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해 낯선 나를 만나다

고독한 시간에서 만난 글쓰기

by 홍시

살다 보면 가끔씩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고독한 감정과 마주한다. 하지만 고독을 온전히 마주하기는 어려운 시대다. 고독하지 않기 위해 연애를 하고, 소비를 하고, 먹고, 마시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페이스북, 유튜브를 보고, 카톡으로 심심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혼자'가 대세인 시대지만, 여전히 고독은 피하고 싶은 '적'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진다. 20대에는 '외향적'으로 살려고 애썼다. 애를 쓴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나의 세계는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만큼 확장되어갔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들은 나를 좀 더 가치 있는 인간으로 느끼게끔 만들기도 했다. 직장생활 외에도 수지침봉사단 활동, 풍물동아리, 그 외에도 비정기적인 만남들을 줄기차게 이어갔다.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신이 났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고, 다시 재취업을 하며 직장인이 되어 사람들과 어울려보지만 예전만큼 에너지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에너지를 빼앗기는 형편이었다. 직장생활 외에도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내가 원해서 이루어진 만남이지만 쉬이 피곤했다. 빼앗긴 에너지를 챙기지 않으면 일상생활조차 이어가기 힘들었다.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다.




고독한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려고 노력하는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이 다가올라 치면 친구를 부르거나, 바로 옆에 있는 가족들을 찾는다. 하지만 고독이란 감정 속에 놓여있으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그 누구도 날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 여기며 더욱 혼자 있기를 원한다. 결국 이 세상에는 날 진정으로 이해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듯. 자발적 외톨이가 된다.


고독이란 감정을 마주한 채,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쉽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기 어려운 이유는 '부정적 그림자' 때문이다. 10분만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앉아보자. 몸의 움직임은 없지만 머릿속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동안 묻혀두었던 부정적인 그림자들이 머릿속을 온통 휘젓는다. '직장에서 나에게 어려운 일을 맡기면 어떡하지?' '친구는 왜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거지?' '아내는 아이들은 안 챙기고, 자신만 챙기는 거지?' '아버지는 왜 화가 나셨지?' '프리랜서여도 먹고살 수 있을까?' 부정적인 그림자는 점점 커져, 나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얼른 스마트폰의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나서야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다.


그토록 원했던 혼자만의 시간이지만 머릿속에 부정적인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나란 존재는 부족하고 실패한 '루저'가 된다. 나를 루저로 만든 생각의 실체를 고스란히 노트북의 빈 화면에 옮겨 적는다. 빈 화면이 글자들로 꽉 찼다. 형체도 없이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이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고,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아니어서, 완성된 이야기는 낯설었다. 한 발짝 물러서서 그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낯선 내가 보였다. '내가 아니야'라며 거부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는다. 담담히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받아들인다. 그때부터 부정적인 그림자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루저에서 그저 '나'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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