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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 Feb 17. 2023

숨는 아이




서빈이가 네 살이 되더니 약을 먹기 싫어서, 호흡기 치료를 하기 싫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엄마와 씨름을 한다. 그다음에는 바지를 입기 싫어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숨는다. 오늘도 내일도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네 살의 하루다. 서빈이는 식탁 밑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파묻고 없는 척을 한다. 하기 싫다고 깐죽깐죽 숨어버리는 말괄량이 어린이. 귀엽긴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나는 결국 ‘이서빈 너 혼난다!’ 하고 뱃속 깊은 호흡과 함께 고함을 내지른다.

 




나의 불호령에 서빈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 나의 목소리가 무섭다는 신호이다. 놀란 네 살 아이가 고개를 들지 못하면 나는 아차 싶다. 등원시간은 정해져 있고,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초조한 내가 오늘도 기어코 또 화를 냈구나.


“서빈아 너 약 먹기 싫구나?

그럴 땐 도망치지 말고 ‘먹기 싫어요~’ 말로 하면 돼.

그럼 엄마가 들어줄 수도 있어”



이제는 네 살도 됐으니 의사표현을 말로 하라고 가르친다.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다. 물론 약 먹기 싫다 말해도 ‘안돼. 약은 먹어야 돼.’ 하고 대답을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알려주고 싶다. 도망치지 않고 대화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조금 더 늦게 먹는다거나, 약을 먹고 나면 좋아하는 과자를 준다던가 하는 엄마와의 작은 거래를 아이가 배웠으면 싶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서 만큼은 아이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준다. 오늘 잘 못했다면 내일 또 울지 않고 화내지 않고 말로 표현하는 것을 알려 준다. 그래서 화가 나면 집어던지는 버릇을 많이 고쳤다. 요즘에는 화가 나면 ‘엄마 서빈이 화났어! 화나서 눈물이 나와!’하고 소리친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가 대견하다. 물론 또다시 참지 못하고 물건을 던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아이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회를 주는 것처럼 부모인 나에게도 너그럽게 성장할 시간을 주고 싶다. 나는 화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오늘 이렇게 또 화를 냈다. ‘다음에는 화내지 말자’며 나에게도 스스로 기회를 준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커간다 했던가. 나도 훗날 더 멋진 부모가 되어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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