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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면 그냥 좋은 거지

by 나날

최근에 중요한 사실을 하나 알아냈다. 내 내면이 걸음마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 내용은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20-30대 내내, 어쩌면 태어난 순간부터 찾아 헤맨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아이를 낳고 키우며, 20-30대 내내,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허전하고 어려웠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최근에 아이의 친구 집에 초대받아서 다녀왔다.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함께 초대받아간 우리는 모두 감탄했다. 깔끔하고, 세련되고, 구석구석 통일된 인테리어 소품들이 감각적이었다.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정신없이 사진에 담아도, 잡지에 나올 법한 장면으로 찍혔다. 공간이 좋으니, 우리는 모두 그곳에서 재미있게 잘 쉬다 왔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마치 호텔에 머물다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공간의 차이가 컸다. 만약 내가 평소 우리 집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흔들렸을지 모르겠다. 이때, 부러운 것과 흔들리는 것은 다르다.


부럽지.

깔끔하고 세련되고 감각적인 공간을 나도 가지고 싶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마련해 온 내 공간도 좋다. 그래서 이번에 내 뿌리가 흔들리는 어지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서, 내가 사랑하는 내 공간에 앉아 숨 고르기를 하는 순간이 나는 좋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찾아온 ‘바로 그 생각’을 만났다.



"나 자신이 좋으면, 되는 거구나.

나의 아이들도 자기 자신이 좋으면 되겠구나.

내가 아이들을 존재 자체로 좋아해 주면 되겠구나. 어떤 조건도 없이.. "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부러울 게 어디 집뿐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부러울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나는 내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좋아하면 좋겠다. 누군가의 무언가가 부럽더라도, 자기 자신의 존재를 좋아하는 힘으로 안정감을 다시 찾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없는 엄마라는 건 아니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이 이것도 잘했으면 좋겠고, 저것도 잘했으면 좋겠는 보통의 엄마다. 이런 인간적인 욕구나 욕망을 제거해 낼 대단함은 나에게 없다. 오히려 나는 나에게 그런 기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쪽을 계속해서 택해나갈 예정이다. 다만.. 이런 나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볼 노력은 계속 해나갈 참이다.


"엄마가 너희에게 바라는 게 있지만(많지만), 너희가 그런 사람이 아니어도 엄마는 너희를 사랑해. 진짜 진짜 좋아해. 엄마도 엄마가 바라는 모든 걸 해내지는 못해. 바람이 그렇다는 거지..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해도, 엄마는 엄마 자신이 좋거든. 엄마는 너희도 그냥 좋아."



그런데 반전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굳이 안 하더라도,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귀신같이 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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