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항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하루

항암치료라는 긴 터널

by 종양전문간호사

건설업에 종사하시던 40대 남자 환자분은 췌장암, 정확히 췌장의 꼬리 쪽에 발생한 암으로 원위부 췌장절제술을 받으셨다.


수술 후에는 보조 항암요법을 시작하였고 총 12번의 항암치료 중 오늘이 벌써 11번째 입원이었다.


환자분이 처음 췌장암 진단을 받고 병원을 내원했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안경 너머로 보이던 눈빛은 초롱초롱했지만,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혹시라도 설명 하나를 놓칠까 봐 환자분은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귀 기울여 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평소보다 더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설명하려 노력했다.

환자분이 이해하지 못한 채 불안 속에서 치료를 시작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궁금해하시는 질문에는 가능한 한 쉽게, 반복해서 설명을 드렸다.
그래야만 환자분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고 치료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환자분은 늘 꼼꼼했다.

입원하실 때마다 지난 항암 후 본인이 겪었던 증상들을 내게 세세히 이야기해 주셨다.

몸에서 새롭게 일어난 변화, 힘들었던 증상 하나하나를 핸드폰에 기록해 오셔서 설명해 주셨다.

그 모습에서 나는 환자분을 만날 때마다 늘 '병과 싸우는 환자분의 성실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환자분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암진단을 받고, 저는 제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항암을 받으러 오기 전날이 되면.. 이상하게 예민해지고, 병원에 오기 싫어져요."


잠시 말을 멈추시더니 이어서 덧붙이셨다.


"가만히 있다가도 문득, '내가 왜 지금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벌써 11번째 항암이고, 이제 한번 남았는데도 아직은.. 항암치료라는 게 참 힘드네요.."


환자분은 그런 마음을 잊기 위해 매일 평소 꾸준히 자전거도 타고 운동을 하신다고 한다.

퇴원 당일에도 늘 오전 일찍 퇴원을 하시곤 했는데, 집에 가자마자 바로 자전거를 타러 나가신다고 한다.

그 시간만큼은 '암 환자'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했다. 암 치료를 받으며 힘든 마음을 잊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환자분에게는 중학생 첫째 딸과, 아들이 있다.

아이들에게 암 진단 사실을 숨겼고, 아이들은 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자주 다니는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달 전, 결국 아이들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환자분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셨다고 한다.


"아빠가 아프니. 앞으로 몇 년간은 아빠를 위해 가족들이 힘써주고 서로 위로해 주고 함께 힘내야 한다."


환자분은 항암치료 전날이면 본인도 모르게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항암 하는 날 아침마다 큰 딸이 병원에 잘 다녀오라며 꼭 안아준다고 했다.

환자분은 그 따뜻한 포옹으로 다시금 힘을 찾고,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입원하신다고 한다.


환자분은 말한다.


"암 진단받고 난 뒤로는 길을 걷다 병원을 지나치는 것도 싫더라고요.

그리고 6인실 병실에 입원하면 회진 시에 의료진이 다른 환자들의 안 좋은 예후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 말이 곧 제 이야기 같아서 듣기가 힘들더라고요.. "


그래서 늘 2인실이나 1인실에 입원하신다고 한다.


"이 정도 항암치료를 받으면 적응할 만도 한데, 저는 아직도 불안하고, 잘 적응이 안 되네요.

그래도 이렇게 입원할 때마다 선생님을 만나 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해요."


그 말을 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환자분들이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내원하시는 그날,

입원 전날부터 얼마나 큰 마음의 고통을 안고 오시는 걸까..

겉으론 담담해 보이지만, 환자분들의 그 마음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11번째 항암이라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환자분의 하루.

그 복잡한 마음을 내게 솔직히 털어놓는 환자분을 보면,

환자분이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하시면서 조금이라도 그 무거운 마음을 덜어놓으셨으면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돌봄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환자분의 마음을 읽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환자분의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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