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음흉하게 만들었다
"그 엄마는 나한테 이런 것도 요구하는 거야, 너무 짜증 나."
"그랬겠다."
"최 선생님은 자기 것만 챙기고, 정말 미워."
"맞아, 맞아"
"나이 들어서 그런가 이제 유치원 교사 일은 못하겠어, 에구 힘들어."
"그렇지."
20대 사회 초년생으로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면서 친한 동료 교사와 대화를 나눈다. 그녀와 나는 일을 마치고 근처 홍대의 맛집을 찾아 뱃속을 채우며 자신의 힘든 점을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보통은 그녀가 푸념하면, 나는 맞장구를 치는 식이었다. "그랬겠다, 맞아, 그렇지" 요즘 식으로 말하면 공감의 언어일 수 있으나 이런 언어 패턴이 나도 모르게 반복되니 상대방은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뭘 알긴 아는 거야?'
그녀와 나는 같은 어린이집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했고, 그 마음이 신뢰가 되어 내가 자동적으로 발사하는 단어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린 서로를 신뢰하고 좋아했다. 매일 저녁이면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대학을 갓 입학하고 어리둥절 헤매고 있을 때 같은 학과에 입학한 동기들과 친해지려 애를 썼다. 비슷한 낯섦과 두려움은 그 공감대만으로 쉽게 서로를 '친구'라 믿게 만들었다. 옆자리, 뒷자리에 앉은 같은 학과 동기들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함께 동아리방을 순례하며 같은 동아리에 들어갔다. 소개팅을 함께 나가기도 하고, 수시로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
학교 근처 양 많고 싼 맛집들은 즐비했고,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누며 수다의 꽃을 피웠다. 수다의 주제는 매일 달랐고, 그만큼 대학생의 하루는 변화무쌍했다. 어느 날, 값은 싸고 질은 좋은 돈가스를 칼질하면서 문득, '나는 듣는 사람이고, 동기는 말하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았다. 주로 쉴 새 없이 떠드는 동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나는 주로 듣는 쪽이었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서 동기들은 조금씩 나를 멀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내 고민은 이렇게 말하는데, 왜 너는 말을 안 하니?'와 같은 속마음이 동기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 나의 고민을 말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내가 뱉은 말들은 동기들이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와 동아리 선배가 분명 썸 타는 것이 보이는데, 그런 이야기를 쏙 빼고 별 탈 없는 이야기만 해대니 '음흉하고, 중요한 말은 숨긴다'라고 여긴 것이다. 그때 당시 '썸'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다양한 썸이 존재했다. 그것을 모두 까발리는 재미에 동기들과 수다의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곳에서 난 핵심은 말하지 않고,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 줄줄 재미없게 한 것이다.
공부하고, 수업 듣고, 밥 먹은 시간들이 간신히 우리의 우정을 지켜주었는데, 가벼운 우정은 마치 얇은 유리창 같다. 작은 돌을 던져도 산산조각 난다. 동기 중 한 명이 동아리 선배와 사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 선배는 잘 생겼고, 옷을 잘 입었고, 유머러스했고, 귀티가 났다. 누구나가 좋아했다. 나도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좋아할 만한 배짱은 없으니 한창 술을 마시고, 장난처럼 그의 곁에서 손을 잡았다. 1998년 대학 교정은 술 먹고, 친한 사람과는 손 잡는 것은 장난으로 봐주었다.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선배와 사귀는 동기가 본 것이고,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다음 날 동기는 나를 보는 눈빛이 냉담하다 못해 소름 끼쳤다. 주변 동기들을 통해서 그와 그녀가 사귄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몰랐다'며 핑계 댈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핑계가 통할리 없다. 평소에는 선배에 대한 이야기도 안 했고, 그런 마음도 내색하지 않았던 내가 그런 행동을 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이제 갓 20살이었던 나는 나 자신에게 솔직한 게 뭔지 몰랐다. '나는 동기가 선배와 사귀는지 몰랐다'라고 합리화를 하며 동기가 받은 상처는 내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동기와 나는 어저쩡한 사이가 되어 주변을 맴돌았다. 동기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마디를 건네고 대학시절 내내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 한마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맞장구치고, 대꾸하고, 모두 아는 척했던 내가 꼴 보기 싫다는 말로 나는 해석했다. 그 한마디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가슴에 돌덩이처럼 무겁게 짓눌렀다. 동기와 좋은 관계가 되고 싶은 나의 두려움이 그렇게 표현된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동기의 이야기에 맞장구쳐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하는. 그저 난 동기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그래야만 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좋은 사람'은 모두 호응해주는 사람, 갈등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나의 태도는 친구와 싸우는 일을 한 번도 만들지 않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나'를 음흉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선호를 밝힘으로 인해 받을 지탄을 피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의식적 믿음.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 동기의 돌덩이 같은 말은 맞다. 잘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도 없었다. 싸움이 벌어지는 일을 극도로 피하고 싶은 나의 내면에는 어떤 마음이 자리한 것일까! 누군가에게 미움받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경험해본 적은 없으나 두려움의 크기는 내가 상상도 못 하게 크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가끔 내 생각과는 다른 말,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는 나를 본다. 그리고 그 사람과 좋은 관계로 유지하고 싶은 나의 욕망이 나를 음흉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