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몸과 마주하다
아쉽게도 나의 몸을 가장 잘 보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
우리의 두 눈은 언제나 내가 아닌 타인에게 향해있다.
평소에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자세히 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자세히 디밀고 화장을 할 때나 겨우 얼굴의 민낯을 본다.
얼굴이 아닌 전체적인 몸을 거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곳은 공중목욕탕이었다.
온몸이 콤플렉스 투성이었다
20대에는 목욕탕에서도 몸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벌거벗은 몸을, 똑바로 보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꼭 남이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져, 시선을 피했다.
내 몸 어디도 당당히 보여주고픈 구석이 없었다.
온몸이 콤플렉스 투성이었다.
바지를 구입할 때마다 짜증이 났다.
허리는 얇은데, 상대적으로 엉덩이가 크고 허벅지가 굵었다.
같은 사이즈로 대량 생산되는 바지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맞추면 늘 허리가 남아돌았다.
허리띠를 꽉 쬐여야만 흘러내리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 허리띠를 졸라맨 바지는 허리라인에 선명한 붉은 줄을 만들었고,
땀띠가 생겨 간지러웠다.
치마를 입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바지보다는 불편해서라고 합리화해보지만,
속마음은 울퉁불퉁한 종아리를 내보이기 싫었다.
어릴 때부터 밖에서 온종일 뛰어노는 것이 좋았던 나의 종아리에는 일명 '알'이 크게 자리 잡았다.
단단한 알을 없애보려고 맥주병으로 밀기도 하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마사지도 해주었다.
하지만 종아리의 알은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걸음걸이는 심한 팔자였다.
치마를 입고 양반걸음처럼 팔자로 걷는 나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우스웠다.
왼쪽 어깨 위에는 어릴 때 맞은 예방주사의 부작용으로 뽈록하게 올라온 흉터가 있다.
2cm가량 되는 흉터는 거울 속에서 늘 도드라져 보였다.
아주 더운 한여름에도 민소매 옷을 입지 않았다.
콤플렉스로 덧칠된 몸으로 인해 20,30대 나의 옷 스타일은 박스 한 티셔츠와 통 넓은 긴바지가 되었다.
내 몸에 대한 생각은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몸이었다
지금까지 몸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며 거울을 보고, 옷을 입었다.
딱히 누군가가 콕 집어서 뭐라 한 말은 없는데, 끊임없이 내 몸을 갖고 상상했다.
'어이쿠, 저 엉덩이 큰 거 보니 애는 순풍 순풍 낳겠네'
'여자애가 종아리 알 좀 봐!'
'허벅지는 또 왜 이리 큰 거야, 바지가 꽉 끼잖아'
'어깨 흉터 봐, 징그러워~'
'저 사람은 관리도 안 하나 봐, 뱃살이 나왔네'
나의 상상 속, 타인의 시선은 혹독했다.
방송에 나오는 완벽한 연예인의 몸매를 상상하며 그것이 정상이라 믿었다.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모두 비정상이며 콤플렉스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옷 속에 숨겨둔 몸이 모두 완벽할 것이라 생각했다.
40대가 되어 우연히 수영을 배우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매일 사람들의 몸을 볼 수 있었다.
옷을 입었을 때는 완벽할 거라 상상했던 몸들이 샤워실에서 실체를 드러낸다.
샤워실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으로 대화를 하고, 서로의 몸에 안부를 건넨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몸을 수시로 보게 된다.
내 맘대로 상상했던 몸에서 실체의 몸들을 보니, 완벽한 몸은 어디에도 없었다.
1년 동안 자연스레 남들의 몸을 보았지만, 결론은 같았다.
완벽한 몸은 어디에도 없다
그제야 나의 몸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콤플렉스로 숨기기 바빴던 몸이 아닌, 그냥 내 일부분의 몸.
팔, 다리, 몸통, 제대로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주게 되었다.
몸은 평가할 대상이 아닌, 그저 몸뚱이였다.
움직이는 몸, 숨 쉬는 몸, 일하는 몸, 그 몸 안에 수술 자국이 보여도,
그건 그 사람만의 역사를 통과한 몸이었다.
어떤 몸이든, 숨길 이유가 없어졌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의 몸을 보았던 생각들이 점점 줄어갔다.
대신 나의 시선으로 내 몸을 살폈다.
어디가 아프진 않았는지, 불편하진 않았는지를 신경 쓰게 되었다.
숨길 이유가 사라지니 몸을 드러내는 데 과감해졌다.
편하다는 이유로, 콤플렉스는 숨긴 채 펑퍼짐한 옷만 선호했는데,
어느덧 거울 속 나의 몸은 타이트한 상의와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40대가 되어서야 치마도 입게 되었다.
원피스를 입으며 '왜 그동안 허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바지만 고집했을까?'
의아할 정도였다.
거울 속의 내 몸을 바라본다.
타인의 시선으로 판단했던 나의 몸이 있었다.
이제라도 내 몸을 그대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거울 속의 당신 몸을 보는 사람은 당신입니까? 타인입니까?'