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부재중 전화

반가운 스타벅스 할아버지의 연락

by 종양전문간호사

휴직을 하고 쉬고 있는 어느 날 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다.


전화를 하신 분은 예전에 내가 근무할 때 자주 입원하시던,

빵모자를 늘 쓰고 다니시던 80대 멋쟁이 할아버지 환자분이었다.

췌장암으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셨고, 이후에도 병원에서 몇 차례 마주칠 때마다 환자분과 나는

반갑게 두 손을 꼭 붙잡고 안부 인사를 건넸었다.


그분이 어젯밤에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을까?

혹시 급한 일이 생기신 건 아닐까?

여쭤보고 싶으신 게 있으셨나?

근데, 내가 지금 휴직 중이라 도움을 드리기 어려우면 어쩌지?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다시 전화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침에 연락을 드렸다.


"안녕하세요~OOO님! 저 OOO 간호사입니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분명 환하게 웃으시면 나와 통화를 하고 계실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반가운 목소리 뒤에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젯밤에 부재중 전화가 떠있어서 연락드려요~"

"아~ 제가요~? 아마 핸드폰이 잘못 눌렸나 봐요."

"아 그러시군요. 저는 무슨 일이 있으신가 놀랐어요~"


잘못 눌린 연락이었다니, 할아버지의 답을 듣고 나니 마음에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세요~?

결혼은 하셨죠? 핸드폰에서 결혼사진을 봤습니다."


아마 이전에 결혼식 때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신 듯했다.


"네~ 결혼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휴직 중이에요~"


"그러시군요~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게 잘 사세요~ 예쁜 아기도 낳으셔야죠~ 허허"


"네~ 감사합니다~! 요즘에도 병원 다니시고 계세요~?"


"네~ 선생님 지금 OOO 교수님께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항암제를 변경하게 되어서 지금 2주에 한 번씩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많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네~ 항암치료하고 집에 오면 며칠간은 힘든데, 어쩌겠습니까 또 잘 이겨내 봐야죠~"


할아버지는 특유의 덤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에 마음이 찡해졌다.


"병원에 갈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다른 병동에 입원을 하지만, 선생님 생각이 자주 나요.

예전에 선생님과 지냈던 그때가 좋았습니다."


환자분은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파트에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셨던 기억을 떠올리신듯했다.


할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은 항상 두 가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첫째, 귀여운 빵모자와 멜빵바지.

둘째, 내게 항상 스타벅스 종이 백을 건네시던 손길.


입원하실 때마다 귀여운 빵모자와 멜빵바지 차림으로 들어오셨고,

환자분이 입원하시면 나는 항상 제일 먼저 환자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실로 환자분을 찾아갔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커튼을 열고 인사하는 내 모습을 보자마자

침대에 앉아 계시다가 바로 일어나셔서는

옷장에서 자신의 가방을 꺼내고, 그 안에 있는 스타벅스 종이 백을 내게 건네셨다.


그 종이 백에는 스타벅스 초콜릿, 사탕 또는 쿠키 등 작은 간식들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입원하실 때마다 작은 선물들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매번 "정말 안 사 오셔도 된다"라고, "마음만이라도 저는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씀드려도

나는 항상 한결같은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스타벅스 할아버지’라고 자랑하곤 했다.

내 손에 스타벅스 종이백이 들려 있는 날이면

동료들은 바로 알아차렸다.


“어? 오늘 스타벅스 할아버지 입원하셨어요?”


할아버지는 집에 계실 때는 친구분들과 자주 스타벅스에 모여 차를 마시며 이야기한다고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귀엽고 따뜻했다.


80이 넘는 연세에 매일 심심하실 수도 있는데,

함께 만날 친구분들이 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다는 것.

그런 일상을 즐기시는 모습이 부러울 만큼 멋지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 뜻밖의 부재중 전화 덕분에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매번 두 손을 꼭 잡고 반갑다고 인사해 주시던 모습,

작은 선물을 건네며 웃어주시던 얼굴,

그리고 “선생님을 생각한다”던 따뜻한 말 한마디.


누군가의 삶에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용히 따뜻해지는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혼란의 시간 속에서 지켜낸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