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귓밥을 파야한다. 서빈이의 귀가 자주 막힌다. 나 어렸을 적에는 아빠 무릎에 누워 아빠가 파주는 것이 정석이었는데, 요새는 직접 파주지 말란다. 귀지도 전문가에게 맡기는 세상이다. 아무튼 우리가 다니는 이비인후과의 원장님은 귓밥을 정말 잘 파신다. 수술도 병행하셔서 그런지 손끝 감각이 예민하시다. 화면을 통해 단 몇 분 만에 시원하게 뚫리는 서빈이의 귀를 유튜브 시청하듯 보았다.
어린이집에 새로 입학하게 되면 선생님이 '우리 아이 저희가 잘 키우겠습니다' 하신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구나. 한 번 더 그 말을 곱씹게 된다. 셀프가 사라져 간다. 교육은 교육기관에서, 미용은 미용실에서, 운동은 태권도장에서 그렇게 아이를 키운다. 육아는 어린이집이 맡았다. 아이를 주로 키우는 곳은 가정이 아니라 어린이집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의 역할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따뜻하고 깨끗한 옷을 입히는 것. '의식주'의 기본만 남았다. 의식주중에 '식'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때가 많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안 먹겠다는 아이에게 화를 덜컥 내봤던 경험은 나만 있는 것은 아닐 거다. 요즘은 간단한 굽는 음식만 내가 하고, 그 이상의 요리는 반찬가게나 배달음식점, 시어머니 집밥 혹은 외식찬스를 쓴다. 가족들도 잘 먹고 나도 기쁘다.
대신 정서적 케어는 가정 안에서 셀프로 이루어진다. 가정은 아이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챙겨 먹인다. 이는 가족의 일상 속에 녹아있다. 아이들 마음에 대해 대화하고, 또 규칙 있는 훈육을 하는 것, 부모의 삶을 보여주는 일 같은 것들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가정의 몫이다. 나 또한 아이들의 마음상태를 수시로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책을 읽다 보면 분야는 다르지만 통하는 구절이 있다. 책 「회복탄력성」의 '강점의 수행'이라는 말이 나에게 그랬다. '강점의 수행'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하지 않고, 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나의 강점을 더 개발하라는 것이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한 분야만 잘 해내면 살아갈 수 있는 현대사회의 생존방식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또 자급자족하지 않고 분업화가 이루어진 산업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 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와 관련된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부모가 해내려고 애쓰지 말자. 가능한 것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가정만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모든 걸 잘 해내려고 애쓰지 말자, 그건 사실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일 수도 있지 않나, 육아에도 선택과 집중의 우선순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