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파마를 했다
나이 마흔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단조로웠다. 거울 속의 얼굴은 갈색 점의 검버섯과 기미들이 적나라하게 노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능성 화장품을 구입한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괜스레 머리를 빗질하며 얼굴이 아닌 머리에 관심을 옮긴다. '파마나 한번 해볼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일명 매직 파마를 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다리미로 다리듯 쫙쫙 펴, 찰랑거리는 전지현급 찰랑 머리를 기대하며. 곱슬머리는 어릴 때부터 나를 따라다닌 트레이드 마크였다. 학생 때는 곱슬머리가 싫었다. 늘 부스스하고, 단정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비 오는 날이면 머리카락은 더욱 풍성해져 곱슬거리는 웨이브는 더욱 꼬불거렸다. 그 당시 예쁨의 기준은 '생머리'였다. 앞머리부터 어깨 아래로 떨어지는 찰랑거리는 곧은 머리카락은 청순함과 매력의 상징이었다.
서울에 있는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지만, 매직 파마를 하기 위해 이대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매직 파마를 시중가보다 아주 저렴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의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꽤 심하고, 머리 길이가 어깨를 넘는 긴 기장이었다. 매직 파마의 과정은 '지루함'이었다. 잡지를 봐도 도통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깜빡 잠이 들라치면 헤어디자이너가 "잠깐 고개 들게요"라며 단잠을 깨웠다. 그렇게 4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낯선 머리카락이 거울 속에 보였다. 이제 막 다리미질을 끝낸 머리카락은 곧아도 너무 곧았다. 너무 곧아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생머리니까!'
매직 파마는 20대의 주기적으로 치러야 하는 행사가 되었다. 머리카락은 자랐고, 자란 부분은 역시나 곱슬거린다. 4개월 간격으로 미용실을 찾아가야 했다. 고로 '지루함'도 매번 반복되었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아이를 낳고, 더 이상 그 '지루함'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다. 임신 때에는 파마약이 뱃속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출산 이후에는 역시나 젖을 먹이는데 혹시나 모유에 해가 될까 봐. 아이의 똥 싼 기저귀를 빨면서는 도저히 파마를 할 시간이 나지 않아 그렇게 미용실을 자연스럽게 멀리했다.
가끔 찾아가는 미용실은 머리 길이만 자르게 되었다. 파마보다는 비교적 짧은 시간이어서 지루함은 덜했다. 10년 동안 사진 속 나의 얼굴은 앞머리까지 뒤로 넘긴 '올백'스타일이었다. 음식 할 때, 청소할 때, 아이를 돌볼 때 머리카락은 꽤나 거추장스러웠다. 머리를 묶어버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집안에서도 이럴진대, 갑작스레 외출하더라도 머리를 어떻게 스타일해야 할지 고민의 여력이 없었다. 나를 제외한 아이들과 남편 챙기고 마지막 집안의 살림을 마무리하다 보면 머리 스타일링은 언감생심이었다.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 하나의 머리스타일을 고수하며 지내냐고 묻겠지만, 아이를 키워본 엄마라면 특히 독박 육아를 면치 못하는 엄마라면 '올백 스타일'은 학생들의 교복처럼 애 키우는 엄마들의 표준 머리 스타일링이 된다. 육아 돌봄의 손길에서 조금 멀어진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웬만한 것들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이제야 거울을 천천히 바라본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나를 빤히 쳐다볼 시간의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나에게 관심 두는 법을 잊어버렸다.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매만지는 나의 손길이 어색하다. 그러다가 얼굴 측면에 피어난 검버섯과 기미들을 마주한다.
'나이 들었구나' '마흔이구나'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중년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파마나 한번 해볼까?'로 이어졌다. 단조로운 일상에 파마는 나에게 잔잔한 물가에 던진 조약돌의 파문 정도는 될 것 같았다.
20대와 다른 점은 더 이상 '생머리'가 예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곱슬머리를 펴기 위해 했던 '매직 파마'가 아니라 곱슬머리를 잘 살려줄 '웨이브 파마'가 해보고 싶었다. 예쁨의 기준이란 것도 상대적인 것인지, 나이가 들어가며 곧게 펴진 생머리보다는 적당히 S자 곡선이 살려진 우아한 아름다움을 선호하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의 파마여서 어떤 파마를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머리를 쫙쫙 펴는 매직 파마 말고 웨이브 파마의 종류가 어찌나 많은지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했다.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유랑하기를 며칠. 그러면서 또 '파마하지 말까?'라며 귀찮음을 핑계로 낯선 세계로 향하고 싶은 호기심은 또 뒷걸음질 쳤다. 하지 못할 핑계는 많았다. '파마를 하려면 4시간은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 '파마를 하는 것보다 지금이 나을 거야.' '파마 비싼데, 돈 아껴야지.'
다시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쳐다본다. 딱히 예쁘다고 여긴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라면 다시 도전하고 싶었다. '파마가 뭐라고!' 이렇게 '도전'이란 말까지 들먹거려야 하는 건지. 내 주변 사람들은 몇 개월마다 머리 염색을 하고, 파마를 하고, 요리조리 다양한 스타일링을 하건만. 그게 나에게는 왜 이리도 어려운 일인 건지, 거울 앞에서 묻고 있었다.
나에게 '파마'는 10년 만의 낯선 행동이었고, 두려움은 나이의 숫자만큼 더욱 두터워졌다.
변신이 두려웠다. '남편이 안 어울린다고 말하면 어쩌지?' '이번 주에 친정 가야 하는데, 잘 어울릴까?' '요즘 수영장 다니면서 재미난 사람들과 사귀고 있는데, 안 예뻐 보이면 어쩌지?' 낯선 행동은 결과가 예측되지 않는다. 중년의 나는 예측되지 않은 미래를 이 작은 하나의 사건에도 두려워한다.
다시 마음속으로 외친다. '파마가 뭐라고!' 이렇게 한번 외친 후 미용실로 향한다. 미용실 문 앞에 도착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용실 문을 가까스로 열고, 작은 목소리로 "파마를 좀 해보려고요~"라고 말했다. 몇날 며칠을 정보검색하며 찾아두었던 '매직 세팅 파마'란 단어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여기만 살짝 웨이브요"라고 머리스타일을 설명하니 아주머니는 알았다는 듯 '오케이!!'사인을 보냈다.
파마는 시작되었다. 머리에 약을 도포하고 플라스틱 막대기에 머리카락을 적당히 잡아 동그랗게 만다. 1시간여를 기다리고 중화제를 바르고 머리를 감고, 10년 만이지만 여전히 파마의 과정은 '지루함'이다. 드디어 파마가 끝나고, 미용실의 거울을 바라본다. '으악~!' 이건 내가 그토록 바랬던 자연스러운 웨이브가 아니다. 뽀글뽀글 '나 지금 파마했어'라고 누가 봐도 알 것 같은 아줌마 파마다. '원하는 것도 제대로 말 못 하는 숙맥~'이라고 나에게 꾸짖는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이거 너무 꼬불거리는데요"라며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이자 "조금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라고 아주머니는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킨다. 정말일까! 며칠 지나면 괜찮을까. 의구심 가득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꼬불거리는 머리를 수습하기 위해 샴푸로 박박 감아본다. 보통 파마를 하면 하루나 이틀은 샴푸를 하지 말라고 한다. 파마가 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샴푸를 했다. 파마가 풀리기를 바라면서. 빗질을 계속하고 헤어로션을 듬뿍 바른다. 휴~ 이전보다 조금은 낫다.
드라이기를 이용해서 머리 스타일링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어울리는 스타일을 계속 만들어본다. 망한 파마 덕분에 스타일링하는 기술에 대한 공부를 집중적으로 했다. 어떻게 드라이를 하면 웨이브가 자연스러운지, 어떻게 드라이를 하면 곱슬기를 좀 사그라들 수 있게 할 수 있는지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다행히 머리스타일을 계속 만들다 보니 '뭐, 훨씬 사랑스러워 보이네~'하며 나도 모르게 으쓱대고 있다.
변화는 낯설다. 낯섦은 불안함을 함께 동반한다.
그동안 이런 불안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익숙한 머리스타일만 고수했다. 익숙한 동안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계속 그래 왔기에... 하지만 설렘이나 다른 경험을 할 수 없다. 불안함을 지나야 설렘이 찾아오는데 설렘보다는 늘 안정과 익숙함을 찾았다.
마흔이 지나 중년에 접어들며 안정과 익숙함이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인지 의심하게 된다.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서 일었고 그 작은 실천으로 머리스타일 한번 바꾸었을 뿐이다. 파마를 한번 해보니, 또 다른 것도 시도해볼 마음이 생긴다. 다음엔 마흔이 되는 동안 한 번도 입어보지 않았던 '치마'를 입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