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대를 걸기엔 너무 단순하고 포기해버리기엔 너무 복잡하다(박민규)
이제 한국에도 채식하는 사람이 꽤나 많아졌다고 한다....지만 여전히 채밍아웃을 하면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불쾌하거나 귀찮진 않다. 나에게 채식은 운동(movement)의 측면도 있기 때문에 질문은 오히려 반갑다.
하지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 말하자니 너무 샌님같고, 짧게 하자니 "그럴거면 왜 해?"라는 소릴 들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찾은 타협점은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서..'라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 이야기하는 것이다.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사람일 때 이 방법을 시전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거다.
고기를 안 먹는 게 그닥 힘들지 않다. 원래 고기는 쌈장 맛, 회는 초장 맛 아님?
나에게는
쌈장 듬뿍 찍은 고기 = 쌈장 듬뿍 찍은 버섯 >>>>>> 고기
초장 듬뿍 찍은 회 = 초장 듬뿍 찍은 묵 >>>>>>> 회
그렇다, 굳이 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다.
잠깐 키운 고양이가 있었다. 아주 작고 예쁜 검은색 새끼고양이였다. 동아리 후배들이 며칠 들여다보다 차마 죽게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데려온 아이였다. 당시 귀촌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우리 집이 냥홈으로 낙찰됐다. 며칠 서울에서 조심조심 보살피고 있다가 시골집으로 데려갔다. 냥이는 순식간에 가족들의 최애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못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아니, 죽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허름하고 작은 시골집이었다. 집을 짓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초가집 같은 건물이었다. 집안에 턱이 많았고, 밤에는 불빛이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작고 여린 생명체는 한밤 중에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깔려죽었다.
전화로 소식을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가족들에게 미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나보다 몇 주 더 함께 살며 직접 돌본 가족들의 슬픔이 훨씬 컸다. 엄마, 아빠, 동생은 서울에 올라왔다가, 집에 바로 내려가면 너무 슬퍼서 못 견딜 것 같다며 찜질방에서 자고 갔다.
그래도 머릿속엔 온갖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울타리를 쳐줬어야 했어', '울타리를 쳐줬으면 죽지 않았을까?', '몸이 너무 약해서 피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
슬픔의 시간이 지나가고, 검은냥이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로 남았다. 그 이후에 다른 검은고양이가 왔고, 처음엔 몸이 안 좋아서 눈도 제대로 못뜨고 다리도 절었는데 잘 먹고 보살핌을 받으며 싹 낫고 건강하게 잘 자랐다.
하지만 여전히 그 작은 검은냥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 얘긴 안해도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의의 사고. 한 생명의 죽음이 어쩔 수 없는 불운이 되었다. 정말 불운으로 끝내면 되는 문제일까. 나는 도대체 왜 그 친구를 데려가놓고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는가. 왜 데려간 걸까. 죽고나니 '사고였어'하고 멋대로 정리해버리는 걸까. 죽은 고양이는 이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냥 끝이다. 인간이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 인간은 너무 잔인하고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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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채식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네팔에서 몇 달간 머물렀고, 도로에서 내장이 죄다 밖으로 터져나온 채 죽어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그 때 인간들이 동물에게 너무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섭리와는 이미 너무나 동떨어진 채.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우리가 너무 죄인으로 비춰질까봐 글을 다듬는다. 잔인함과 이기적임을 고백하는 중에도 잔인하고 이기적이다.
습관으로 새기고 싶었다. 사색과 고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했는데, 살면서 너무 많은 사람(/것)들에게 상처를 줬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머릿 속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몸에 새기면 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채식이 어떤 해답이 되었냐고? 아니.
채식은 어떤 것에도 해답이 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공장식 사육이 나 하나 고기 안 먹는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채식을 시작한 이후로 타자의 고통에 늘 절실히 공감하며 상처 주지 않고 사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난 채식을 계속 할 것 같다. 내가 지구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임에도 죽어버리지 않고 살아있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뭐, 여전히 고기가 그닥 땡기지 않기도 하고.
_나는 (육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베지테리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