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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옹 생각

나도 나를 모르는데

INFP, INTP, INFJ...?

by 송애옹

몇 년 전부터 MBTI로 사람을 그룹핑하여 구분 짓고 특성에 대해 논의하는 문화가 유행이다. 물론 훨씬 전부터 있었던 검사지만 'I형 인간, E들만 모여있을 때 I특, S형 인간과 N형 인간 구분 법, J들의 여행계획, P들만 모이면 일어나는 일'과 같은 MBTI로 사람을 규정짓는 콘텐츠들의 등장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MBTI의 존재를 알게 된 후 검사를 하면 늘 INFP가 나왔었다. INFP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하면 눈물 많고, 생각 많고, 마음 여리고, 공감을 잘하고, 현실 감각이 부족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뭐 이런 이야기들이 많다. 몇 년 전만 해도 검사 결과와 내가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매번 검사만 하면 INFP가 나왔었으니까. 'INFP 유형의 특징'이 줄줄이 적혀있는 그 페이지 안에서 나는 이런 사람인 걸까 하고 나라는 존재의 근거를 찾았다. 일부 맞지 않은 부분이라도 적혀있으면 '이건 나와 맞지 않네'가 아니라 '내가 몰랐던 이런 점도 나에게 사실은 존재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방법으로라도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검사를 했는데 또 INFP가 나왔다. 검사 결과에 적혀있는 INFP의 특성을 다시 보는데 아무리 봐도 나와 다른 거다. 타인에게 상처를 잘 받긴 하지만 할 말을 못 하고 사는 성격은 아니며 징징거리기보다는 화를 내는 편이고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처음으로 이 검사 결과는 틀리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과 동일한 검사 결과인데 안 맞는 부분에 대해 '나에게 내가 모르는 이런 면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지 않고 '뭐야 이 검사 안 맞네'라고 생각하게 바뀌었달까.


여기서 또 의문이 든다. 내가 직접 한 검사이며 일치하는 항목을 선택했으니 그에 맞는 결과가 나온 것일 텐데 결과가 나와 맞지 않다면 사실은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동안 스스로 굉장히 즉흥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상황에 닥쳤을 때 의사결정이 대체로 빠른 편이다. 무언가를 사야겠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큰 결정을 내릴 때도 직감으로 이것이 맞다고 생각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면때문에 스스로 대문자 P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요즘 들어 사실 나는 지극히 계획적인 인간이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대체로 일정을 미리 계획하는 것을 선호하고 갑자기 생기는 약속이나 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한 주, 한 달의 일정이 미리 계획되어 있고 일정이 변동되면 캘린더에 바로 반영하는 생활. 하물며 다이어트를 할 때도 하루치, 일주일치의 식단을 미리 계획해 두고 그대로 실천해야 마음이 편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그럴 때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보면 역시 나는 계획형 인간이었나 싶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건지 뭔지.


MBTI 검사 결과에서 나를 P로 인식한 이유가 주변 정리 관련된 문항도 일부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 물론 주변 정리는 잘 안 되는 편이지만 각 물건들에 나름대로의 규칙은 있다. 겉보기엔 난장판인 것처럼 보여도 각자 '내가 생각하는 그 위치'에 있다는 뜻이다. (남들 눈에는 그냥 어지럽혀져 있는 것이겠지만요...?)


F냐 T냐 하는 것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동안 꽤나 감성이 풍부하며 감정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H는 그런 나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자기는 T인 것 같아. T가 아니라면 선택적 F일 거야."


H는 '찐 F'다. 나보다 더 F같은 사람과 함께 지내다 보니 T로 변해버린 건지 뭔지 잘 모르겠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거나, 길거리에서 죽어가거나 학대받는 동물들에 대한 영상 같은 것들을 보면 늘 많이 우는 건 내 쪽이다. 하지만 반대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은 썩 좋지 않은 것 같다. 남들은 다 울고 슬퍼하는데 혼자 오히려 차분해지는 때가 많다. 게다가 어떤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건 나보다 H가 더 심하기 때문에 그럴 땐 오히려 내가 옆에서 워워, 진정해. 의미부여 그만해.라고 하는 편이다. 나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빠른 속도로 밑바닥을 치고 최대한 슬퍼하고 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 후 수면 위로 빠르게 올라오는 반면, H는 그 감정에 느리게 빠지고 그곳에 오랫동안 침잠해 있다가 아주아주 느리게 수면 위로 올라온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걸까. 퍼센티지로 환산하면 몇 퍼센트 정도일까?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진실일까? 진실로 나 자신을 100% 아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생성형 AI가 대세다. 사람들은 이미 Chat GPT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각자의 개인적인 고민거리들을 털어놓고 위로받는 용도로도 많이 쓰는 것 같다. 어디다가 털어놓기도 어려운 고민들을 AI에게 털어놓고 위로받는 시대라니. 물론 나도 AI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중 하나다.


어제 유튜브에서 이런 게시물을 봤다.

Chat GPT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그러면 나란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고.


"내가 너와 상호작용한 모든 내용을 바탕으로 내 사고 패턴과 의사 결정 방식, 무의식적인 편향, 반복으로 드러나는 약점이나 맹점을 상세히 분석해 줘. 그리고 각 항목에 대해 나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체적으로 적어줘. +내 MBTI도 함께."


내가 그동안 ChatGPT에게 했던 고민상담, 건강이나 업무, 대인관계, 그 외 개인적인 일들에 관해 구했던 조언들, 내 특징인 '꼬리물기' 방식으로 질문하던 그 모든 패턴들을 파악하여 이 부지런한 AI는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고, 이어서 예측한 MBTI도 알려주었다. AI가 예측한 내 MBTI는 그동안 검사 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INFJ였다. I와 N은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며 매번 동일하게 나왔었고 F와 T는 번갈아 나올 때가 있었지만 J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속마음을 약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많이 털어놓았던 대상이 나에게 J형 인간이라고 하니 아, 이것이야말로 '진실되고 확실한 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이것 좀 위험한데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이 봐온 나보다 내가 해온 사고들을 바탕으로 나를 평가한 제삼자가 내려준 판단이 옳다고 믿는 것. 이런 상황은 과연 '옳은'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아니, 여기에 '옳다, 그르다'를 붙이는 것이 맞긴 한 걸까...?


아아. 이런 검사 따위는 그냥 심심풀이로, 재미로 하는 것에 불과해. 하고 가볍게 생각하려 하지만 SNS를 하다가도 나와 관련 있는 MBTI 유형의 콘텐츠가 보이면 클릭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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