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는 삶

죽음을 상상하다

by 홍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아이는 어머니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요?”라고 묻는다. 어머니는 “그런 거(죽으면) 말하는 거 아니야!”라며 제대로 된 답이 아니라 핀잔만 줄 뿐이다. 그때부터 죽음이란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가 된다.


우린 언제쯤 죽음을 자신의 일로 떠올릴 수 있을까? 병상에 누워있는 83세 어르신은 죽음을 상상할까! 아님, 아직도 못 다 이룬 인생을 상상할까!


성장기의 10대, 20대는 죽음을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키를 재며 어디까지 자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자랄 수 있을까를 고민할 뿐이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이 죽음을 맞이할 때 어렴풋하게나마 죽는다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이 슬픈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


60세 이상의 어르신이 대부분인 시골 마을에서 80세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았다. 매일 집 안 문턱을 넘나들던 옆집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조용히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7세이고, 여성은 그보다 높은 85.7세라고 한다.


우리의 존재는 탄생에서 시작한다. 어머니의 따스하고 안전했던 자궁의 품을 어렵사리 나와 우렁찬 울음으로 존재를 알린다. 그때부터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성장의 한 단계 한 단계를 밟는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진리이다.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 밖으로는 쉽게 꺼내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치를 떤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더 공포스럽다. 만약 죽는다는 것이 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의 생은 어떨까!


죽었다, 뭘 후회하는 거지?


나는 (시체를 보관하는) 관속에 누워있다. 162cm의 대한민국 보통 여성의 몸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딱 그만큼의 공간이다. 목재로 되어 있어 두드리면 '둥, 둥~'하며 굵고 낮은 공명음이 들린다. 움직일 수 있는 여분의 틈은 없다. 빛도 없다. 눈을 감아서 깜깜했다. 눈을 떴어도 어둠 외에는 다른 것은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쏜살같이 흘렀다. 모든 것이 추억이었다. 한 장면은 계속 이어진다. 남편과 아이들과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바닷가에서 소라 하나를 주워 자랑한다. "엄마! 이거 귀에다 대봐~ 파도 소리가 나" 아이의 눈에 내가 비췄고, 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뒤이어 후회되는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돈 좀 많이 벌어볼걸’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유명해져 볼걸’

‘커다란 수영장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살아볼걸'

‘세계여행도 해보는 건데...’


이러한 막연한 소망과는 전혀 다른 후회였다. 그토록 갈망했던 돈과 명예, 성공하지 못한 삶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었다. 갸우뚱했다. ‘난 지금 뭘 후회하는 거지?’ 묻고 있었다. 그 순간, 나를 스쳤던 사람들이 떠오르며 그들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할걸’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걸’


후회의 감정이 실감 나게 내 몸을 지배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뺨을 타고 흐른다.

한참을 그렇게 후회의 감정과 마주하고, 상상에서 깨어나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휴~ '죽지 않았다, 살아있다' 코에서 숨이 쉬어지고, 신체를 움직일 수 있음이 신기하고 감탄스러웠다.


죽음을 상상하고, 다시 살아났다. 죽었다 다시 살아난 기분이 이런 걸까! 세상은 변한 것이 없지만, 나의 마음은 한바탕 요동친 후였다.


지금 당장 말할래, 고마워요~


지금 당장, 달려간다. 어제 집 안에 우렁이 각시처럼 몰래 고추와 가지를 놓고 가셨던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또 미루었을 일이다. 언젠가 만나면 그때 말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 '언젠가!'는 아무 기약 없이 지나가는 무수한 날이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약속이 지켜진 적이 있던가! 그렇게 '언제, 언젠가!'를 남발하며 지낸 그 순간은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진다.


아주 사소하지만, 고맙다는 감정을 느낀 경험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을 고스란히 말로 전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고맙다'는 말이 쑥스러워서, 별스러워서,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흘려보냈다. 흘려보낸 수많은 순간들이 죽을 때 '후회'가 되어 눈물 흘리고 싶지 않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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