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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예 Feb 07. 2023

권기백 권아인

나의 주도성을 가지고, 누군가와 함께, 0에서 1을 만든다.

| 생후 340개월 |
많이 먹었네요



(구)내전 한복판에서 미디어를 온몸으로 느낀 (현)쓰리잡러

따: 요즘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아: 요즘 엄청 바쁘게 살고 있구요, 생각보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 저것 많아서 정리가 안 되는데… 프로젝트 매니저로 콘텐츠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구요. 그러니까, 메인은 콘텐츠/미디어 분야에서 파생된 일들이고, 그 외적으로 정말 소소하게는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바 개념) 저도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요즘은 하루가 모자란 느낌이 드네요.


따: 최근에 이직해서 바빠지신 건가요?


아: 이직한 지 2개월 좀 넘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적응하느라 시간을 많이 쓰는 거 같아. 힘들긴 한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한창 적응기인가 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좀 바쁘네요.



따: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되셨나요?
아: 일단은 제가 미디어라는 단어에 꽂힌 게 가장 커요. 고등학교 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사정 때문에 10년 정도 이 나라 저 나라에 살다가 왔거든요. 그중에 제가 중2~고1, 2쯤 살던 나라가 리비아였어. 거기서 다른 나라로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랍의 봄이라는 큰 내전이었는데, 그 내전을 겪으면서 미디어라는 단어나, 그 단어가 주는 힘에 대해 엄청 많이 체감했던 거 같아. 그 전쟁이 일어나고 아예 그 정부가 나라 전체의 미디어를 컨트롤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다리는 TV나 이런 게 아니라 SNS, 트위터, 페이스북이었어. 당시 신생 미디어였던 것들을 통해서 오히려 리비아 상황이 보도가 많이 됐거든. 그러니까, 그런 미디어들 때문에 실제로 현지 상황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었거든. 현장에 있으니까 그 영향력을 엄청 체감했어. 그때 이거 되게 중요하고 멋진 분야다- 싶었지.


그리고... 미디어라는 단어도 멋있잖아. (근데 솔직히) 미디어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모든 걸 포괄해. 직역하면 '매개 / 매체'니까ㅋㅋㅋㅋ 와 대박이다- 싶었지. 어린 마음에 그 영향력이 되게 크게 와닿았어.


그래서 대학 갈 때 어떤 과를 갈지 정하는 와중에 미디어를 해보겠다- 했지. 그때까지만 해도 미디어라는 게 엄청 인기가 많은 학문은 아니었고, 새로 생긴 학문 분과였기 때문에 나름대로는 위험을 감수한 거야. 주변에서 우려가 많았어. 주변 = 부모님. 근데 그땐 확신이 있어서 그냥 밀어붙였지. 좀 싸웠어. 싸웠다기 보단, 내가 왜 그 대학에서 이걸 공부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부모님을 진짜 열심히 설득했어.


아직도 되게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결정적인 계기가 아빠랑 주고받았던 이메일. 내가 제일 고민 많았을 때 아빠가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하고 계셨거든. 어느 날 아빠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어. 아빠가 그 메일 받자마자, ‘너가 확고하다면 해봐라’하셨거든. 그래서 미디어로 가게 됐지.


내가 지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때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학문을 공부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대학에 대한 만족도가 정말 커. 공부를 즐겁게 했던 순간이어서.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졸업하고 나서도, 관심사가 거기에 있으니까 일로도 연결됐던 거 같아.


따: 미디어라.. 뭘 배우나요? 외쿡 학교는 좀 다른가?


아: 미디어학부가 사회학 아래 있었는데, 인문학부라는 게 현재 사회의 일을 다루잖아요? 그래서 학문이 엄청 살아있다고 느꼈고. 옛 철학자들이 했던 얘기를 지금의 일과 결부시켜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요. 현직 교수들이 내는 것도 계속 업데이트가 되는 분야고. 속도가 엄청 빠른 학문인데, 그게 매력적이었어.


쉽게 말해 내가 오늘 뉴스나 SNS에서 보고 듣는 일들을 학교 수업에서 내일 얘기하니까. 매력적이었지. 피부에 와닿는 학문이었고.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 같습니다.


따: 구체적으로 어떤 걸 배웠어? 과목으로 치면?


아: 일단… 철학도 배우고, 미디어의 역사적인 영향력이나 배경들? 난 영국에서 공부했으니까 영국 미디어의 역사 같은 거. 주제가 되게 다양했는데, 페미니즘은 당연하고, 사회적 격차(불평등), 인문학 전반이지. 사회학과랑 되게 비슷해. 근데 이제 미디어를 곁들인ㅋㅋㅋㅋ


따: 오..? 저도 K-사회학과인데ㅎㅋ.. 외국(영국) 학교여서 좋았던 것도 있었을까?


아: 잘은 모르지만, 거긴 토론을 많이 했어. 지금도 기억나는 게, 내가 썼던 소논문 주제가 <해리포터 작가는 인종차별주의자인가>였거든. 그런 거에 대해서 그 나이에 다 같이 열어놓고 토론했으니까. 내가 재밌게 소비하는 콘텐츠를 가지고 학교에서 얘기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었지.



므찌다 므쪄 대학생 권아인




우물 들여다보다가,

일단 숨참고 LOVE DIVE

따: 그럼, 실질적으로 이전 회사(첫 커리어)에 들어간 계기는?

따: 전 회사에 들어간 건, 사실 원래는 거길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 일단, 내가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온 이유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한국행을 결심한 건 한국 미디어씬에 있어보고 싶다는 거 하나였어. 해외에 있으면서 솔직히 편견이 있었거든. ‘한국 절대 안 가야지’, ‘가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거 같다’ 같은. 근데 막 그 공부를 할 때쯤(우리 20대 중반쯤), 한국에서 미디어붐이 있었고, 새로운 미디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관심이 가서 찾아보니까 한국의 새로운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이 내 나이 또래더라고? 그렇다면 내가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보다야, 나중에 좀 후회하더라도 가봐야겠다. 해서 한국에 왔죠.


전 직장 들어가게 된 루트는 진짜 희한했는데. 먼저... 닷페이스를 팔로우하고 있었고, 닷페 필름메이커였던 리인규도 팔로우하고 있었지. 근데 리인규가 그 회사에서 워크숍을 하는 거야. 그래서 이 회사 뭐지? 하고 들어가 봤는데, 파트타임으로 사람을 구하고 있었어. 그래서, 파트타임이면 내가 다른 일 찾기 전까지 편하게 일해볼 수 있겠다 싶었지. 생각 없이 휘릭- 작성해서 냈는데 바로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어요. 그것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할 줄이야… 전혀 몰랐지. 사실 들어갈 땐 정규직으로 있을 생각도 아니었고.


근데 되게 좋은 건, 그리고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건... 직장 다니면서 힘들었지만 어쨌든 다니면서 내가 원하던 건 어느 정도 이뤘어. 나는 ‘이 분야의 사람들을 좀 알고 싶다’,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들어왔으니까. 근데 결과적으로 어느새 내 주변에 그런 걸 너무 잘하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친구가 됐고.


따: ㅈ.. 저도?


아: 응~ (능글) 그리고 진짜 솔직히 이렇게 해서 만난 친구들이 지금의 나한테 엄청 많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함. 커리어 결정도 그렇고, 지금 이 시기, 딱 고민이 많을 때 이 친구들을 만난 게 엄청 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고맙죠.


따: 네~ (능글 22)


따: 미디어 분야에서 ‘일’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지? 무슨 일을 했어?

아: 다했는데요 ㅋ  (보통 이렇습니다_옮긴이) 기획자였죠. <미디어 기획자>라는 명칭으로 있었어요. 영상콘텐츠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오프라인 행사나 프로그램, 미디어 교육 전반을 다 했어.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미디어 스타트업 컨설턴트로 같이 일했지. TF팀에 같이 들어가서 초기 브랜딩을 도와주는 역할.


따: 오, 직무 자체는 지금 다니는 곳보다 원래 너의 방향성과 더 맞았던 거 같은데?


아: 그러게. 전 회사가 힘들었어도 2년을 다닌 게… 내가 성장을 한다는 직관적인 느낌이 그래도 매번 있었던 것 같아. 그렇다고 내가 이 회사에서 배울 게 없는 건 절대 아니지만. 확실히 지금은 그런 느낌이 덜 하니까 ‘내가 왜 이렇게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될까’라는 고민이 계속 들긴 해.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지금 직무가 내게 안 맞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하네.(*각주_현재는 콘텐츠 크리에이팅이 실질적 업무량의 과반) 근데 아직 더 분석 중이고, 고민이 많다- 로 일단 정리하겠습니다.




효용감있게, 함께 하는,

맨 땅에 헤딩(?!)

따: 그럼 일단 미디어 업계의 일로 퉁쳐서, 너가 그 일 하면서 좋을 때는 언제야?

아: 이 일의 매력은, 동시에 이 일의 고질적인 고통이기도 한데… 0에서 1을 만들어 간다는 거. 그게 가장 힘들면서도 좋은 거 같아. 그리고 그걸 나 혼자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팀과 함께 해야만 하는 거야.


즉, ‘누군가와 함께’, ‘0에서 1을 만든다’.

아,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아요. 지금은 재택이라 매일 집에만 있지만, 소위 말하는 사무직의 일이 아니라, 내가 이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공간에 실재하고, 그 과정을 피부로 느끼잖아. 그렇게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게 너무 즐거워.

그래서 작년에 뮤직비디오 작업했을 때도 너무 좋았어. 내 눈앞에서 그런 것들이 만들어져 가는 걸 보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밑바탕에 온전히 우리만의 힘으로 쌓아 올리는 과정. 그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어.



따: 힘들 때도 있어?

아: 힘들 때는, 진짜 0일 때.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순간이고. 회의감이라고 하면 개인적인 건데. 내가 일을 하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거나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인 것 같아. 일에서 자기 효용감을 느끼지 못할 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을 때. 그게 바로 안 느껴지고, 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설득시켜야 하면 힘이 많이 들잖아. 난 그게 에너지가 진짜 많이 드는 거 같아.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실제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ㅅㅇ.. 하겠구나, 마침내

따: 이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점은?

아: 제일 컸던 건. 난 절대 혼자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난 혼자 일하는 게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왜냐면 커온 과정 자체가 늘 독립적으로 뭔가 해야 하는 환경이었어. 그래서 일하는 것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일을 독립적으로 한다'는 건 다른 의미 같아. [독립=혼자]가 아니라, [독립=주체성/주도성]인 듯? 나는 내 분야의 주도성을 가고 있으면서 팀과 같이 일했을 때가 가장 능률이 좋고, 무엇보다 재밌어. 그래서 난 결과물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끝내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 주변에 사람이 남는다는 게 큰 행복이야.


따: 맞아. 정말 너라서 가능한 것 같아. 너처럼 매 프로젝트마다 누군가를 남기는 사람도 못 봤어.


아: 그게 너무 고마운 거 같아. 내가 막 그러겠다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건 아니거든? 그냥 그렇게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주고, 일이 끝난 이후에도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주는 게 너무 고맙고. 그리고 그 사람들이랑 뭔가를 너무 해보고 싶어요. (님이요)


따: ~_~


아: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뚜렷해지는 거 같아


따: ㅋㅋㅋㅋㅋ사랑하는데, 절 향한 광기 어린 눈빛 잠시만 거둬주세요.


아: (아랑곳)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같이 뭔가 하면 무조건 시너지가 날 것 같은데. 물론 지금은 아니긴 하다. 우리 다 좀 더 큰 사람이 됐을 때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땐 일낼 것 같다. 원래 나는 죽었다 깨나도 사업 같은 건 (흥분) 죽었다 깨어나도!! 결단코!!!!!!!! 우리 아빠 사업 망한 이후로 절대 안 하겠다 했거든? 근데 자연스럽게 이 사람들 데리고 그런 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희한하기도 하고. 주변에 너무 다재다능하고 끼 많은 사람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내가 틀을 같이 만들어나가면 너무 좋겠다.


따: 선생님... 사업 안 하겠다기엔 지금 그 모습과 발언이 너무나 CEO인데.


아: ㅋㅋㅋㅋ그치만 지금은 뜬구름 잡는 느낌이고. 구체화되려면 나에게도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와, 우리 5년 뒤에 이거 보면 어떨까?


따: 울거나 웃거나?ㅋㅋㅋㅋ 차기 CEO님의 기대에 부응해서 저도 덩달아 잘하고 싶어 지네요.



확신의 CEO 상




좋은 공간과 사람을 찾고 관계 맺는 글로벌 스토커

따:일 안 할 땐 뭐 해?

아: 이제 개인 얘기 타임인가요. 아흥 좋아~ 요즘 운동하구요. 테니스에 꽂혀가지고. 너무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 겨우 하고 있긴 한데… 너무 못 하는데 너무 재밌어. 배운 지 5개월 밖에 안 돼서 진짜 못하거든? 근데 너무 재밌어. 영하 십몇 도를 뚫고, 아침에 해도 안 떴을 때 가서 하는데, 그걸 해낼 정도로 너무 재밌어.


음.. 요즘 말고 원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디깅 하는 거. 원래 먹고 마시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그런 데를 막 찾아서 간다든가? 근데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곳의 브랜드 히스토리를 보는 걸 좋아해.


예를 들어서 어떤 한 식당을 갔는데, 음식 맛도 좋지만 공간 구성이라든지 전체 고객경험을 잘 설계했어. 그러면 그걸 하나하나 뜯어보는 거지. 난 이게 왜 좋을까? 사람들한테 뭐가 어필됐을까? 음악은 뭘 틀었길래? 하면서. 그럼 집에 와서 찾아봐. 아, 이 사장님이 다른 덴 이런 걸 냈네. 전엔 이런 일을 했네. 그래서 이런 게 좋았구나. 하는 거야. 과거 이력을 보면서 퍼즐 맞추듯이.


이태원에 되게 좋아하는 음식점이 있는데. 와일드덕칸틴. 공간 경험이 엄청 좋아서 자주는 안 가도 꾸준히 오래 가고 있거든. 찾아보니까 거기 사장님이 을지로에서 포스터 수입해 가지고 판매하는 일을 했었던 거야. 생각해 보니 그 센스가 공간에 묻어있었어. 그리고 이 분이 낸 다른 바가 있는데, 거기도 엄청나게 취향이 좋게 잘 꾸며놨더라고. 그럼 '캬, 그 두 군데가 같은 사장님 한 거네~' 하면서 재밌어하는 거지. 이런 스토리를 찾아보는 걸 좋아해.


대부분 확고한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들이 그런 걸 만들더라고. 그런 사람들 파보는 걸 좋아합니다. 약간 스토킹 같나요ㅎㅎ.. 암튼 그런 느낌으로 파고, 그러면서 단골이 되어가는 과정을 굉장히 즐깁니다.


20대 초반엔 마냥 유명하다는 데라면 다 가봤거든. 근데 클수록 내가 좋고 내가 편한데 자주 가게 돼. 그리고 거기 사장님이랑 한마디 두 마디 섞다가 좀 더 친해지고, 점진적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게 너무 재밌어. 그럼 더 자주 가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데려가고. 그렇게 하면서 나만의 안전한 공간을 군데군데 두는 걸 좋아해요.


생각해 보면, 이사가 잦은 나한테는 집이라는 개념이 되게 유동적인 거였거든. 물성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어느 나라에 살든 그런 공간을 본능적으로 찾은 것 같아.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만한 공간과 사람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게 아닐까.


따: 물성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관계를 맺어버리면 나중에 멀어져도 남으니까.


아: 오, 맞아요! 맞는 거 같아. 사실 어렸을 땐 그게 진짜 싫었거든. 허구헌 날 집을 옮겨다녀야하고, 어린 아이한테 그건 매번 헤어짐이잖아. 서울에서 대전 가는 것도 아니고 나라를 옮겨버리니까. 어린 마음에 너무 스트레스였지. 애기한텐 이 공간이 세상의 전부인데 거길 벗어나버리면 열심히 구축해둔 세상이 끝나니까.


근데 그게 커가면서는 그게 나한테 되게 좋은 자산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오히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일일 수 있겠다.


따: 정말 건강하게 돌파구를 찾았구나.


아: 그러려고 노력했지. 어릴 땐 되게 힘들긴 했는데. 지금 보면 웃긴 게, 내가 중학교 때부터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가 있거든? 근데 그 친구는 캐나다 살아. 그 친구를 마지막을 본 게 고등학교 때인데도, 그 친구랑 나는 어디서든 서로가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언급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물리적으로 보지 않아도, 이런 관계가 가능하구나 싶지. 너무너무 고마운 친구야.


심지어 그렇게 자주 연락도 안 해. 무조건적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자주가 중요하지 않더라고. 그 친구와의 관계가 내게 확신을 주는 것 같아. 나와 매일매일을 공유하지 않지만, 내가 어떤 결정을 갑작스레 해도 이 사람은 무조건적으로 내 결정에 대해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마음으로 믿게 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가 느낀다는 게 진짜 소중하다. 그래서 내게 ‘관계’가 되게 큰 키워드인 것 같아.


따: 너 완전 미래 인잰데? 소유가 아닌 향유.(?)


아: ㅋㅋㅋㅋ그래도 물성도 중요하지. 계속 한국에 있다 보니 요즘은 그런 것도 느낍니다.


따: 너한테 지금 나는 물성인 건가? 중요해?


아: ㅋㅋㅋㅋㅋㅋ그러엄~


--------플러팅 절취선--------



Her shape of love




알콜 박애주의자

따: 먹고 마시는 거 좋아하시면.. 현재 최애 술은?

아: 아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머리를 감싼다) 일단!

(멈칫) 잠시만 주종별로 가도 될까요? 사실 그날 분위기와 음식이 중요한데… 저는 소주도 좋아하고요. 소주 중에선 대선. 깔끔하거든요.


음, 제가 술을 좋아하게 된 배경엔 저희 부모님이 있답니다. 외국은 좀 더 어릴 때부터 술을 접할 확률이 높으니까, 부모님이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교육을 시켰던 거 같아. 아예 맛보게 해 주고.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 알려주고. 그렇게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에 들어왔지. 그래서 난 술도 부어라 마셔라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 술을 온전히 잘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마시는 걸 좋아해.


그래서 질문으로 돌아가면, 가족이랑 있을 땐 와인. 가족들이랑 와인 먹는다고 하면 뭔가 고급진 느낌일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와인이 엄청 저렴해서 한국 소맥 같은 거니까.


...아,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은 김렛.


...그리고, 요즘에는 위스키를 좋아하고.


따: 아니, 하나 뽑아달라고요.


아: 왜 하나만 뽑으라는 거야. 술에 관해선 박애주의자가 되고 싶답니다^^


둘 다 개고생 한 촬영날 막바지에 찍힌 
3시간 후 술집




나만의 스타일 아는 패피

내면을 보이는 것도 용기 내는 중

따: 아, 선생님 패션에도 일가견 있으신데..

아: (머쓱해한다) 큼큼.. 저도.. 제가 저만의 스타일이 딱 있다는 건 알아요. 그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중고등학교 때부터. 근데 워낙 그런 거 보는 걸 좋아해요. 패션 관련한 정보들. 사실 그거에 비해서 쇼핑은 잘 안 하고. 스파브랜드도 정말 잘 입슴다. 비싼 거나 명품엔 그렇게까지 관심 있는 편은 아니에요.


보통 패션에 관심 있다고 하면,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 있어요?" 질문하고, 그럼 패피들은 딱 취향을 드러내는 브랜드 하나 얘기하잖아. 난 그런 건 없고, 그냥 내가 나한테 잘 어울리는 게 뭔지 조금 더 일찍부터 알았던 것 같아. 어떤 걸 고를지 아니까 그냥 길거리에서도 살 수 있어.


사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 내가 옷 입고 가면 주변에서 너 그거 어디서 샀어? 어디 거야? 이런 걸 꾸준히 들어왔어서. 내 스타일이라는 게 있구나- 싶었지. (올~~~~)


그 영향은 사실 엄마가 되게 커. 엄마랑 나랑 스타일이 되게 비슷하고, 피드백을 진짜 가감 없이 하거든. 서로 최고의 쇼핑메이트인데, 어울리지 않으면 안 어울린다고 칼같이 말해줌. 실제로 옷도 셰어 많이 하고. 음악도 그래. 나 LP 모으는 거 좋아하는 것도, 사실 엄마가 LP 모으는 거 좋아했어.


그리고 알고 보니까, 엄마가 내 나이였을 때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흡수했던 사람이더라고. 콘서트도 열심히 다니고. 그니까 그냥 지금의 나랑 비슷한 거야. 노는 걸 좋아했던 사람. 내가 “엄마도 잘 놀았구나?” 맨날 그러는데, 그런 걸 내가 되게 많이 받은 거 아닌가 싶어. 집에 엘피가 막 쌓여있으니까 ‘어, 나도 저런 걸로 들어볼까’했던 거고. 그래서 구해오면 엄마랑 같이 공유하고. 여전히 그렇게 같이 부모님이랑 얘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좋아요.


생각해 보니 가족 때문에 '떠도는 삶'이라는 환경을 떠안아야 했지만, 또 그 안에서 가장 의지가 되기도 했네.


어렸을 땐 친구가 너무 너무 중요하잖아. 근데 항상 두려움을 무릅쓰고 친구를 열심히 만들어놓으면, 난 다시 옮겨져. 그럼 다시 시작. ‘여기서 얘네랑 어떻게 하지?’, ‘누구랑 점심 먹지?’. 그리고 그때 항상 원망스러웠던 건, 집에선 막 징징대면 들어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이 학교에 얘기를 해준다거나, 그런 조치를 안 취해주고 너무 방목했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거든. 처음 외국 갔을 때. 유치원 다니다가 말레이시아 가서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나 그땐 영어도 못 했거든. 근데 부모님이 그냥 집어넣었어.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첫날, 첫날. 교실에 들어가서. 처음 보는 엄청나게 많은 인종, 형형색색의 눈, 그 앞에 서서 소개를 해야 했던 순간. 그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선생님 따라가면서 교실 바닥을 보잖아. 그 바닥 프린트 모양이 생각나. 그때, 교장 선생님이랑 아빠랑 막 얘기도 했거든. 근데 둘이 얘기하더니 아빠가 날 던져놓고 갔어. 그때 엄청 막막했던 기억이 여전히 있거든.


뭐… 좋게 돌이켜보자면 그렇게 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빠르게 모든 걸 배웠다. 영어와 사교 능력. 생존 본능 같은 게 엄청 크게 발현됐던 때였던 것 같아.


따: 그치만 어린 아이한테 할 짓은 아니댜!!! (무례해서 죄송합니댜! 어머님 아버님!)


아: 그치. 나중에 얘기하니까 아빠는 그러더라고. 그때 얘기했을 때 교장선생님이 “얘는 괜찮을 거다“ 했대. 그래서 나 넣어놓고 뒤에서 봤대. 근데 잘 지내더래. 그래서 안심하고 갔대.


근데 그걸 겪으면서 진짜 확 커진 거 같긴 해. ‘어떤 환경에 놓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 물론, 매번 힘들다. 적응하는 것 자체에는 적응되지 않는다. 내가 의연해지는 마음을 키우는 것뿐. 그렇게 해서 지금이 된 것 같네요.


근데 정말 추천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야. 다른 사람이 봤을 땐 엄청 좋은 삶일 수 있잖아. 다양한 해외를 경험하면서 공부하는 삶. 근데 누군가에게 경험해 보라고 할 건 아닌 거 같아. 정말 많은 스스로와의 싸움과 노력과… 다져짐이 필요하다. 주변에서 그런 질문 많이 받거든. '해외 나가 살면서 교육하는 거 어떠냐'고. 난 섣불리 그러라고 말 못 해. 물론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는 해볼만한 경험이지만. 어릴 때 그런 불안정한 환경은 어쩔 수 없이 삶에 엄청 크게 남는 거 같아. 난 다행히 구멍 없이 잘 컸지.


따: 고생 많았다 진짜. 굳건했다 어린 아인이! 그 생존력이 너의 기백인 걸까?


따: 꽤 많이 차지하지 않을까, 거기에서 온 나의 성격이? 타고 난 거랑 섞인 거 같아. 어렸을 때는 마냥 밝은 게 나의 디폴트인 줄 알았는데, 커갈수록 '내가 그렇게 살아야만 했어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성장 과정에서의 그런 경험들. 내가 나를 스스로 다지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


물론, 살아가는 데에 주변의 도움도 필요하고, 너무 고맙고 좋지만, 너무 도움이 되지만, 사실 궁극적으로 돌파하고 적응해나가야 하는 건 ‘나’잖아. 어쨌든 결국 이걸 이겨내야 하는 건 나란 말이야. 그런 이치를 너무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고. 그러니까 나를 다지는 과정이 없으면, 내가 거기서 중심을 잘 잡고 크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던 거 같아.


따: …이런 말 어찌 들릴진 모르지만.. 그래서 너는 의지를 잘 안 하려는 것 같기도 해.


아: 사실 맞아. 의지가 의존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  물론 제가 기백이 좋은 건 진짜 큰 장점인데, 스스로도 마음을 내서 의지를 잘 안 하는 게 느껴집니다. 근데 클수록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느끼니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죠. 그래서! 나 요즘은 징징도 대고 그러잖아. 노력합니다. 그리고 나는 물어보면 대답은 해, 솔직하게. 강한 척만 하는 타입은 아니야.


나도 내 얘기하고 싶긴 하지. 근데 내 대화의 매커니즘에 내 얘기하는 게 잘 없는 거야. 누군가 내 약한 부분에 들어오려고 하면,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화제 돌리는 것도 잘하고. 하지만 오늘 선생님한테는 다 해드릴 수 있다. 내밀한 모든 것 다 얘기해 드릴 수 있다. 많이 물어봐달라.


따: 의지 해 버릇하는 것도 근육 같아. 나도 전에는 의지하면 뭔가 나를 잃는 거 같아서 절대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아. 거기에 '주체성'이라는 그럴듯한 이름도 붙여서 결국 나를 지키는 멋진 거라고 생각했고.


아: 맞아. 어렸을 땐 더 했어. 의지를 애초에 안 하려고. 늘 ‘누가 뭐 도와줄게’ 해도 그냥 다 내가 한다고 했어. 별것도 아닌 거라, 그냥 받아도 되는 것들까지도. 하다 못해 뭐 옮길 때 누가 도와준다고 해도 괜찮다고 하고. 그냥, 저 사람이 귀찮으면 어쩌지? 부담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되게 크니까.


그리고 '좋은 얘기만 해야지'라는 생각도 컸어. 그런 게 내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근데 점점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 어렸을 땐 몰랐는데, 커선 그런 얘기 들었어. '벽이 있는 거 같다. 다가가기 어렵다.' 난 밝게 잘 지내니까, 처음엔 그런 말이 억울하고 속상했는데, 갈수록 사람들이 말하는 게 내 어떤 면인지 알겠다 싶어. 사실 나도 마음 편하게 의지하고 싶을 때도 있다는 생각도 요즘은 들어.


그러니까 좀 집요하게 절 파고들어주세요. 전 절대 내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막 다가오면 ‘얘가 왜 이러지?’ 하지 않기 때문에.


따: 각.오.해~!



각 오 해~!




기백도 꾸준히 채우는 것

따: 네가 마음을 여는 것과는 별개로, 어쨌든 외향적이고 쾌활한 건 너의 고유한 매력이고 변치 않을 점이잖아.

따: 그런 너도 아무도 만나기 싫을 때가 있어?


아: 나한테 되게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예요. 물론 외향적이고 사람한테 힘 얻는 거, 다 맞는데, 그 에너지를 내가 비축할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 그리고 혼자서 정리해 볼 시간이 꼭 필요해요. 혼자 있는 순간을 늘 필요로 함.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


그래서 혼자 잘 다니는 편이에요.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거 좋아하고, 혼자 책 읽는 거. 그런 시간 갖는 거 되게 좋아합니다. 카페라도 걸어갔다 온다거나. 혼자 등산(ㅋㅋㅋㅋ각주_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시간이 출근 전 시간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아인은 요즘 아침에 혼자 등산을 간다.. 현대인 화이팅)을 간다거나 그런 것들. 그런 시간이 나한테 너무 필요하더라고.


따: 오호. 진짜 생각 정리가 절실한 순간이 오면 뭐 해?


아: 그때는 혼자만의 공간을 딱 만들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과 분위기를 만들고. 정해져 있진 않지만 그런 TPO를 확보하려고 하는 거 같아.


따: 일기나 메모도 써?


아: 매일 같이 쓰는 건 아니고, 연말 지날 때, 내 생일 때, 이럴 때는 항상 써. 자주는 아니지만 오래 했어. 중학교 때부터. 그땐 더 자주 썼지, 속마음 털어놓을 데가 필요하니까. 쓰고 나면 정리가 되니까. 그리고, 메모 같은 거는 책 읽으면 기억에 남는 문장을 쫙 써놔요. 그런 거 정리해 놓는 것도 좋아하고. 폴더가 따로 있어. 책을 처음 읽을 때 만들어놔. 그때그때 나한테 와닿았던 문장이 다르니까.


따: 대체 그걸 언제 다 하죠? 이런 헤르미온느 같으니.







언니는 온 피부로 즐겼다 후회 그런 거 없다

따: 서른이 되는 기분은?

아: 현 정권 나이로 서른 아닌데여?


따: ㅋㅋㅋㅋㅋㅋ(그니까 나 이거 왜 했냐고ㅎ)


아: 사실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은데, 그런 기대는 있지. 30대에는 좀 더 나를 잘 알고, 좀 더 같은 경험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커서 전 좋아요. 주변에 ‘어머 너 30대야, 어떡해ㅠㅠ’ 호들갑 떠는 사람 많거든요. 특히 엄마^^..


그냥… 40대 되기 전에 뒤돌아봤을 때, 30대를 지난 내가 좀 잘 커있었으면 좋겠어



따: 20대는 어떻게 흘러간 것 같아?

아: 되게 컬러풀했다. 다사다난했던 거 같아. 다들 비슷했겠지? 아주 다양한 일들이, 엄청 많이 일어났어.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새로운 걸 다 흡수하려고, 정말 모든 감각이 다 열려있는 상태로 경험한 느낌이야. 그래서 진짜 휘황찬란한 느낌이 크고, 치열하고, 후회 없어요. 늘 그랬어요. 대학 때도 그렇고, 대학원 때도 그렇고, 사회 나와서도 그렇고. 그냥 그 순간의 내가 온전히 있으려고 해. 그리고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일에서든 학업에서든. 놀 때든. 후회 없습니다.


좋았어요. 사실 20대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재밌었어. 이렇게 굳이 시기로 나눈다면 보내기 아쉬운 느낌도 있지. 걱정 없이 온전히 즐기면서 그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물론 30대는 더 즐거울 거지만~~~!!! (갑자기 철없는 이모처럼 말함) 20대는 아무래도 처음 알아가는 게 훨씬 많고, 그때마다 내 걸로 만들려고 엄청 애쓰니까. 그 순간에 쓸 수 있는 에너지도 넘쳤고. 30대의 나에게도 그럴 만한 에너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


(퍼뜩) 그리고 열심히 잘 놀기도 했어. 그거 나한테 되게 중요하거든? 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는 게 나한텐 엄청 중요해. 놀 땐 진짜 열심히 놀았어. 30대도 그럴 수 있기를.



30대에도 열심히 놀 거예욧!




두려운 시절에도 반짝이는 순간과 사람을 캐치한 맑은 눈

따: 어린 시절은 어땠어?

아: 난 20대가 훨씬 재밌었어. 10대는 훨씬 힘들었어. 더 한 치 앞도 모르겠고. 사춘기도 겹치고. 여기저기 살면서 더 그랬던 거 같아.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인데, 어린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비해 훨씬 많은 경험이나 정보량을 받아들여야 했으니까. 매번 소화할 시간 없었고, 그러다 보니까 늘 버거움이 컸던 거 같은 느낌이야. 버거웠던 거 같아.


그리고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손길이 더 많이 필요하잖아. 근데 그런 시기에 나는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더 버거웠나 싶기도 해.


BUT! 그런 10대가 없었으면 이렇게 즐겁게 20대를 즐길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 10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게 진짜 크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10대의 나는 미워할 수 없는 막내 같은 느낌이야. 만약에 10대의 나를 지금의 내가 본다면, '아가야,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없다. 걱정 안 해도 돼. 다 돼, 다 돼.' 얘기해주고 싶어. 그런 애틋함이 있는 시기야.


따: 그렇게 스스로 분리해서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게, 네가 그 힘들었던 기억을 대강 덮어두지 않고 열심히 소화하며 받아들였다고 느껴져.


아: 그러네. 그때의 나를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많이 단단해진 거 같아. 되게 잘 아물게 한 거 같아. 어머 제가 나이를 먹었네요 (눈썹 찡긋)


따:  그렇게 힘든 시기조차 잘 아물게 할 수 있었던, 단단한 너의 코어엔 뭐가 있었을까?


아: 어쩔 수 없이 가장 큰 코어는 가족이었던 것 같고.

아, 그리고 자기 확신을 느꼈던 순간들. 크면서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어. 소소하게는 학교에서 상을 탔을 때일 수도 있고. 친구랑 헤어졌는데, 다음에 다른 나라에서 우연히 그 친구랑 재회할 때. 혼란스럽고 어려운 와중에, 그래도 내가 가고 있는 스텝들이 틀린 길은 아니구나. 잘 가고 있구나. 증명받는 순간들이 잘 쌓여서 그런 거 같기도 해. 내가 그런 걸 잘 얘기하고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있었고.


그런 측면에서, 난 인복이 되게 많다고 느껴. 인생에서 늘 힘들거나, 고민이 많거나, 어쨌든 도움이 필요할 때, 늘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수 있을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었어. 어릴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었고…


이게 진짜 희한해. 그냥 학교에서 만나서 수업하거나 내 담임이라서가 아니었어.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 사람이랑 한번 관계를 맺으면 학교 밖에서도 계속 이어졌거든. 그런 경험들이 있었고. 좋은 선생님들이 있었던 게 큰 거 같아. 지금까지 연락하는 선생님들도 있거든.


아! 엊그저께도. 나 학부 때 지도 교수님이 영국분인데, 처음 그분 만났을 땐 좀 무서웠거든. 사람이 풍채도 이만하고, 생긴 것도 우락부락하시고, 심지어 학과장이셨어. 그래서 좀 무서워했는데, 나 졸업논문 작성할 때 담당 교수님이 된 거야. 엄청 긴장했는데 막상 이야기 나누니까 그 교수님이랑 되게 잘 맞았어. 학업적으로도 같이 친구처럼 얘기할 수 있었고. 내가 공부를 즐겁게 한 것도 그분 덕도 커. 내가 배우고 관심 가는 걸 막 얘기할 기회가 잘 없는데, 그분이랑은 그게 됐어. 근데 그분도 나를 각별히 생각하셨는지, 졸업할 때 둘이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그 이후로 안부를 계속 주고받아. 자기 딸이 이렇고 아들이 이렇고- 이런 얘기도 하시고. 2019년에 그분이 한국 와서 막 2,3차까지 술 마시고 놀고, 진짜 친구 같다고 느꼈어. 근데 어제 크리스마스라고 연락이 온 거야. 또 한국 올 거 같으니까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지'라는 생각이 확 들면서 엄청 감사해졌어. 덕분에 내가 이렇게 클 수 있었지. 그런 분들이 꽤 있거든. 신기해. 인복이 있다고 생각해.


따: 네가 사람의 좋은 면을 잘 보고, 순간의 환희를 잘 캐치하고 기억하는 사람이라 그런 거 같아.


아: 어머, 진짜 그렇네.



내 주변에 인복 많다는 사람은 다 자그가 좋은 사람이더라~




권아인은 포기하디 않디

따: 10,20대 때 부러웠던 사람도 있어?

아: 두 가지 부류 같아. 하나는 나 주변에 중학교 때 친구 중에 집안이 엄청 잘 사는 친구가 있었거든. 부모님 변호삭 막 이래서 되게 풍요로워. 나랑 학업적으로 관심사가 비슷했어. 미디어 저널리즘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 친구에게 주어지는 기회의 스케일 자체가 다른 거야. 대학 때, 나도 정말 과분한 교육을 받긴 했지만, 그 이후로 석사를 하고 싶다고 고민을 할 때, 석사는 무조건 미국 가라고 했는데,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사실 돈이었단 말이야. 그 친구 너무 당연하게 콜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 좋은 대학의 석사를 하면서 혼자 엄청 좋은 집에 사는 거야. 이 사람에게는 이게 너무 당연하게.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장벽 없이 선택하면서 살 수 있는 거야. 지금은 미국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거든. 엄마가 엄청 영향력 있는 변호사였어. 그런 거 보면... 가닿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있던 것 같고


다른 부류는. 캐나다에 사는 친구. 그 친구의 인문학적인 소양이랄까. 그 깊이. 대중문화나 나한테 문화적인 영향을 엄청 많이 준 친구거든. 어떻게 저 친구는 저렇게, 너무 똘똘하고, 절대 차별이나 차별이 되는 발언이나 상황에 놓여있을 때, 너무나 명료하게 자기가 아는 근거를 대입해서 말하는 거야. 그게 멋있어 보이는 거야. 농담도 똑똑해. 심지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보는데, 지금도 너무 멋있다. 저런 거 닮고 싶다. 그 친구 고등학교 때 혼자 살았거든. 독립과 주체의 아이콘. 애는 어떻게 이렇게 혼자 살면서 저렇게까지 대단할 수 있지. 내가 그 친구 때매 영화를 진자 많이 보고 그 친구랑 영화 분석하고 이런 걸 엄청 많이 했는데. 그때가 미 걔한테는 리스트가 있었던 거야. 책도 막. 근데 나한테는 너무 문화적인 충격이었던 거야. 지금도 그러거든. 늘 연락할 때 항상 뭔가 추천해 주거든. 이런 거 항상 해. 그런 지식을 받아들이는 거에 있어서 너무나도 열려있고, 그걸 자기 걸로 너무 소화를 잘하고 체화를 잘 시켜.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 근데 또 잘난 척하는 거 같지도 않아.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느낌. 나의 지적 허영심을 건드리는 친구다.



따: 20대 때 너에게 가장 큰 결핍은 뭐였던 거 같아?
아: 의지할만한 사람이 있길 바랐던 거 같아. 근데 그건 내가 의지를 못한 거 같긴 해. 그런 친구들한테 의지할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나를 그렇게 놓지는 못한 거. 약간의 외로움을 늘 갖고 있었던 게 가장 큰 결핍이었던 거 같아. 사실 대학교, 대학원은 가족들이랑 떨어져 살았으니까. 떨어져 지내는 상태에서는 얘기를 해도 해소되지 않는 게 있었을 거야. 그래서 더, 궁극적인 외로움은 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좀 빨리 깨달았던 거 같아.


따: 지금은 어때? 앞으로는 그 결핍을 어떻게 채우면서 살아갈까?


아: 노력하는 거 같아. '어쩔 수 없어. 이 궁극적인 외로움은 아무도 못 해결해 줘'하고 말았으면 변하는 게 없었을 텐데. '그래도 주변에 의지할만한 사람들이 필요하구나' 받아들이면서 좀 더 스스로 많이 열린 거 같아. 여전히 내가 보기에는 가장 큰 결핍이지만, 그래도 대학 때처럼 마냥 비관적으로 마음을 닫아두지는 않은 상태다. 그땐 진짜 이렇게 꽁꽁 닫아놨거든, 철문을, 자물쇠를 막 몇 개를 채워. 근데 지금은 열어두고 있다. 나로서는 정말 큰 발전이다.



따: 20대 살아보고 나니 넌 어떤 사람인 것 같아? 스무 살 때랑 지금이랑 달라졌어?

아: 일단, 사실 잘 컸다고 생각하고요. 20대를 겪고 보니 나는 참… 뭐랄까 그 순간에 몰입을 잘하는 사람. 매 순간에 몰입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되게 많이 깨달았다.


그리고! 잘 놀아야 잘 일한다. 나한테는 이게 너무 중요한 부분이더라고. 매일 공부만 해야 되는 친구들도 있었거든. 근데 나는 그러면 진짜..(절레절레) 그런 식의 공과 사를 잘 맺고 끊고가 되게 중요하고, 또 잘 돼 있는 사람이구나. 지켜야 하는 개인의 반경을 잘 만들어놨다고 생각해. 그래서 예를 들면 회사와 어떤 결정을 할 때도, 내 입장에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면 바로 건강하지 않다고 인지하고, '더 양보해줘야 하나?' 하는 검열을 심하게 하지 않는 편이야. 변화시키려고 결단을 내려버려.


다 나를 지키려고 하는 거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ㅋㅋㅋㅋ






유쾌하지만 깊게 고민하며 -ING

따: 요즘 최대 고민은?

아: 아무래도 커리어. 그냥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 어떤 일에 적합한 사람인가. 어떤 일에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가.  결국  나는 어느 조직에 가야 하는가. 요즘만큼 고민이 된 적도 없고, 마음이 너무 힘들기도 했고. 진짜 고민이 너무x3 많이 돼. 나는 일을 할 때 자기효용감과 동기부여가 엄청 중요한 사람인데... 또 그걸 매번 일에서 찾을 수 있는 걸까? 요즘은 그런 고민도 많이 들어.


몇 년 뒤의 나를 상상해 봤을 때, 지금의 내가 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가. 어떻게 해야 내가 몇 년 뒤에 원하는 모습이 될까. 그런 고민들을 엄청 하고 있어요. 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답을 내고 엄청 노력하고 있고.



여~ 권사장 고민 많지? 같이 잘~ 헤쳐나가 봅시다




따: 20대의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아: 20대 초반은 영국의 기숙사. 거기가 나의 삶을 축약해서 보여줄 수 있는 곳 같은 느낌이야. 20대 중반은 암스테르담이지. 거기는 내가 처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도시니까. 그래서 간 거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특별하지. 20대 후반의 나는 진짜 을지로 작업실이 크다. 거기가 뭔가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이 확실히 있고.



따: 10,20대 중 돌아가서 다시 살고 싶은 하루. 눈 딱 떴을 때 그날 아침인 하루가 있다면?
아: 대학교 3학년 여름. 6월 중순인가 7월인가. 그때 학교 다 마치고 졸업식만 남고 3일 연짱 축제를 하는 기간이 있었어. 그때 너무 재밌었어. 그, 그냥! 막!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환희를 받아들이고 즐거움을 외쳤던 순간은... 돌이켜보면 그때 밖에 없었던 거 같거든. 별 걱정 근심 크게 없이 200%로 놀았던 게 대학 때였어. 그건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 그 온몸과 마음 구석구석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그 느낌. 기대로만 가득 찬 하루.



따: 10,20대 중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하루. 눈 딱 떴을 때 그날 아침인 하루가 있다면?

아: 없어. 돌아가도 똑같아. 지금이 중요해.



맑눈광으로 달려가자 각오해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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