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지만, 힘으로 이기고 싶습니다

여성스럽지 못할까 봐 숨겨왔던 욕망을 꺼내놓습니다

by 홍시

20대에 다니던 직장은 대략 여성 80%, 남성 20% 정도의 여성이 많은 집단이었다. 직원들의 화합을 위해 꿀맛 같은 주말의 하루, 토요일을 반납하고 체육대회를 열었다. 발야구, 피구, 2인 3각 등 여러 종목이 있었는데, 그중 팔씨름을 할 때였다. 두 명씩 짝을 이루어 이긴 사람이 위로 올라가는 토너먼트 형식.


나의 상체는 하체에 비하면 근력이 부족하다. 또래의 여자들에 비하면 상체는 더 야위었고, 하체는 더 발달했다. 팔목이 가느다랗고, 허리가 얇다. 대신 허벅지는 볼록하고, 종아리도 탄탄했다. 운동력을 테스트하는 체력평가에서 다른 종목은 대부분 만점인데, 유독 팔 힘을 이용한 오래 매달리기와 가슴을 이용하는 팔 굽혀 펴기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체로 운동하는 종목은 자신감을 보이는 반면, 상체로 운동하는 종목은 경쟁을 피하고 싶었다.


직장 동료는 대부분은 미혼이었으며 '여성성'이 강하기보다 '남성성'이 다분한 씩씩한 여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지방에서 독립해서 혼자 자취생활을 하고, 운전면허증을 따자마자 지방으로 출장을 가고, 팀장 역할을 하며 중간 리더 역할도 곧잘 했다.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팔씨름이 진행됐다. 제일 자신 없던 상체의 팔을 사용하는 경기인데, 어랏~ 흥미진진한 힘 버티기도 없이 무력하게 계속 이긴다. 나보다 어느 모로 보나 체격이 큰 여자, 3년은 더 젊은 동생까지. 너무 쉽게 팔을 넘겨버려 '이거 경기 맞아?' 하는 의구심이 일었다. 분명히 체육대회 시합이었고, 난 꽤나 진지했다. 우승자에게는 소정의 상품도 있었다. 어느덧 결승을 바라보게 되었다. 마지막 모든 직장동료들이 모였다. 결승전을 치르기 위한 팔씨름을 준비한다. 그동안 무력하게나마 상대방의 팔을 쓰러트렸어도 간만의 힘쓰는 일로 팔은 욱신거렸다. 힘을 보충해야 했다. 하지만 경기는 이내 이어졌다. 모두들 체육대회가 빨리 끝나고, 뒤풀이로 가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의 눈빛을 읽었다. 그렇게 결승전 팔씨름은 진행되었고, 긴장감도 없이 한순간에 넘겨버려 결국 내가 우승자가 되었다.


이때를 계기로 직장에서 나는 힘 좀 꽤나 쓰는 여자로 찍혔다. 그때 내 나이는 27세. 15년이 지나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본다. 나의 신체조건으로는 팔씨름은 전혀 자신 있는 종목은 아니었지만 시합이니만큼 '이기고 싶었다' 딴생각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기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동료 여자들은 구태여 팔씨름 대회에서 이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진급을 정하는 능력 테스트도 아니고,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그냥 동료들끼리 재미로 하는 체육대회였을 뿐이었다. 또한 다른 남성들이 보고 있는 경기였다. 팔씨름을 이긴다고 해서 남성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남성들의 경기였다면 한 사람을 이길 때마다 위풍당당함을 뽐냈을 테지만 여자들의 경기는 달랐다.


내가 팔을 넘겨 트릴 때마다 상대방은 졌음에도 환한 웃음을 보였고, 남성 동료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받았다. 팔씨름에 이긴 나는 남성처럼 위풍당당한 표정이 아니라 어쩐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정확히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분명 이겼으니 좋아야 하는 게 맞는데 마냥 좋아하기에는 어색한 분위기.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쓸어내리며 "내가 힘이 센게 아니라, 상대방이 힘을 안 준 거예요"라며 변명하기 바쁘다. 이때의 경험으로 어렴풋이 '힘자랑'은 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여기게 되었다. 오히려 '나는 힘이 없어요,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남성에게 어필하는 편이 관심받기 좋았다. 실제로 이런 연약함을 무기로 내세워 도와주다가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도 있다.




언제부터인지 힘을 겨루는 경쟁에서 이기려고 발악하는 내가 싫어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혼신을 다하나. 잘 못하는 척, 연약한 척하며 '이기고 싶은 욕망'은 한쪽으로 숨겼다. 내가 연약할수록 주변의 이성들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게 이성은 나에게로 와서 도움을 주고, 때론 날 가르치며 신나 했다.


여성의 힘을 쓰는 욕망은 사회에서, 또는 이성들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또래에서나 아니 세대차가 나는 여성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은 지방의 소도시다. 서울은 지금 몸짱 만들기로 여자들도 당당히 힘을 과시하지만 지방은 아직까지는 그런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혼자 프리웨이트 존에서 무게를 점점 올려서 운동을 하고 있으면 안면 있는 지인은 "그렇게 운동하면 근육이 생겨서 안 해"라고 말한다. 남성들끼리는 서로의 중량을 확인하며 칭찬하고 격려를 하지만 내가 중량 있는 운동을 하면 아무도 내 주변으로 오지 않는다. 덕분에(?) 늘 홀로 운동하게 된다.


나는 이기고 싶다. 어릴 때부터 그랬고, 40대가 훌쩍 지나 중년이 되었어도 그 욕망은 현재 진행형이다.


수영을 1년쯤 배웠을까.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매일 수영을 했다. 강습도, 자유수영도, 주말도 수영장으로 향했다. 강습시간이면 수영강사는 으레 남자를 앞에 세운다. 분명히 나보다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줄의 앞에 세운다.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착한 마음으로 보자면 '존중'이었다. 강사는 남자들이 여자들 뒤에 가면 여자들이 수영하면서 급해지거나 초조해진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수영이 제대로 될 리 없다고. 그래서 여자들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남성을 앞으로 세운다. 나쁜 마음으로 보자면 '남성 편애'였다. 남성이 힘이 세니 앞에 세워야 한다는 논리. 난 착한 마음을 선택했다. 구태여 힘이 세다고, 수영을 저 남자보다 잘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고 싶었다. 이기고 싶어서 그렇게 성실히 수영을 했다. 내 또래 여자는 물론, 남성들도 이길 수 있었다. 물속에서는 힘도 중요하지만 몸의 협응력을 이용해 물을 타는 능력이 속도를 결정한다. 그것을 매일의 성실함으로 깨달았고, 자유형이나 배영 정도는 웬만한 남성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솔직히 내비칠 수 없었다. '저 남자보다 내가 더 빠른데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남자를 앞에 세워도 괜찮아요', '여자는 힘자랑 하는 거 아니야'라며 침묵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다고 여겼다. 그렇게 나의 욕망은 숨겨졌다.




나는 이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마음을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자신감과 승리욕을 가졌더라도


남자 어린이는 남자답다 응원받고

여자 어린이는 여성스럽지 못하다

구박받았다.


- 근육이 튼튼한 여자가 되고 싶어(이정연)


이정연 작가의 이 말에 숨겨진 나의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문장을 읽으며 '나도 그래!'라고 외쳤다.

숨겨진 욕망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남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숨겨왔던 욕망을 꺼내 달라고 말이다.


연약한 여성, 가녀린 여성, 힘이 없는 여성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몸짓이 베여있다. 힘이란 사용될수록 강해지는 것, 하지만 사용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다. 여성은 힘을 단련하기보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도록 사회적으로 훈련되어왔다.


사랑받기 위해서 연약한 척해야만 여성스러움으로 사랑을 쟁취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나를 스스로 속이게 만들어 나를 나답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얻은 사랑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랑받기 위해 존재할 필요도 없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속이면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여자지만, 힘으로 이기고 싶습니다.' 이 마음이 나의 진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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