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에서 살아남기
캘거리에 살 때 교민 신문에 기고한 글인데 요새 땅과 집 값이 들썩거려 조금 수정하고 보강해서 올립니다.
#1
먼저 자신의 손을 컴퍼스처럼 이용하여 땅바닥에 원을 그린 후, 원 안에서 작은 돌을 손으로 쳐서 원 밖으로 내 보낸 후 3번 안에 다시 원 안으로 돌아오면 그 세 번동 안 그은 선이 합쳐진 면적이 내 땅이 된다.
뭔 말이여?
지금 50~60대 중년들이 별로 가지고 놀게 없는 어린 시절에 돌멩이 하나 가지고 몇 시간을 놀 수 있었던 ‘땅따먹기’ 놀이에 대한 구질구질한 설명이다.
그렇게 해서 늘려나간 땅의 크기가 남보다 크면 내가 이긴 것이다.
어둑어둑해서 더 이상 선을 볼 수 없을 때까지 땅을 늘려나가는 놀이를 했다.
물론, 그다음 날 내가 얻은 땅은 다시 그 누구의 땅도 아닌 원래 주인인 지구에게로 돌아갔지만 아무 원망도 없었고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어린아이에게 땅은 놀이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같이 놀 수 있는 친구였다.
땅 위에 손을 대고 연신 돌멩이를 튕기는 그 모습을 이제 다시 상상해 보시라.
따뜻한 어머니의 대지 위에서 노는 아이 모습 그 자체가 아닌가?
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어린 시절에 몸소 배운 것이다.
#2
“구르는 천둥(더글라스 보이드 著, 류시화 譯)”에서 ‘구르는 천둥’(체로키 인디언 영적 지도자)은 이렇게 말한다
“지구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지구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진,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체이며, 따라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 상처를 가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문명인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해란 책이나 선생이 가르치는 어떤 사실을 아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해는 사랑과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 위에서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땅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멋지게 내린걸 아직까지 보질 못했다.
#3
얼마 전에 샌드위치 가게에서 백인 50대 남자와 동양인 식당 주인 간의 다툼을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점심시간이라 손님 몇 명은 그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말다툼도 사실 별 것은 아니었다.
백인 남자가 주문한 것과 주인이 내 온 것에 차이가 있었는데 백인은 막무가내로 주인이 틀렸다고 하고 주인은 가격차이와 영수증을 보여주며 공손히 대꾸하고 있었다.
그러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백인은 영어를 들먹이며 갑자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더욱 화를 내는 것이었고, 기가 막힌 주인은 자기가 실수했다고 하면서 돈은 돌려줄 테니 가시라고 한다.
그냥 말다툼할 때는 옆에서 잠자코 서 있던 인도계 여성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자 끼어들었는데,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그 여자마저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되는 험악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난처해진 건 식당 주인이었고 인도계 여성은 이제 자기의 싸움이 된 듯이 막 대들었으며(영어가 되니까) 난 속만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싸울만한 영어는 안되거든) 끼어들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말싸움에서 버벅대면 그건 이미 게임 끝이라는 걸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온갖 나만의 논리와 과격한 언어와 가르치는 은사(?)가 서로 절충하며 부딪치며 튀어나오려 안간 힘들을 쓰고 있었으나 입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백인 남자는 “F” word를 신나게 날리며 나갔고 오히려 줄 서 있던 백인 여자가 주인에게 "sorry"를 연발하며 대신 사죄하고 있는 것이다.
점심 시간대의 해프닝으로 끝내기엔 기분이 영 안 좋았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여기는 우리(백인) 땅이라고?”
“북 아메리카는 백인이 인디언을 정복하고 얻은 땅이라고?”
#4
캘거리는 백인들의 땅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 더 이상 원주민들의 땅도 아니다.
어머니 지구로 부터 잠시 빌려서 각 인종들이 모여 사는 땅이다.
어른들이 목숨 걸고 하는 땅따먹기가 아니라 우리 어린 시절에 했던 그 ‘땅따먹기’ 놀이처럼 잠시 놀다가 다시 되돌려 주는 그런 놀이를 하는 땅이 되었으면 한다.
부드러운 어머니의 대지 위에서 다시 놀 수 있는.....
요즘 밴쿠버의 땅과 집 값이 다시 오르려고 하고 있고 들리는 소문에 캘거리의 집과 땅 값 또한 들썩거리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어린 시절에 즐겁게 놀았던 "땅따먹기" 놀이를 생각하며 땅바닥에 손을 가지고 원을 한 바퀴 그려 본다.
“땅따먹기 할 사람 여기 붙어라!”
<커버 이미지는 한겨례 웹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