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어느 날 아침, 퇴원을 준비한 남자 환자분이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병동 스테이션 앞을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굵은 목소리로 스테이션을 향해 힘차게 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고생하셨습니다. 건강하세요!"
이어지는 병동 간호사 선생님의 밝은 목소리가 스테이션에 울려 퍼졌다.
스테이션에서 처방을 정리하던 중 마주한, 아주 평범한 아침의 한 장면이었다.
수술을 하신 분인지, 항암을 하신 분인지 어떤 사유로 입원하셨던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료를 잘 끝마치고 퇴원하시는 환자분의 가벼운 발걸음과 감사 인사 덕분에 나의 하루 또한 감사한 느낌이 들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료대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며칠 전에는 췌장 두부암 (췌장의 머리 쪽에 발생한 암)을 진단받고 췌두부십이지장 절제술을 받은 환자분이 계셨다.
종양의 크기가 컸고 주변의 주요 혈관에 맞닿아 있어 수술은 쉽지 않았다.
수술 중 출혈도 많았기 때문에 하루 정도 집중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치의 교수님과 마취과 교수님의 판단하에 일반 병실이 아닌 중환자실로 환자분이 나왔다.
중환자실로 내려가 환자분을 마주했을 때, 가장 힘들어 보였던 건 역시 통증이었다.
"많이 아프시죠.. 그래도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났어요.
지금이 제일 힘든 시간이지만 내일이면 훨씬 좋아지실 거예요.
통증으로 너무 힘드시거나 다른 불편함이 있으시면 참지 마시고 꼭 이야기하세요."
이렇게 큰 수술을 마치고 환자분들이 수술 직후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통증이다.
췌두부십이지장 절제술은 수술로 절제되는 장기가 많고, 문합 부위도 많기 때문에 말 그대로 수술 범위가 큰 수술이다.
또한 개복수술을 한 경우 수술 부위가 복부 한가운데 20cm 정도 된다.
그렇다 보니 마취에서 깨어나 회복 중인 환자분들이 통증으로 제일 고통스러워하신다.
그리고 수술 직후 환자분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단 하나다.
'수술이 잘 끝났는지.'
그래서 수술 후 결과가 어떠한지, 통증, 호흡곤란, 오심, 구토 등등 여러 가지 증상에 대해 체크하고 질문을 드리곤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중환자실에 계신 환자분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어제보다는 괜찮으시죠?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 아침에 시행한 검사 결과 다 확인했는데 환자분 전반적인 상태가 다 안정적이어서 교수님께서 오후에 병실로 올라가실 수 있다고 하셨어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안도한 표정으로 환자분이 조용히 내게 말씀하신다.
"네.. 선생님.. 이제는 그래도 좀 참을만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번에 병원 와서 딱 두 가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건강의 중요성을 느꼈고, 두 번째는 간호사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어요.
정말 저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을 비롯한 제가 병원에서 만난 모든 간호사 선생님들을 보니 정말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환자분은 약 2주 기간 동안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시게 되었는데 퇴원 전까지 만날 때마다 같은 말을 건네셨다.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죠.. 너무 감사합니다."
의료대란의 상황에서 환자분들은 걱정하는 마음으로 입원하시지만 그래도 병원에 남아계신 교수님과 모든 간호사 덕분에 이렇게 치료를 잘 받고 퇴원한다고 이야기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전공의 파업 전과 다르게 변한 병원의 모습 중 한 가지가,
오전마다 각 파트의 여러 교수님들이 전담간호사들과 회진을 돌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들 병원에 교수님과 전담간호사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뉴스 기사엔 전공의 파업에 관련된 기사가 꾸준히 매일 올라왔다.
하지만 병동에는 꾸준히 환자분들은 입원하고, 교수님들과 각 파트의 전담간호사들, 그리고 병동 간호사 선생님, 여러 부서의 의료진 등 병원에 남아 있는 인력들은 각자의 몫보다 훨씬 많은 일을 감당하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환자분들이 안전하게 치료를 받으실 수 있도록 고생하고 있다.
또한 환자분들의 치료 과정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매 순간 더더욱 신경 쓰고 있다.
전공의 파업 직후에는 나는 거의 몇 달간 잠을 잘 못 잤다. 밤에 자다 깨면 2-3시간 동안 잠이 안 오고, 불면증이 심해졌다.
다음날 일어나서 병원에 출근해서 내가 해야 할 그 많은 일들에 대한 생각들이 넘쳐났다. 내가 하던 업무에 추가로 인턴, 전공의 선생님들의 업무까지 떠안은 현실이 답답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나처럼 불면증을 겪는 전담간호사도 많았고, 근무 중 너무 많은 일들이 한 번에 몰리고 환자 상태까지 안 좋아지고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그러한 상황을 몇 날 며칠 마주하다 보니 심계항진(palpitation)을 겪으며 일하던 전담간호사의 애플워치가 지난 한 주의 평균 심박수가 증가하였음을 알람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각자 자리에서 더 많은 일을 하며 병원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여태껏 간호사로서 일을 하며 항상 보람을 느끼는 건 환자분들의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
잘 치료를 받고 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 순간.
힘들지만, 오늘도 이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