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미련을 버렸다

냉동실을 비우며

by 홍시

한 친구가 직접 재배한 쌀로 떡을 만들었다며 한 봉지 갖다 주었다. 떡을 하나씩 맛만 본 후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남은 떡은 그대로 상온에 두면 상할까 봐 냉동실에 넣었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동안 냉동실에 꼭꼭 숨겨있던 떡의 존재는 이미 잊혔다. 사실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젊을 적에는 쫄깃한 식감과 포만감으로 떡을 좋아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소화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유독 백미로 만든 떡을 먹다 보면 가끔 체하기도 했다. 그 기억으로 떡은 즐기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떡은 그냥 그런 떡이 아니다. 시중에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제품화된 떡이라면 별 고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떡을 만드는 그 과정이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었다. 친구의 고생, 친구의 보람, 친구의 행복, 다양한 감정들이 떡에 새겨져 있는 듯했다.


그래서 버리지 못했다. 먹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재빨리 이웃과 나눠 먹었으면 마음의 부채도 없었을 터. 그러나 나눔도 품이 들고 노력이 든다. 그것을 해낼 만큼 부지런도 없다. 그래서 떡은 냉동실로 보내지곤 한다. 먹지 못한 채 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이다. 결국,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냉동실은 차곡차곡 먹지도 못할 음식들이 쌓여간다.




시아버지는 작은 배를 타고 작은 물고기와 낙지를 잡는다. 많은 양을 잡으면 팔아서 쏠쏠하게 현금을 챙기겠지만, 바닷속 생태계가 변한 건지 시아버지의 체력이 변한 건지, 물고기와 낙지 잡이도 변변찮다. 양이 얼마 되지 않으니 도매가로 팔기보다 가족들에게 보내며 생색을 내본다.


"홍시야~ 생선은 비닐봉지에 넣었으니 매운탕 하면 되고 낙지는 낙지볶음 해 먹어"라며 시어머니께서 택배를 보냈다고 전한다. 택배박스는 꽤나 큼직하다. 손이 큰 시부모님은 투명한 비닐봉지에 한 번 먹을만치 넣어 수십 개의 묶음을 보낸다. 그동안 "조금만 보내주세요~!"라며 간곡한 부탁(?)을 해봤지만 큰 손의 습관이 쉽게 작은 손이 될 리 없다.


14년간 며느리 생활을 하며 터득한 나름의 요령은 '빨리 나눠먹자'이다. 분명 우리 가족이 먹기에는 많은 양인 것을 터득했기에 해산물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빠른 시간 내에 나눠주는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은 나눴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우리 먹어야지'라며 호기롭게 또 냉동실로 보내지면 꼭 버려야 할 때가 온다. 해산물이고, 냉동실 문이 자주 여닫히면서 신선도도 떨어진다. 신선도가 떨어지면 생선을 요리할 때 비린내가 많이 나서 기분 좋게 먹기 어렵다. 그리고 더 큰 반전은 우리 가족은 해산물보다는 육고기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해산물을 싫어하지 않지만 해산물은 갓 잡아 신선할 때 먹는 게 가장 맛있다.


냉동실에 한번 다녀온 해산물은 다녀오지 않은 그것과 분명 그 맛의 차이가 크다. 정성스레 음식을 해놓고도 실망하기 일쑤다. 그런 기억이 몇 번 반복되자, 냉동실에 있는 해산물을 꺼내 요리하기를 자꾸 미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냉동실에 보관된 해산물은 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과 함께 오랜 시간 방치될 뿐이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가득 채워진 정체모를 음식물들로 어지럽다. 매일 모른 척 넘어갔지만 오늘만은 그냥 넘기지 않으려 한다. 잠시 "휴~"하고 큰 호흡을 한 번 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미련을 버리자!' 다시 먹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보관된 오랜 시간의 미련을 과감하게 버리자.


'친구가 얼마나 힘들게 이 떡을 만들었는데', '시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이 낙지를 잡았는데'. 이 떡을 버리면 난 나쁜 사람이야. 이 낙지를 버리면 난 나쁜 며느리지. 옛말에 이르기를 쌀 한 톨 버리는 게 아니랬는데.


과감히 나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냉동실을 활짝 열어젖히고, 차곡차곡 보관해두었던 '미련'을 과감히 정리했다. 냉동실의 떡과 낙지는 음식물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텅 비어버린 냉동실이 보인다. '후련하다'


며칠이 지나 텅 비어 있던 냉동실은 또 다른 미련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번에는 매일 먹고 싶었던 음식들로 말이다. 차돌박이도 좀 넣고, 삼겹살도 좀 사다 냉동실에 보관했다. 당장 먹지 못할 것 같아서다. 채워지는 음식들을 보며 또 '미련'을 만들고 있구나. 비우며 사는 일상을 바랬는데, 좀 더 가볍게 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있었는데, 그 욕망 틈새에 꼭 '미련'이란 놈이 소리없이 비집고 들어앉는다. 오늘도 냉동실의 '미련'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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