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아기와 땀나는 에버랜드 방문기
동물들을 보여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부산에서 용인까지 왔다. 털부츠, 두꺼운 외투, 유모차 방한 시트까지… 이보다 완벽한 대비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눈치게임에 실패할 줄이야. 평일이 아니라 주말 같았다. 사파리 버스에 예상했던 대기시간은 약 20분이었는데, 현실은 1시간 20분. 4시간 걸려 달려온 이곳에서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을 맞이했다.
‘우리 아기 나이는? 18개월. 컨디션은? 장거리 운전으로 잔뜩 예민해짐. 말은? 아직 안 통함.’ 비상.비상.비상상태 발생.
남편이 혼자 줄을 서고 나와 아기는 그 주변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최소 20분은 꼼짝없이 대기줄에서 함께 기다려야 했다.
“으아앙~~~!”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만져볼 게 너무 많은 이 에너자이저 아기를 아무 데도 못 가게 하니 끝끝내 분통을 터트린다. 달래려 번쩍 안아 올리니 아기는 허리를 뒤로 꺾어가며 뻗탱긴다. 하필 남편은 유모차를 맡기러 나갔다가 저 멀리 합류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내 두 팔은 저려오고 등에선 땀이 또르르…
사파리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아기 표정이 영 시큰둥하다. ‘아기를 이렇게 울려가면서 … 누구 좋으라고 이 짓을 하고 있나’ 싶다. 그리곤 며칠 전 집 앞 공원에 가서 솔방울을 주우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하던 우리 아기의 얼굴이 떠오른다. 4시간을 걸려 5만 원을 내고 동물들 보러 온 표정이 10분 거리의 공원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만 못하다니.
사실 욕심이었다. 캐릭터 말고 실제 동물들에 호기심을 가지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 놀라운 광경에 ‘우와~’하며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기뻐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엄마의 욕심. 24개월 미만의 영유아는 꼼작 못하고 가만히 있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을 알면서 이를 강행한 엄마의 욕심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대단한 놀이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어 줄 무릎을 내어주는 것이면 충분히 행복해한다. 그걸 알면서도 가끔 욕심이 앞선다. 어떤 박물관에 데려가고, 유적지에 데려가는 미션을 클리어하면 부모 노릇을 잘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정작 평소에 집에서는 제대로 놀아주지 않고서는 말이다. 새로운 장난감도 같은 이치다. 방대한 양의 장난감을 사주는 것만으로는 놀아주는 게 아니다. 한 장난감이라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즐겁게 놀아주는 게 진짜 ‘놀아주기’이다. 나는 우리 아기에게 매일의 일상에서 충분히 즐겁게 놀아주고 있는지 반성했다.
동물원에 다녀온 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기린이랑, 호랑이랑, 곰이랑 봤지?!”
“응!”
자신보다 몇 배는 큰 동물들을 눈앞에서 본 것이 효과는 있었는지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초보 엄마 아빠의 노력을 알아준 것 같아서 아기에게 고마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