 나쁜 선택을 하였을까,
꽤 오래 슬펐어.
일 년 정도 되었나?
음악계의 표절 문제도 한참 시끄러웠지.
학창 시절을, 빛나는 소녀의 날들을 온전히 그의 음악으로 보낸
오랜 팬이었다는 한 사람이 그에게 남긴 글이 기억난다.
정확한 단어와 문장은 아니겠지만 해석은 비슷한 분위기일 거야.
당신으로 인하여 자신의 빛나던 추억들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나도 같이 끄덕였어.
그리고는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
이 상처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조금 전까지는 나에게 살아있는 위인이었던 이 사람이
갑자기 믿음의 반역자가 되어
나에게 쉽게 회복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는데
이것의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말이야.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지지하는 이유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위한 이유로 시작되지는 않아.
나를 위해서 시작된다는 것은 분명해.
그를 보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거든.
그를 보면서 꿈을 꾸고 때로는 위로를 받고 힘을 얻지.
시작이 확실히 그렇긴 해.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달라고 지지해 달라고 따라다니면서 부탁한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하여도 말이야.
그 누군가는 그대들의 열정과 애정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내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나의 책임이 아니라고,
온전히 말할 수 있을까?
얼굴도, 이름도 정확하게 다 알지 못하는 많은 이들로부터 받은 응원들이
그를 존재하게 하였고
그에게 길을 열어 주었고
그에게 힘이 되었을 테니까.
애정을 받고 보내고
고마워하고 위로를 받은 시간들이
분명히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을 테니까.
얼마 전에 손흥민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팬분들께 큰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 말.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어.
지금도 반짝이며 빛나고 있는 나의 위인들,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되었어.
조금만...
조금만 더 책임감을 가져 달라고.
우리가 응원한 날들이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도록.
우리의 지지와 애정이 반짝이는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이렇게까지 진행된 나의 진지한 고민에
분명히 너는 웃고 있겠지?
짧은 시간이지만
오늘도 샤이니의 안녕을,
손흥민의 안녕을 기도해.
누군가를 응원하고 있는 너와 나도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