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 Dec 14. 2022

눈물 섞인 오백 원어치 구운 땅콩의 맛

엄마의 삶 5

엄마가 옛이야기를 할 때면 눈이 반짝인다. 지나온 기억을 되새기며 엄마의 엄마와 아빠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줄 때 엄마는 소녀가 된다. 이번에 들은 이야기는 엄마의 개구쟁이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미군부대에서 지프차를 운전했다고 한다. 그때 미군부대에서 일하면 미국 통조림이나 화장품 등을 군인들이 주곤 했는데, 밖으로는 가져갈 수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통조림과 화장품을 잘 모아서 비닐에 꽁꽁 묶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어 밖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땐 이걸 되팔게 되면 제법 큰돈이 되었다고. 이렇게 번 돈으로 큰 제재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제법 일꾼들을 부리며 제재소가 한창 잘 되었을 때 집에 큰 궤짝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곳이 금고였다고 한다. 궤짝에는 큰 자물쇠가 달려있고, 열쇠는 항상 할머니의 주머니에 있었다. 할머니의 열쇠에는 손톱깎이도 달려 있었는데, 지금처럼 세련된 형태는 아니고 크고 무거웠다고 한다. 손톱깎이에 달린 궤짝 열쇠는 늘 자매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물건이었다.


할머니가 식사 준비를 하거나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없을 때면 언니들은 넷째인 엄마를 시켜 손톱깎이를 받아오라고 시켰는데, 할머니는 초등학교 1, 2학년의 어렸던 엄마에게 별 의심 없이 주곤 했다. 엄마가 받아서 언니들에게 주면 궤짝으로 슬쩍 올라가 오백 원, 천 원 정도를 몰래 빼왔다고 한다. 그렇게 몰래 가져온 돈으로 근처 구멍가게에 가서 사탕을 사 먹거나 구운 땅콩을 사 먹곤 했다.


당시 종이였던 오백 원의 가치란 무려 짜장면을 5개나 먹을 수 있는 큰돈이었는데, 잔돈을 남겼다가는 할머니에게 걸릴 수도 있기에 오백 원을 모조리 썼다고 한다. 오백 원어치의 사탕과 땅콩은 아무리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맛있는 사탕과 땅콩도 과하면 물리는 법, 들키지 않으려 먹다가 결국 사탕과 땅콩으로 배가 터질만큼 불렀지만 혼나기 싫어서 억지로 먹으면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울면서 먹어도 많이 남은 사탕과 땅콩은 봉지에 싸서 담벼락과 다락방에 숨겨뒀는데, 나중에 숨겨둔 걸 잊을 때쯤 할머니에게 걸려 옴팡지게 혼났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혼나면서도 궤짝 열쇠를 슬쩍하는 일은 종종 있었는데, 열쇠를 받아오는 건 늘 엄마의 몫이었다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엄마를 제일 예뻐했기 때문에 늘 엄마 등을 떠밀었다고 한다.


이때 이야기를 하면서도 엄마는 어릴 적이지만 돈을 몰래 가져가서 간식 사 먹은 이야기가 창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어릴 때 이런 장난 정도는 누구나 해보지 않았을까? 많이 먹지 못하게 하는 간식을 사서 몰래 먹는 맛은 사실 꿀맛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