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할래

이제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다

by 홍시

문득 '나, 잘 살고 있는 건가?'라는 물음이 내 안에서 차올랐다.


잘 살고 있었다. 잘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성실히 살아냈다. 남들 보기에도 잘 살고 있었다. 잘 살고 있다는 것에 의구심이 끼어들 수 없었다. ‘잘 산 다는 게 뭐니?’라고 물어본다면. 공부 잘하고, 대학교에 가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더 나아가 워킹맘이 되어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그런 현실. 이 정도면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구나'라고 말하기에 부끄럽진 않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나의 삶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마흔 즈음에 다다르며 '잘 살지 못하는 것 같아'라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거짓 마음은 언젠가는 탄로가 나는 법. 남에게 한 거짓말보다 나에게 지은 거짓말은 마음과 몸에 새겨져 어떤 식으로든 나타난다. 마흔을 앞두고, 이유도 모른 채 자꾸 마음이 아파왔다. 직장 동료와 밥을 먹다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설거지를 하는 그 순간에도 마음 안에서는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며 재촉였다. 하지만 이대로 안 된다고 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거기까진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용기가 없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고민은 다들 하는 거 아닌가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또 나의 마음을 모른 척하며 하루를 보냈다.


마음을 속이는 하루가 쌓일수록 이번에는 몸에서 아우성이다. 툭하면 감기몸살로 머리가 아팠고, 두통이 잦았다. 몸의 통증에 짜증 나는 일상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진통제를 삼키며 그 순간을 지났다. 이번에는 허리 아래 엉치뼈가 걸을 때마다 아프다.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아픔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람들은 이런 통증을 이야기하면 “나이 들어 그래~”라며 병원을 추천한다. 병원도 가보았지만 딱히 병명은 없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본다.


솔직한 마음은 두려웠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이 들어 방황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하루가 소리 없는 고통이었다. 마흔을 맞는 생일날 아침, 남편은 나의 취향을 고려해서 아들 둘과 함께 손수 만든 미역국과 생선구이, 샐러드로 풍성한 식탁을 차린다. 그 앞에서 행복하게 웃어 보여야 한다. 이 그림에서 울상을 한 엄마는 어울리지 않는다. 불을 끄고 생일 케잌의 촛불을 끄면서 이벤트는 끝났다. 조촐하지만 함께 하는 가족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생일상은 돈으로 준비한 선물보다 훌륭했다. 분명 훌륭했고, 나는 행복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속의 '나'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할래


마흔의 생일을 핑계로 나에게 '선물'을 하면 마음이 좀 달래 질까 싶어 한동안 고민했다. 여행을 할까, 옷을 살까 신발을 살까 그러다가 머릿속에 불현듯 '나를 위한 시간'이 떠올랐다. 집을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 단지 아내, 며느리, 엄마, 직장인이라는 역할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흔이 되어서야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뒤로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낭떠러지에 간신히 서 있는 사람처럼 절실했다. 절실함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그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만나야 했고, 나를 규정했던 것들을 의심해야 했고, 새로운 나를 맞이하기 위해 낯섦도 경험한다. 그 여정에서 한 뼘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