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을 높이니 똑같은 하루가 없다

마흔 이후, 체력을 높이다

by 홍시

횡단보도 앞, 신호등의 초록불을 기다린다. 내 옆에는 허리가 반쯤 굽은 할머니가 계셨다. 신호등은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바뀌었고, 나는 평소처럼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하지만 할머니는 초록불이 남아있는 숫자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걸음걸이는 이내 빨라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한 발짝 내딛지만 결국 숫자는 3, 2, 1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었다. 가까스로 할머니는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할머니처럼 자연스레 체력이 떨어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것은 노화로 인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특별할 것 없는 광경이었다. 모든 할머니가 그런 줄 알았다.


수영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영은 기본이고, 등산, 댄스, 헬스,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섭렵하며 허리가 꼿꼿한 60대 70대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에게 '할머니'의 호칭은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근육 손실로 허벅지가 얇아지고 엉덩이의 살이 줄어들었지만 그녀의 살집은 단단했다. 오랜 헬스 경력으로 단련된 60대 여성은 눈빛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걸음걸이는 사뿐사뿐하다. 그녀는 횡단보도 앞에서 당당하게 걸어 초록불의 숫자가 10이 되기도 전에 이미 횡단보도를 건널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내가 가졌던 고정된 생각들이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 났다. 내 나이는 마흔을 넘어섰고, 지금까지 운동이란 것을 따로 시간 내서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자기 관리라 여겼다. 또한 나의 체력이 일상생활을 힘들게 할 만큼 위기도 아니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상생활은 나의 체력 저하에 따라 딱 그만큼만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20대에는 손쉽게 했던 등산을 마흔이 넘어서니 무릎의 통증이 겁나서 엄두도 내지 못한다. 제주도로 향하는 1시간도 채 안 되는 비행시간 동안 멀미를 견디지 못해 비행기 타는 것이 겁난다. 매일 출퇴근하며 일할 때에는 주말에 특별한 행사를 만들지 않으려고 발악한다. 가족여행도 '노동'이라며 거부한다. 집에서 오랜 시간 누워서 보내는 것이 '쉬는 것'이며 몸을 움직이는 가사노동만으로도 몸은 충분히 움직이는 것 아닌가! 란 고리타분한 생각을 했었다. 마흔이 넘으면 이런 일상들이 당연한 줄 알고 지냈다.


1년 동안 수영장이 쉬는 날이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수영을 했다. 하루라도 수영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했고, 수영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1년 뒤의 나의 몸무게는 이전보다 8kg 정도 줄었다. 어느 날, 샤워실의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명치 아랫부분으로 가로 줄무늬가 보였다. 처음엔 이게 뭔지 몰랐다. 그러다 한참 이후에 이것이 복근이 드러난 것임을 알았다. 그때부터 복근에 관심이 생겼고, 이 선을 더 선명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에 헬스장에 들어갔다.


헬스장에 들어가 자세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개인 트레이너에게 받는 강습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부담이 되어 유튜브와 책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동작을 배웠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띄는 몸의 변화로 반복되는 똑같은 자세가 힘들면서도 성취감이 높았다. 여기서 '힘들다'는 '고통스럽다'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근육에 상처를 내는 고통은 아프지만 묘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가장 낮은 중량에서 자세 잡는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자세와 자극 점, 중량 모든 것에 신경 쓴다. 이렇게 아는 듯 말하지만, 실제 헬스장을 드나든 것은 3개월이 좀 넘었다. 헬스도 수영처럼 매일 꾸준히 1시간씩 했더니 몸의 변화가 나도 놀랄 만큼 극적이었다.


몸이 차가운 편이어서 월경통도 심하고, 소화도 안되었는데 모두 없어졌다. 몸에 열이 많이 생기고, 몸의 신진대사가 좋아지면서 소화력도 좋아졌다. 덕분에 맛있는 것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 '먹기 위해 운동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소화력이 좋아지니 음식을 가릴 게 없고, 먹어도 쉽게 살이 찌지 않았다.


저녁에 헬스를 하면 밤잠이 꿀잠이다. 곧바로 곯아떨어져 숙면을 하고 나면 아침에 약간의 근육통이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 개운하다. 아침의 개운함은 하루의 시작을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덕분에 새로운 일을 이전처럼 겁만 내고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은 저지르자는 심정이 된다.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 동안, 정신이 생생하다. 몸은 비교적 가볍다. 주어지는 일들을 몰입도 있게 하고, 새로운 배움에 자꾸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했고, 브런치를 시작했고,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몸속에 차곡차곡 저장된다.


몸을 쓰는 운동은 상대적으로 머리 쓰는 일을 줄게 만든다. 그것이 운동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운동하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하지 않아서 좋아'라는 말을 한다. 특히 직장의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거나 남편과 싸운 날, 아이들과 실랑이 한 날에는 운동을 하고 나면 크던 문제도 아주 사소하게 보일 때가 있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운동을 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한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는 편이다. 똑같은 자세를 1세트, 2세트, 3세트 그 이상을 하다 보면 거울 속 내 몸만 보인다.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가슴과 등에도 땀이 흥건하다. 내 인생에 이렇게 땀을 흘려본 날이 언제였는지 어릴 적 기억에도 없다. (평소 땀이 안 나오는 체질, 등산을 하거나 뜨거운 여름 오랜 시간 걸어도 수건이 필요 없는 땀 없는 사람이었음) 땀이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다.


마녀 체력의 작가 이영미 씨는 "체력 하나만 달라져도 많은 것들이 변한다"라고 강조한다.


마흔 살은 흔히 생각하듯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기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이 잔혹한 시그널을 보내도 절대로 주눅 들면 안 된다. 더 나아지는 걸 주저하지 말고, 더 도전할 수 있는 걸 포기하지 말자. 아 지금이 내 삶의 절정인가 보다. 싶은 때가 신기하게도 계속 찾아온다. 마흔 살을 훌쩍 넘었는데도, 앞으로 또 어떤 대단한 터닝 포인트가 찾아올지 몹시 기대된다. - '마녀 체력' 발췌


아쉽게도 마흔이 넘었지만, 인생의 정점이 어디였는지 티도 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계속된 이직으로 경력도 없고, 자격증도 없고, 대놓고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고 느껴본 적도 없다. 그저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는 소시민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욕망도 없었다. 마흔의 삶에 안주하면서 지낼 줄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소박한 월급을 받으며 남은 인생 살아가면 최고의 성공이지 않나! 자족하며 욕심 없는 삶을 살겠노라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거짓말이었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체력을 높이니 나도 몰랐던 욕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작지만 시도하고 싶은 것들을 별생각 없이, 해나가고 있다. 첫 번째는 글 쓰는 사람으로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두 번째는 체력의 변화를 느끼며 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세 번째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으며 소소한 밥벌이를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브런치를 통해 나눌 계획이다.


체력이 높아진 이유를 '헬스'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수영을 1년 동안 지속했고, 아이들의 심한 아토피를 관리하다 보니 건강한 식사는 오랜 시간 습관이 되어있었다. 퇴사를 하면서 나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즉, 외부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었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짧은 헬스 생활에도 체력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마흔을 넘어선, 혹은 중년을 훌쩍 넘어선 이들에게 '운동'을 시작하자고 말하고 싶다. 코로나 시대에 건강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숨 쉬는 호흡과도 같이 일상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들이다. 특히 중년의 여성들은 좀처럼 '헬스'에 접근하기 어렵다. 헬스장에 가더라도 많은 여성들이 유산소 운동에 비중을 많이 둔다.


몇십 년을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던 사람들, 밥벌이를 하느라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들, 여성의 운동이란 초등학교 체육시간 이후로 멈춰있었다는 문화적인 이유들. 보이기 위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다이어트에 집중했던 여성들, 근육질의 여성을 혐오로 보던 과거 잘못된 편견들, 여성의 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 생각보다 많다.


이런 장애물들을 한 번에 넘어설 '절실함'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질병, 통증,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같은 것들이 운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때라도 잘 받아들이면 운동으로 노후가 즐거운 삶을 지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빠르게 시작한다면, 어떨지. 나도 나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내일 하루가 설레고, 기대된다. 체력이 높아지니 똑같은 하루가 없다.


이전 06화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된 나의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