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여행

오마니

by 가제트


임플란트 여행!

정의: 연식이 오래되고 구실도 못 하고 모양도 형편없는 치아를 빼고 본인의 구강 구조에 맞춰 치아 비스므리 한 걸로 갈아엎어버리는 일을 위해 모국 땅을 밟는 것. (출처: 가제트 사전)


이민 올 때만 해도 멀쩡했던 치아는 갈수록 흉측하게 변했다. 이유는 이것저것 댈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바로 그거라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어서 편리하게 대충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임플란트 수술을 받은 캘거리 동지들은 빨리 갈아야 한다고 하면서 한국이 싸고 잘한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치아 동서를 만들려는 유혹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버금가는 전투 무용담이었으며, 또 나의 여행에 대한 예언이었다.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으니 성취된 예언에 대해 예비 치아동서들은 축배를 들며 위로했다. 뽑기 전에 맘껏 먹고 마셔!


이민 오기 전 기억나는 한국의 겨울은 무채색 부류였다. 눈도 그렇거니와 사람들 얼굴엔 색깔이 없었다. 겨울의 햇살은 추위에 질린 창백한 회색이었고 추위를 이기려 들어붓는 소주도 당연히 무채색이었다.


임플란트의 색깔은 치아의 색이다. 원래는 흰색인데 옆 치아에 맞춰 누렇게 칠한 색. 그래서일까 이번 임플란트 여행은 누런색이었다. 다행히(?) 중국에서 재빨리 건너온 미세 먼지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황금이 되다가 만 누런색은 딱한 색이었고 치아를 뽑힌 나도 딱한 놈이었다.


딱한 놈들의 속성은 서로를 모른 체하거나 배척하는 것인데 내 잇몸으로 들어온 진한 회색의 나사는 나를 배척하지도, 아는 체하지도 않았다. 비싼 것들의 몸가짐이요 싸가지없는 것들의 행태이며 아직 영혼도 없었다. 생명이 없는 것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는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다.


경건한 칫솔질로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예배를 드렸다. 내 것을 내주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뼈를 깎는 금주도 필요했다. 그렇게 지극 정성을 들인 끝에 친위 쿠데타는 유혈사태 없이 마무리되었다.


뽑힌 치아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의사들이 연구 대상으로 해부했다느니, 요즘처럼 상아가 귀한 시절, 그 대용품으로 공장에 갔다느니 하는 낭설들이 유포되곤 했다. 하지만 그런 거짓 뉴스는 오랜 기간 동고동락한 나의 노병(老兵)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다. 국립묘지에 안장을 못 해줄 망정 그런 말들을 듣고 가만히 있는 것은 나의 삶과 어긋나는 짓이었다. 치아들을 가지런히 하고 묵념을 올렸다. 누런 것들의 엄숙한 이별 행진이 병원을 잔잔하게 물들어 갔다.


금주법도 풀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먹을 일은 아니었다. 아직 서먹서먹한 이빨과 임플란트를 친하게 하기 위해서 금주법을 풀긴 했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갑갑한 입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나 다시 캘거리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한국 치아 동서들을 만날 수 밖에 없었다. 동서들이 모인 술자리는 다시 또 무용담들을 불러 모셔왔고 왕년의 전투를 새삼 보고하는 자리가 되었다. 누런 이빨들이 여기저기 지루하게 빛났다. 이번 여행이 끝까지 누런색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였다.


대리석과 철근으로 높게 지어진 인천 공항의 속성은 차가움이다. 그 속에서 인간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만남과 헤어짐은 엄청난 열기를 사방으로 풀어 헤치고 있었다. 더불어 가방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으로 인해 그 차가움은 기가 죽어서 터미널에 대기 중인 비행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오마니(이북 출신이라 가끔 이렇게 부른다)와 나는 그 왁자지껄과 열기들 속에서 헤어짐을 연기하고 있었다. 어색했다. 언제나 그놈의 어색한 연기 때문에 주연이 되지 못하고 늘 조연으로 살아왔던가? 감독이 다그친다. 좀 더 잘해 보라고. 스태프들도 응원한다. 화이팅!


잘하고 싶다. 정말 잘해 드리고 싶었다. 떠나고 도착하는 것을 연기하는 무수한 엑스트라들 속에서 조명들이 집중한다. 나의 대사는 ‘사랑해’ 였던가 아니면 ‘다시 돌아올게요’ 였던가. 또 잊었다. 애드리브를 하고 말았다.


“엄마, 이빨 이뻐?”. 육십이 여섯 살이 되어 버렸다.

젖니가 빠진 자리에 새로 난 영구치를 보이며 아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 “엄마, 이빨 이뻐?”


여섯 살이건 육십 살이건 오마니는 엄마다.

“어, 이뻐. 우리 아들 수고했다.” 또 오라고 말하고 싶으시겠지만 차마 그 말은 못 하셨으리라.

내가 다시 애드리브를 쳤다. 감독 눈치 안 보고……

“엄마, 또 올게”. 누런색이 황금색이 되는 순간이다.

어중간한 온도의 공항이 굉음을 내며 온도가 올라가는 순간이며 모자가 다시 헤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임플란트 여행은 이빨과 임플란트가 교체되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모자의 이별 여행이기도 하다.

비행기 안에서 본 태양은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img.jpg Pixabay로부터 입수된 thatbaldguy님의 이미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야행성은 지금도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