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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 Nov 22. 2022

삼십 대의 자기소개 시간

'안녕? 나는 송지야. 평촌중학교 다녀. 너는 이름이 뭐야?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중학생이던 나는 낯선 친구에게 관심이 많던 청소년이었다. 새로운 학년 반, 새로운 학원에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친구에게 꽤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는 했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익숙하고 당연했던 그때 그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 쑥스럽고 어색해진 30대의 나는 그 시절의 나와 다른 사람인 것 같아서 서글프다.


둘째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갔다. '화요일 PM 3:00 조리원 동기 만들기' 스케줄표에 적힌 대로 오늘은 조리원 동기들과 서로 인사하는 자리가 마련되는 날이었다. 약간은 설레고 조금은 어색한 마음으로 프로그램실에 들어갔다. 조리원 원장님의 리드로 같은 조리원복을 입은 다섯 명의 산모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정말 오랜만에 이런 거 해보시죠? 호호호"


원장님이 자기소개를 시켰다. 얼마 만에 해보는 자기소개일까.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는 일이 이렇게 낯간지럽고 어색할 줄이야. 나는 내 안의 모든 사회성을 끌어모아 최대한 담담하고 상냥하게 내 소개를 하였다. 나의 이름, 나이, 사는 곳, 자녀 유무 등을 밝히는 간단한 자기소개였다. 누군가를 처음 사귈 때의 낯설고 신선한 느낌은 자기소개와 함께 나를 짜릿하다 못해 아찔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그럼에도 재미있었다. 나와 상황이 비슷한 누군가와 인연을 맺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웠다. 비슷한 듯 다른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과정은 고여있는 물에 큰 파도처럼 에너지로 다가왔다.



순수하게 친구를 사귀던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는 밤

조리원 동기모임이 끝나고 방으로 들어와 중학생 때의 나를 떠올렸다. 새로운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갔던 그때의 나. 왜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복잡해졌고 어려워졌을까? 왜 낯선 사람에게 나를 내비치는 것이 떨리고 부담되는 걸까. 아마도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저런 사회를 겪어가며 여러 사람들 속에서 닦이고 깎여버린 나에게 그 이유가 있겠지. 마냥 해맑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내가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때 그 시절처럼 마냥 해맑을 수는 없더라도 누군가를 새로 사귀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나는 남은 조리원에서의 시간 동안 용기 내어 설레어 보려고 한다. 눈만 마주쳐도 꺄르르 웃음이 터지던 그때 그 단짝 친구처럼 소중한 인연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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