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알려야 했다.
노력을 한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으로, 가치 있는 사람으로, 귀중한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잘하는 사람으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위해서.
해야 한다.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나태함이며 게으름이며 쓸모없는 존재이다,라고 낙인찍힐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뇌를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 했다.
공부를 잘해서 우등생이 되어야 했고, 어린이집 교사보다는 대안교육이 좀 더 가치 있어 보였고,
돈을 좇는 삶보다는 가치를 쫓는 삶이 더 그럴듯하게 보여서 환경활동가를 자처했다.
밑바탕에는 '난 특별하다'라는 독불장군의 심보가 있다.
주어진 대로 인생행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당신과 나는 엄연히 다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혁명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노력은 한다.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전제가 깔린 행동이었다.
특별한 내가 되기 위한 여정은 고달팠다.
뭔가 바쁘고,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일하는 능력도 쌓아지는 듯했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이 공허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몰라, 다른 재미를 찾아다녔다.
동호회에 소속되어 다양한 관계의 즐거움을 쫓고, 멋진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이는 자유를 만끽했다.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흘러갔다.
평생 함께 할 것 같던, 그 순간엔 가족보다 진실했던 동호회 회원과의 만남은 2년을 넘지 못했다.
결국 사랑이라는 허울을 쓰고 만나는 남자 친구, 애인이 관계의 종착지가 되었다.
사랑을 허울이라 말하는 것은, 사랑이 뭔지 잘 몰라서다.
사랑에 대해 깊이 고민하려 하지 않았다.
내 이익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솔직할까!
내가 원하는 삶을 옆에서 잘 지지해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막연했다.
아니, 너무 빠르게 변화했다.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것.
아이를 낳고는 건강하게 키우는 것.
도시보다는 시골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좋을 것 같았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부터는
나의 역할이 아닌, 진짜 '나'를 찾겠다며 내면을 탐구하고, 내 앞에 놓인 길을 조금씩 걸어가는 중이다.
끝없이 '나'를 증명하기 위한 삶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여전히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이고, 딸이고, 며느리이고, 직장인이고 끝이 없다.
이런 역할과 직업이 아닌, '나'는 분명 있을 텐데.
그것을 보여줄 방법을 모르겠다.
아니, 왜 그것을 구태여 보여주려고 애쓰는 것일까?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결국 관계이다.
내가 혼자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사랑받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진실.
이제는 사랑받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쪽을 선택하고 싶다.
그 또한 쉽지만은 않다.
그동안의 습관 때문인지, 자꾸만 나도 모르게 사랑받으려 노력하는 나를 본다.
사랑을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몰라, 공부도 한다.
책에서 글로 배우는 공부, 하지만 현장에서의 부딪힘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시도해보고 싶은, 그래야 하는, 나의 여정이다.
이제는 관계 속으로 기꺼이 발을 들여놓으리라.
두려움은 두려운 대로 받아들이고,
유치함은 유치한 대로 받아들이고,
속상함은 속상 한대로 받아들이리다.
그렇게 사랑을 주는, 사랑을 하는 방법을 배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